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묘약이 살려낸 아름다운 영혼

입력 2011-02-18 18:43 수정 2011-02-19 10:30



영국에 앨런 튜링이 있다면 미국엔 존 내쉬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천재 수학자면서 동성애 편력이라는 공통 분모를 지녔으되 전자는 주위로부터 버림받았고 후자는 사랑받았다는 차이가 있지요. 훈장까지 받은 영웅에서 ‘사회를 오염시킨 범죄자’ 신분으로 추락, 비극적 최후를 맞은 튜링과 30년이나 시달린 정신분열증을 극복하고 노벨상을 수상한 내쉬의 말년은 뚜렷이 대비됩니다.

내쉬는 1950년 약관의 나이에 ‘비적대적 게임에서의 균형설’을 창안해 고전 경제학의 근본을 흔들어버립니다. 여기서의 ‘균형’이란 어떤 게임 상황에서 플레이어들이 서로의 선택을 바꿀 마음이 없는 안정적 상태를 말하는데요. 최상이 아닌 차선이라도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전략의 쌍을 가리킵니다. 내쉬의 일생을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이 이론의 영감을 얻는 술집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러셀 크로)이 금발 미녀를 독차지하려는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하지요.

“아담 스미스는 틀렸어. 우리 모두가 미녀를 꼬시려 쟁탈전을 벌이면 (콧대가 높아진 그녀에게 선택권이 주어져) 전부 퇴짜 맞을 수 있어.(혹은 한 명만 선택됨) 그후 그녀 친구들에게 가봤자 무시만 당할 거야. 대타 기분, 알잖아? 그런데 아무도 미녀를 넘보지 않는다면? 우리 중 누구도 그녀를 취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녀 친구들을 데리고 놀 수는 있어. 그게 모두가 이기는 길이야. 스미스 왈, 개인이 최선을 다하면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고 했지? 하지만 이건 불완전해. 최고의 결과는 자신은 물론 집단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실현되는 거야.”



▲ 영화에서 내쉬로 분한 러셀 크로(왼쪽)와 실제 내쉬 부부.

최대의 이익인 ‘미녀와 즐긴다’는 목적은 이루지 못하지만 치열한 경쟁 때문에 어떤 여자와도 짝을 맺지 못하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만은 피할 수 있다는 건데요. 간단하다면 간단한 이 직관이 오늘날 하나의 학문으로 정립된 ‘게임 이론’ 발전의 기폭제가 됩니다. 둘 다 자백을 안 하면 제일 좋지만 다른 사람의 배신이 두려워 모두 자백하는 것으로 차선의 선택을 하게 되는 ‘죄수의 딜레마’ 핵심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 균형 이론이지요. 3인의 결투, 공유지의 비극, 승자의 저주 같은 게임 이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하루 아침에 학계의 스타가 된 내쉬는 그후로도 10여 년 남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를 불가사의한 집중력과 독창적인 방식으로 풀어 제2의 아인쉬타인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때 이른 부친 사망, 징병 강박증과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 겹쳐 환청과 망상에 사로잡힌 '정신의 암' 환자가 되고 맙니다.

외계의 암호를 찾는다며 신문과 라디오에 매달리고 세계 평화를 위한 비밀 요원, 남극 대륙의 황제를 자처했다지요. ‘중국의 마오쩌둥은 13살에 성년식을 했는데 이날은 소련의 브레즈네프가 할례를 받은 지 13년 13일째 되는 날이다’ 같은 낙서를 하고 다니는 등 30년 동안 유령처럼 살다가 1990년 기적적으로 회복됩니다. 주위의 헌신적 도움이 있었다지요. 사랑은 역시 약발이 센 묘약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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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알리시아와는 실제 이혼했다가 재결합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건 그의 외아들도 정신분열증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하네요. 그참….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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