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쓴 ‘그리움의 아다지오’

입력 2011-06-28 00:18 수정 2011-07-16 14:01



이달 9일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배평모씨의 자전적 소설 <파랑새>(바보새) 출판 기념회가 있었습니다. 작가는 장편 <려부 알 할리>(한국문학) <젊음의 지평>(해냄) <지워진 벽화>(창작과비평) 등을 펴낸 중견으로 나와는 일면식이 있습니다. 8~9년 전 그가 경영하던 카페에서 딱 한 번 만났지요. 이후 서로 소식을 모르다가 이날 대구에서 올라온 나문석 시인과 동행한 행사장에서 다시 보게 됐습니다. 행사의 주인공과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전국에서 모인 축하객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했습니다. 톡톡 튀는 차림새와 범상치 않은 언행의 기인이 유독 많은 자리였지요. 굿과 농악 등 우리 고유의 잔치 프로그램도 이러한 손님의 취향을 반영한 듯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객 모두 흡족한 표정들이었고요. 다만, 행사 중 작가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꽤 많았음에도 ‘무슨 사연?’ 하며 지나칠 수밖에 없어 아쉬웠는데요. 궁금증은 며칠 후 읽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풀렸지만요. 대신 내 가슴이 속절 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6·25가 터지자 주인공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남으로 내려옵니다. 아버지는 원산에서 배를 타기 직전 헤어지고요. 정착한 곳이 바로 제주도. 1952년부터 1960년까지 여기서 피란민으로 삽니다. 초등학교 입학 한 해 전부터 중학교 입학 직전까지의 시간인데요. 바느질을 하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돌보는 어머니.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모자는 절대 의지하며 살았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머리채를 잡힌 채 아무런 저항도 없이 희망잡화점 여자에게 모든 걸 내맡기고 있었다. (…) 이년아 넘볼 데가 없어서 니 서방 친구를 넘보냐? (…) 머리채를 휘둘리던 어머니가 나를 보았다. 나를 보는 어머니의 눈 속에 이 세상의 모든 치욕과 절망이 담겨 있었다. (…) 내 앞에 펼쳐졌던 밝은 세상이 암흑으로 변했다. 어머니의 치욕과 절망이 나의 것이었기에…. 어머니는 밤이 깊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운명을 바꾼 비극적 사건이 터진 겁니다. 만약 그날만 없었다면, 아니 그때 어머니가 아들의 눈길과 마주치지만 않았어도…. 그러나 이미 되돌릴 수 없게 된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습니다.

“공터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수런거림에 눈을 떴다. 방 안에 어머니는 없었다. (…) 밖으로 나갔다. 가마니로 만든 들것에 누가 누워 있었다. 몇 걸음 다가가서 보니 어머니였다. 혀를 길게 늘어뜨린 채 누워 있는 어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교회에서 서둘러 그날로 장례를 치렀다. 어머니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공동묘지에 묻혔다. 이튿날 김 장로님이 나를 데리고 서울로 갔다. 나는 홀트아동재단에 맡겨졌다. 그리고 얼마 후 미국 시애틀에 사는 중산층 가정에 입양되었다.”

그렇게 떠났던 작가는 정확히 50년 만에 마음의 고향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기억이라는 길을 따라 먼 과거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 길에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누군가를 만나기도 하고 행복했던 어느 시점에 머물기도 합니다. 비록 덧칠을 해도 지워지지 않을 치명적 상처일지언정 따뜻히 손 잡고 감싸주기로 한 것이지요. 그 고통을 치유하는 도구는 역시 글쓰기입니다. 작가는 마침내 ‘제주도의 봄은 영등할망이 심술을 부려서 분다는 영등바람이 잠잠해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로 이 작품을 시작합니다.

해방둥이 아이들이 제주의 억새 무성한 들판을 가로지르고 아슬아슬한 벼랑을 기어오릅니다. 해골이 나뒹구는 어두운 굴 속을 탐험하기도 하고 바닷가 햇볕 아래서 까맣게 몸을 태우면서 우정을 나눕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한 묘사가 눈부십니다. 신경림 시인과 현기영 소설가도 ‘삶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우는 성장소설’이라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표현하렵니다. 그에게 이 책은 뼈에 사무치는 회한을 안고 떠난 어머니에게 헌정하는 그리움의 아다지오라고.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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