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골 통신 1

입력 2009-11-04 10:20 수정 2011-07-04 17:40
“나에게 오라. 너에게 가마.”

처연하게 깊어가는 가을이 나를 호출했습니다. 발신지는 전북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 만석동. 마을 뒤편에 내변산 줄기를 타고 흐르다 솟아오른 감로봉이 우뚝 서 있는 곳이지요. 마치 호랑이가 마을 전체를 감싸고 눈을 부릅뜬 채 바라다보는 형상입니다. 높지는 않지만 그리 만만한 산세는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옛날엔 호랑이가 많았답니다. 1915년 전후만 해도 늦은 밤 보리쌀을 찧다가 문득 옆을 보면 그 놈이 토방에 점잖게 엎드려 있었다는 거지요. 질겁을 한 동네 사람들이 비상 대책으로 덫을 여기저기 놓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사실인지는 몰라도 당시 잡은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는데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이곳 같은 첩첩 산중에선 있을 법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이 많이 난다 해서 감골이라고도 하고 사랑감마을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런데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닙니다. 하늘과 땅, 좌우 어디를 봐도 감나무 가지가 축축 늘어져 있습니다. 곳곳에 산재한 과수원에선 주로 특산물인 대봉시를 재배하고 있고 감 농사를 안 짓는 집에도 단감과 전통 감 등 10여 그루씩은 자라고 있습니다. 물이 잘 빠지는 토양이라 그렇다고 하는군요. 길을 걸으면 차에 치인 낙과가 곳곳서 비명을 지르고 있어 안타깝게 만듭니다. 










마을 전체가 빨갛게 물든 이곳 친구 집을 지난 금요일 밤 찾았습니다. 벌써 네 번째 방문인데요. 한 번 오면 일 주일은 보통이고 길면 열 흘은 묵었다 갑니다. 귀농 준비를 하고 있는 집 주인이 서울을 오가는 터라 장기 숙박이 가능한 것이지요. 평소 마음이 통하는 것도 부담을 덜어줍니다. 만나는 시간이 늘수록 서로 조금씩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친구입니다.

토요일 낮에는 친구의 과수원과 그 뒷편 갈대밭에서 어슬렁거렸습니다. 냉장고에 넣어 얼렸다가 숟가락으로 퍼 먹는 대봉이 천 평 가까운 농장을 점령하고 있어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더군요. 그날따라 세차게 분 바람의 변화 무쌍한 연출에 넘실대는 갈대의 군무도 황홀했습니다. 넋을 잃은 채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고 마음을 놓았다 거뒀다, 나도 많이 흔들렸습니다. “전생에 나는 뭐였을까…”

내변산을 동서로 관통하는 산길도 올랐는데요.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옛날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인들이 모이던 작은 공소와 오래 전 주인에게 버림받은 폐가에 살풋이 내려앉아 위로하듯 지난 세월을 쓰다듬는 늦가을 역광… 한참을 뒤돌아보며 걸었습니다. 내 발길 역시 또다른 과거를 하나씩 만들고 있구나. 상념에 젖어 한 걸음, 검게 탄 듯한 재래 감 나목과 명징한 하늘과 농익은 감색의 대비에 탄성을 내지르며 한 걸음, 산행은 쓸쓸하면서 명쾌했습니다. 멧돼지가 나온다는 얘기만 듣지 않았다면 고개를 넘었을지도 모릅니다.

비가 내리던 저녁엔 친구 내외와 전주에 산다는 후배 부부가 찾아와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밥과 밑반찬, 고기와 생선, 조개 구이가 평상을 가득 채웠으나 나에게 최고 안주는 역시 빗소리였습니다. 우리는 시인 김광규처럼 ‘이제는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가정과 자식들의 안부를 나누었고 박인환처럼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얘기했습니다.











 
22년 동안 편집부 기자와 종합편집부장ㆍ편집위원을 거쳐 2009년 계간 '시에' 시부문 신인상으로 문단에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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