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골 통신 2

입력 2009-11-16 14:40 수정 2011-07-04 17:49
“멧돼지라는 놈은유 겁나게 힘이 시어서 사람 다리를 물면 뼈를 와삭와삭 씹어버리고 말어유.”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시집 와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감골에 사는 뒷집 할머니가 내게 들려준 ‘겁나게 원색적인’ 표현입니다. 대문이 없어 양잔디가 곱게 깔린 안마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최씨네 안주인이지요. 바깥 양반은 외모나 성격이 매우 꼿꼿하고 할머니는 소박하며 친화력이 강한 옛 시골 사람의 원형질이 그대로 남아 있는 분입니다.  

지난 여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땐 뱀이 나를 겁나게 만들었습니다. 마당 수돗가에서 손을 씻으며 앉아 있는데 오른 편에서 뭔가 어른거리는 것이었어요. 머리카락이 쭈뼛, 직감적으로 뱀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수다쟁이 할머니로부터 들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어제 독사 한 마리가 저어기 담 구멍에서 나와 아자씨 집 마당으로 들어갔어유.”

검정 줄무늬가 있었던가, 어쩌면 진초록이 섞인 것 같기도 했는데… 약간은 통통한 몸매임에는 분명했습니다. 엎디면 코 닿는 곳에 놓인 농사 장비함에서 상체를 반쯤 내민 녀석은 잠시 상황 판단을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요. 한 2~3초 되었을까요. 당황한 내가 벌떡 일어나 뱀 나왔다며 친구 부르랴, 방어용 막대기 찾으랴 분주한 사이를 틈타 그놈은 휑하니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습니다. 어디로 갔을까. 그 짧은 시간에 풀섶까지 이동했을 리는 없으니 장비함에 다시 몸을 숨긴 게 분명했습니다. 친구 역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꼬리 부분을 확실히 보았다고 진술하였습니다. 최씨 아저씨 내외가 긴 장대를 들고 나타나 어디서 나왔느냐, 어떻게 생겼느냐 꼬치꼬치 물은 후 꽃뱀이라고 단정하였지요.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2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사는 공소 회장님 부부까지 차를 몰고 와 초짜 농사꾼 지원에 나섰습니다. 친구와 나는 다시 한 번 ‘몽타주’를 설명했지만 정확한 신원 파악엔 실패했습니다.

어찌됐건 독사면 대가리를 박살내야 한다는 강성 발언에 수색에 돌입했습니다. 결국 이 방면의 전문가라는 회장님이 ‘1번 소총수’가 되어 전면에 나섰습니다. 장비함을 이리 툭 저리 툭 쳐보고 뚜껑을 살짝살짝 들어 올리기도 했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습니다. 옳거니, 저놈이 이젠 겁을 잔뜩 먹었구나. 6대1이라는 수적 우위에 고무된 우리는 일제히 방어 자세를 취한 채 뚜껑을 확 열어 제꼈습니다. 일전 불사의 각오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마땅히 장비함 속에 있어야 할 그 동물이 안 보이는 겁니다. 기가 찰 노릇이었지요. 친구와 나는 거짓말쟁이가 되었고요. 짧은 침묵 후의 결론은 이렇게 났습니다. “처음부터 뱀은 장비함 속이 아닌 밖에 있었고 얼굴을 마주친 내가 허둥거릴 때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이 집엔 독사와 화사가 함께 똬리를 틀고 있다.”

그날 밤 잠이 제대로 왔을 리가 없지요. 모든 창문과 방문을 꼭꼭 닫고 세탁실의 물 내려가는 구멍까지 큰 돌로 막아 놓았지만 마음이 놓이는 건 아니었습니다. 정막을 가르며 툭, 툭 떨어지는 대봉의 낙과 소리도 평소보다 더 크게 들렸으니까요. 물론 녀석의 심사도 그리 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그 놈도 가까운 어디에선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다음날 친구 집 앞을 지나던 마을 아주머니 한 분이 또다시 독사와 마주쳐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놈이 내 앞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독사건 화사건 나와 마주칠 인연이 없었던 게지요.

백반 두 봉을 손에 들고 두 번째 이 집을 찾았을 때 친구가 비웃듯 소리쳤습니다.
“어이, 이미 작전 끝이야!”
거금 4만원을 투하해 집 주위를 온통 백반 지뢰밭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ㅎㅎㅎ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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