연애의 달인, 세상을 유혹하다

입력 2011-11-10 14:34 수정 2013-09-28 01:17



‘카바레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지요.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1901~1992). 1930년대 할리우드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배우이기도 합니다. 감성적 목소리와 뇌쇄적 이미지를 활용해 성공했다는 점에서 우테 렘퍼와 유사한데요. 백만 불짜리 각선미와 몽환적인 눈매에서 드러나는 도도한 인상도 서로 닮았습니다.





디트리히는 1920년대 독일의 카바레 무대에서 자신의 코너를 가진 촉망받는 가수로 활약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배우의 길을 걷습니다. 1930년 게리 쿠퍼와 함께 주연을 맡아 오스카 상 후보로 지명된 영화 ‘모로코’로 스타덤에 올라섭니다. 이후 ‘금발의 비너스’, ‘상하이 익스프레스’, ‘진홍의 여왕’ 등의 작품을 통해 최고의 섹스 심벌로 부각되지요.

그녀는 카바레 가수, 살롱 주인, 창녀, 정부 등 주로 치명적 팜므 파탈 역을 연기했습니다. 연미복 차림에 다리를 꼬고 앉아 담배를 피는 모습의 ‘전매 특허’로 세상을 유혹했지요. 말을 적게 하는 성격이라 겉으론 냉랭하게 보이지만 남자에게 사근사근한 특유의 장기가 있었다는데요. 연애할 때는 지적인 상대를 골라서 만났고 연정이 시들해지면 우정으로써 지속적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 1935년 사진작가 세실 비튼(Cecil Beaton)이 찍은 마를렌 디트리히.





어떤 전기 작가는 ‘그녀는 배우, 주부, 어머니와 창녀의 복합체였다. 그것은 곧 모든 남자들이 바라는 여성상’이라고 추켜 세우고요. ‘당신은 내 혈관 속에, 피 속에 있다’라며 지순한 순애보를 바친 사람도 있습니다. 작가 헤밍웨이는 ‘나는 지독한 사랑에 빠졌는데 당신은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얼간이들과 놀아나고 있다’고 연서를 보내다가 끝내 자살하고 말았지요. 카리스마와 부드러움이 섞인 중성적 매력으로 여성들과도 염문을 많이 뿌렸다는군요. 성(性)은 가지고 있었으나 성별(性別) 구분은 없었다고나 할까요.

디트리히는 스크린에서나 실제 생활에서나 자신의 이미지를 창조하고 관리할 줄 아는 여자였습니다. 가슴을 조이는 브래지어와 슬림 스커트를 벗어던지고 남자처럼 보이게 입는 ‘매니시 룩’의 전성시대를 열었지요. 그녀의 남장 여자 차림새는 자신의 매력을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턱시도에 흰색 드레스 셔츠, 나비 넥타이, 실크 모자 등을 착용한 이 모습은 지금도 마돈나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아이콘입니다.



히틀러의 구애와 협력 요청을 거부하고 나치에 저항했던 행적도 당찹니다. 할리우드의 배우와 감독들도 그녀를 숭배했을 정도니까요. 2차대전 당시엔 양측 병영을 찾아다니면서 인류 양심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지던 명곡 ‘릴리 마를렌’을 불러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무너뜨렸지요. 전쟁이 끝난 이후엔 다시 가수 생활을 했는데요.

70세까지 노래를 불러 '청중이라는 완벽한 연인'을 제공받았던 디트리히. 늙어서도 고운 자태를 유지해 ‘세상에서 가장 글래머한 할머니’로 불렸으나 주름살 있는 사진은 절대 찍지 않았다지요. 앙드레 말로는 ‘배우가 아니라 신화’라고 그녀의 삶을 개관했습니다. 퇴폐적 미모를 무기로 강인하고 극적인 여인상을 보여줌으로써 ‘예술과 같은 인생, 인생과 같은 예술’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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