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의 세계는 아름답다

입력 2010-05-31 17:51 수정 2012-11-30 17:04



“우리 학교는 장애인을 받지 않습니다.”

목발을 짚고 면접 시험장에 들어선 그를 위 아래로 훑어본 교수 한 명이 판결을 내리듯 잘라 말했답니다. “학부에서부터 대학원까지요.” 타 대학 석사 졸업반이었던 그의 박사과정 입학은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의 미래를 단도직입적으로, 너무나 명료하게 선언하는 교수의 말에 ‘죄송합니다’라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지요. 그때 ‘완벽한 좌절은 되레 슬프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가 바로 지난 5월 9일 1주기를 맞은 고 장영희 교수입니다. 영문학자이자 수필가로 유명세를 탔지만 소아마비 1급 장애에다가 세 종류의 암을 달고 살았던 운명적 인물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타계할 때까지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불굴의 투사로 그를 기억합니다. 지극 정성이었던 부모의 사랑을 고스란히 성장의 자양분으로 흡수, 비정한 사회와 싸워왔던 그의 피와 땀, 눈물. 그야말로 눈물겹습니다.

“그날 집에서 기다리시는 부모님께 낙방 소식을 전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지연하기 위해 동생과 함께 본 영화가 <킹콩>이다. (…) 그 눈, 그 슬픈 눈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에게는 (손에 쥐고 있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가 인간이 아닌 흉칙한 고릴라였기 때문에... 그때 나는 전율처럼 깨달았다. 이 사회에서는 내가 바로 그 킹콩이라는 걸. 사람들은 단지 내가 그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미워하고 짓밟고 죽이려고 한다. (…) 사회로부터 추방당하여 아무런 할 일 없이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삶. 그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 없었다. (…) 나는 살고 싶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괴물이 아닌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곳으로 가기로.” -『내 생애 단 한번』(샘터, 2000)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그의 손엔 토플 책이 쥐어져 있었다지요. 그리고 다음해 8월엔 전액 장학금이 기다리고 있는 뉴욕주립대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답니다. 이후 고국에 돌아온 그는 자신을 외면했던 사회를 다정히 껴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곳곳에 전파했습니다. 글로 행동으로. 소수자에게 그토록 무관심했던 우리는 그에게 깨달음의 큰 빚을 지게 됐습니다. 

“무관심의 늪이 우리를 잡아먹는 근저에는 두 가지 흡반이 있다. (그것은) 공포와 돈(이다). 가난에 대한 공포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남을 죽인다. 가진 자는 더 가지기 위해, 없는 자는 가진 자와 위치를 바꾸기 위해 서로 싸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두 부류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없는 자는 가진 자의 거세를 위해서, 가진 자는 없는 자를 통해 소유를 확인하기 위하여. 둘은 서로를 떠받치고 있는 바 그 받침대를 해체하면 어떤 삶도, 세상도 없다. 무(無)다.” -『소설 전등록, 그날 이후 세계는 아름다웠다』(이원근 지음, 인간사, 1991)에서 부분 발췌

 


 ▲ 당산역에서 한강공원으로 통하는 터널.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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