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대하여 2

입력 2010-01-19 14:18 수정 2010-05-19 11:10



“여직 그렇게 사 셨 군 요…”

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그녀의 눈시울이 촉촉이 젖기 시작했습니다. 기가 막힌다는 후렴 같은 탄식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지 40여 년 됐건만 생활 여건이 옛날 어려웠을 때와 별로 차이가 없다는 얘기였지요. 그녀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어도 개선이 안 됐다는 겁니다. 빈곤의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이 가족은 결국 지금도 기초생활 대상자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자녀들의 불행입니다. 첫 아들에 이어 바람에 귀밑머리 날리며 이 언덕을 뛰어다니던 딸도 젊은 나이에 암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아들 셋만 남았지요. 그 중 한 명만 결혼해 독립했을 뿐 그녀와 함께 사는 두 명 모두 나이 쉰 안팎의 독신입니다.

근심이 끊이지 않는 운명을 짊어진 그녀. 자식들에게조차 고집 세고 융통성 없는 노인으로 각인돼 있는 현실이 더 서럽습니다. 모자 간의 따뜻한 대화는 집 나간 지 오래고 냉소와 갈등의 찬 바람이 호시탐탐 안방을 노리고 있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간신히 중심을 잡아왔던 가족사의 균형추가 급격히 흔들리는 듯한 위기... 그녀 혼자 감당하기에는 슬픔과 눈물의 골이 너무 깊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의 눈을 가졌던 김종삼 시인이라면 이렇게 위로했을 것 같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 김종삼「장편 掌篇 2」전문


술 마시러 외출한 막내, 자정을 넘어 새벽이 돼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번엔 어머니가 아들을 기다립니다. 집 앞 40도는 족히 되는 경사 진 고갯길에서, 취한 아들 넘어질라 
내리는 눈 쓸고 있습니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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