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듣기 좋은 디바의 노래

입력 2011-10-12 17:03 수정 2014-06-07 09:48



뉴 에이지의 계절입니다. 소리로 치면 첼로처럼 곡진하고 맛으로는 잘 숙성된 와인, 색깔은 튀니지안 블루에 가깝습니다. 비단결처럼 부드럽게 찰랑이는 여인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뺨을 스치는 듯한 촉감, 바람의 뒤편엔 언제나 풋풋한 비누 향이 남아 있습니다. 삶이라는 ‘미스터리’와 사랑이라는 ‘히스테리’에 전전긍긍하던 인간의 오감(五感)이 제 철을 만나 풀 가동하는 느낌입니다. 상투성의 구속에서 해방된 직관이 화살처럼 꽂히는 걸까요. 어떤 이는 음향에서 색채를 보고 또 어떤 이는 그림을 통해 냄새를 묘사합니다.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문학 작품들도 많지요.

“나는 길들여졌으므로 그의 상처가 나의 무덤이 되었다/검은 나무에 다가갔다/첼로의 가장 낮고 무거운 현이 가슴을 베었다//텅 비어 있었다/이 상처가 깊다/잠들지 못하는 검은 나무의 숲에/저녁 무렵 같은 새벽이 다시 또 밀려오는데”(박남준「저녁 무렵에 오는 첼로- David Darling의 Dark Wood로부터」부분)


 ▲ 데이빗 달링의 앨범 ‘Dark Wood’

첼리스트 데이빗 달링은 중후하면서도 애달픈 선율의 곡을 연주하는 미국 아티스트입니다. 어설픈 ‘연민’이나 ‘애수’ 등의 추상적 뉘앙스를 초월하는 직설 화법을 구사하는데요. 한 마디로 말하면 ‘첼로로 울어버립니다’. 아무리 무감각, 무감동 정서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영혼의 밑바닥에서부터 울려오는 깊은 사운드의 맛에 반할 수밖에 없지요. 페이소스를 짙게 드리운 수준 높은 서정성에 시적 호기심이 발동할 만도 합니다.








 ▲ 데이빗 달링 ‘Dark Wood IV: Dawn’




 ▲ 데이빗 달링 ‘Minor Blue’






 ▲ 데이빗 달링 ‘Serenity’ 






 ▲ 데이빗 달링 ‘Bach's Persia’



가을의 향기에 취하다 보니 후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의 주인공이 생각납니다. 냄새의 천재로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향수 제조자가 되었으나 정작 자신의 몸에서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아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그루누이. 그가 어렸을 적 ‘나무’라는 단어의 뜻을 배우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후각을 통해 사물의 이름을 익힌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지요.

“등을 창고 벽에 기댄 채 장작더미 위에 다리를 쭉 뻗고 앉은 그는 눈을 감은 채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는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않았다. 단지 아래로부터 퍼져 올라오다가 뚜껑에 덮인 것처럼 지붕 밑에 갇혀서 그를 감싸고 있는 나무 냄새를 맡을 뿐이었다. 냄새를 들이마시고 그 냄새에 빠져 자신의 내밀한 땀구멍 깊숙한 곳까지 전부 나무 냄새로 가득 채운 그는 그 스스로가 나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는 나무인형, 피노키오가 된 것처럼 그 장작더미 위에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한참 뒤 거의 30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그 말을 내뱉었던 것이다. ‘나무’.”

그러나 가을은 역시 냄새보다는 ‘소리로 생각하기’가 제격일 것 같습니다. 청각이야말로 인간의 오감 가운데 가장 직관적이며 원시적인 감각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귀를 즐겁게 하는 것 중 사람의 목소리는 최고의 악기로 평가받고 있지요. 특히 중남미나 동, 남유럽 같은 제3세계 여자 가수들의 원숙하고도 애잔한 보컬은 이 쓸쓸한 계절과 상당히 잘 어울립니다. 비교를 거부하는 개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소력으로 ‘디바’의 진면목을 보여 주지요. 평소 슬픈 음악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강추합니다.


▲ 왼쪽부터 하바 알버스타인, 세자리아 에보라, 안나 게르만, 메르세데스 소사, 솔리다드 브라보.

하바 알버스타인(Chava Alberstein). 이스라엘의 존 바에즈,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가수 중 한 명으로 불립니다. 1947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4살에 모국으로 이주했습니다. 히브리어와 이디시어로 된 시와 전통 유대 음악을 모태로 한 곡을 주로 부르지요. 마이너 코드 특유의 음울함과 가슴을 아릿하게 찌를 만큼 애절한 음악의 진수를 보여 주는데요. 단호하게 뜯는 기타 연주 속에 아코디언의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면 매혹적인 포크 댄스 풍의 선율 위로 지극히 아름다운 시가 그녀의 목소리를 타고 흐릅니다. 부드러운 러브 송에서부터 평화와 저항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더 시크릿 가든’ ‘라이어’ 등 많은 히트곡이 있습니다.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 아프리카의 ‘달콤한 슬픔의 노래’라는 모르나(Morna. 항구를 배경으로 탄생한 월드 뮤직의 대표적 장르)의 정수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해내는 가수입니다. 열일곱 살부터 무대에 섰다는데요. 자연스러운 발성, 물처럼 흐르는 목소리를 통해 진실한 사랑에 대한 갈망과 상실의 아픔, 인생의 근원에 대한 물음과 운명에 대한 도전, 미지의 세계를 향한 꿈을 노래합니다.





 

안나 게르만(Anna German). 러시아 로망스의 대명사로 각인된 가수로서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앨범 ‘정원에 꽃이 필 때’에 '가을의 노래' 등 대표곡이 망라돼 있는데요. 수채화처럼 투명한 피아노 연주, 풍성한 현악기들의 물결 위로 그녀의 섬세한 호흡이 얹혀져 있습니다.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칠흑같이 검은 머리카락, 전형적인 인디오의 얼굴, 전통 의상인 판초를 입은 소박한 모습으로 각국 무대에 설 때마다 기립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노랫말이 담고 있는 정서를 완벽하게 전달하는 목소리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삶과 음악을 일치시킨 위대한 가수라는 평을 듣습니다.







솔리다드 브라보(Soledad Bravo). 베네수엘라의 보석. 클래시컬한 기타 선율을 바탕으로 끊어질 듯 가냘프게 흔들리는 호흡이 촉촉하게 귓전을 적십니다. 유럽풍의 낭만과 중남미 특유의 애수 띤 멜로디가 충만한 곡들을 부르지요. 인공 조미료가 덜 가미된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딱입니다. 쿠바 음악 불멸의 스탠더드 넘버 ‘검은 눈물’과 ‘체 게바라여 영원하라’로 알려진 ‘아스타 시엠프레’로 유명합니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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