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의 전설’ 새로 씌어지나

입력 2011-05-09 13:00 수정 2011-05-10 19:43



“비무장인데…” vs “합법적 사살”

미국 군대의 빈 라덴 사살에 관해 말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테러범일지언정 사형 판결 없이 죽이는 행위는 암살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과 정당한 보복이라는 관점이 맞서고 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가운데 ‘미안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특이한 건 9․11 희생자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여럿 있는데요. 10년 전 테러 직후 빈 라덴 지지자들이 두 손을 치켜들고 환호하던 섬뜩한 풍경과 오버랩되기 때문이겠지요.

미국의 승리는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며 또 다시 빈 라덴의 손에 놀아났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존 페퍼라는 외교 전문가는 어떻게 하든 그를 산 채로 잡아 법정에 세웠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비무장 상태의 타깃이 일방적 공격에 의해 쓰러져 ‘순교자’가 되는 데 미국이 결정적 도움을 줬다는 설명입니다. 유명한 서부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 캐시 부시디처럼 비장하게 전사함으로써 ‘전설’로 남게 됐다는 것이지요. 결국 이슬람 무장 단체의 ‘보복 천명’이 명분을 얻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입니다.

미국 정부의 ‘말 바꾸기’는 밝혀지지 않은 의혹의 뇌관에 불을 붙인 격입니다. “무장한 빈 라덴 측과 총격전, 저항하는 남자 2명과 여자 1명 사살, 생포 계획 하달, 부인이 인간 방패로 나섰으며 총에 맞아 사망, 은신처는 100만 달러짜리 호화주택”이라는 당초 발표가 “사살 당시 비무장, 인간 방패론은 사실이 아니며 부인은 총상 입고 아직 생존”으로 수정됐습니다. 언론들은 ‘애초부터 살해 명령 내려졌고 은신처는 땅값 4만8천 달러에 불과한 곳’이라는 보도를 내놓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또다른 진실이 밝혀질지 모를 일입니다.

전설적 아파치족 전사의 이름을 딴 ‘제로니모’라는 작전명도 시빗거리입니다. 미국 공수대원들이 비행기에서 낙하할 때 외친다는 이 말은 그간 용감함의 상징으로 인식돼 왔는데요. 영웅으로 추앙하는 조상 이름이 차용당했다는 사실을 안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선 것이지요. 제로니모의 증손자라는 사람은 “제로니모와 빈 라덴을 동일시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명예훼손”이라며 모든 정부 기록에서 이를 삭제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고 합니다.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이번 작전은 ‘과잉’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어쩌면 오바마는 현대 미국사의 새로운 ‘전설’을 창조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과거 ‘전쟁 주술사’로 불리며 백인들을 떨게 만들었던 전설적 인물의 행적을 좇은 ‘보복의 승전보’를 주문했을 수도 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볼 때 미국은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렇다고 지금 승패의 추가 한 쪽으로 현저히 기울었다고 판단하는 건 속단일 것 같습니다. 전투에서 이긴 미국이 전쟁에서 진 것은 아닌지…. 오바마의 의도와는 달리 (활과 화살을 판 돈으로 술을 마신 채 집으로 가다 마차에서 떨어져 죽은) ‘제로니모의 전설’이 퇴색하고 (적군의 총알에 비장하게 전사한) ‘빈 라덴의 전설’이 새로 씌어지는 것은 아닌지요.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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