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그랑

마지막 홀 마지막 퍼팅을 마친 뱁새의 눈에선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눈시울만 적시며 '찔끔' 묻어나거나 송글송글 맺힌 다음 하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애간장 녹이는 그런 멋진 눈물은 절대 아니다.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 내리며 입안으로 계속 들어와 눈물에는 나트륨이 들어있다는 이제는 신통할 것도 없는 평범한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그런 눈물이다.

 

사나이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는데!

뱁새는 *귀저기 찰 때부터 서른살 넘는 장정이 될 때까지 평생을 자신과 함께 살아온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많이 운다.

 

뱁새의 마지막 홀 스코어는 보기다.

 

옷 소매로 닦아보지만 눈물은 카트에 타서도 그치지 않는다.

그 틈에도 뱁새가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자신과 동타를 기록한 박** 선수도 울고 있다.

기껏 해저드에서 갈대를 손으로 젖히는 바보짓을 하려던 것을 뱁새가 말려서 구해줬더니(?) 결국 그도 뱁새와 마찬가지로 오늘 9오버파 이틀 합계 16오버파를 기록하고 만 것이다.

앞 자리에 앉은 김** 선수는 오늘 지옥 같은 바람을 뚫고 신들린 듯한 샷과 퍼팅을 날리더니 1오버파를 기록했다.

그는 마지막 홀인 파3에서는 넉넉한 스코어를 밑천으로 아예 그린을 노리지도 않고 그린 우측 밖 러플에 안전하게 티샷을 보내더니 무난한 어프러치에 이어 서너발짝 퍼팅마저 떨구며 파로 막아낸다.

부담 없이 하는 그의 퍼팅이 얼마나 매끄럽게 굴러가는지 뱁새는 그가 얄밉기까지 하고 초반 파3에서 로스트 날뻔 한 그의(** 선수) 볼을 찾아준 자신이 너무나 바보 같아 보인다.

** 선수는 어느 틈에 휴대폰을 켰는지 눈치 없이(?) 환한 얼굴로 모친에게 전화까지 하고 있다.

엄마! ! 하나 오바 쳤어! 사랑해!”

** 선수 모친은 지금 얼마나 기쁠까?

 

다른 유** 선수도 오늘 7오버파로 뱁새나 박** 선수보다는 잘 쳐서 (뱁새가 보기에는) 무조건 합격이다.

 

*멍청이 뱁새는 마지막 홀에서 연장에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천금 같은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 너무 분했다.

전날은 195미터였던 레이크 코스 4번 홀 그 파3를 오늘은 165미터로 한참 앞으로 당겨 놓았다.

바람이 너무 세서 도무지 진행이 안 된다고 경기위원회가 판단한 것이리라.

 

뱁새는 이 홀에서 맞바람을 감안해 또 하이브리드를 잡았다.

(예선과 본선 4 라운드 동안 뱁새가 퍼터 다음으로 많이 잡은 클럽이 하이브리드일 것이다)

보통 때 190미터는 너끈히 보내는 이 클럽으로 뱁새는 시원한 티 샷을 날린다.

이 홀에서 어떻게든 파를 기록해 연장전에라도 가자는 심정으로.

 

동반자와 캐디 네 사람이 동시에 내지른 굿 샤~!” 소리에 뱁새도 가슴 한 켠이 희망으로 밝아지는 느낌이 든 것도 잠시,

맞바람에 볼은 점점 힘을 잃더니 마지막 30센티미터 정도를 넘지 못하고 그린 앞 턱에 맞고 깊은 벙커에 빠진다.

뱁새 목 높이 정도 오는 벙커다.

 

아! 이렇게 희망이 사라지는 것인가!라는 공포(그랬다. 그것은 엄연히 공포였다)가 뱁새에게 엄습한다.

 

그래도 뱁새는 겨우 정신을 붙든다.

그리고 작전을 고민한다.

 

핀까지 거리는 열 댓 발짝.

여느 때라면 58도 웨지로 조금 덜 칠 거리다.

지금처럼 긴장한 상황에서 내가 컨트롤 샷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차라리 62도 웨지로 보통 때보다 조금 더 세게 치는 게 이 상황에선 실수할 가능성이 적다라는 판단이 선다.

 

뱁새의 판단은 적절한 것이 지금 이 벙커에서 달래서 치다가 철퍼덕 하고 탈출에 실패하는 날이면 그 때는 실낱 같은 희망마저 사라진다.

혹시 홀에 붙이지 못하고 제법 먼 거리 펏이 남을 망정 말이다.

 

뱁새는 마음을 정하고 62도 웨지를 들고 벙커 속으로 내려가 연습 스윙을 하고 벙커 샷을 하는 데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나온 스윙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웨지 헤드가 부드럽게 볼 밑을 파고 지나가고 볼은 모래의 힘으로 '통'하고 튕겨서 날아 홀을 향해 굴러가다가 부드럽게 선다.

홀까지 거리는 두 발짝.

파 찬스.

 

이 펏을 집어 넣으면 이틀 합계 15오버파로 어쩌면 연장전에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뱁새는 가슴을 졸이면서도 아직은 남아 있는 작은 불씨에만 집중한다.

 

뱁새가 보기에는 왼쪽이 살짝 높다. 

자신의 순서가 되자 뱁새가 볼 두 개만 왼쪽으로 봐야지하고 생각하고 볼을 놓으려 순간 지나가던 캐디가 한 마디 거든다.

반듯이 보고 치세요!”라고.

 

뱁새는 캐디 생활을 시작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는 그 캐디가 경기 중반 진행이 느리다고 선수들을 독촉하자 

우리가 정 느리면 경기위원이 와서 시간을 잰 다음에나 벌타를 먹일 텐데 당신이 왜 나서서 재촉해!”라며 핀잔을 준 적이 있다.

또 초반에 알송달송한 브레이크를 몇 차례 물었을 때마다 틀리게 답하는 것을 보고 오늘 캐디 도움을 받기는 틀렸다고 판단하고 당신, 내가 샷 할 때 의견 내지마!라고 야무지게 단도리까지 한 상황이다.

 

그런 캐디가 지나가면서 브레이크가 없다고 했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당연히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밀고 나가야지!

 

그런데 어디 세상사가 그런가?

 

궁지에 몰려서인지 뱁새는 순간적으로 귀가 얇아진다.

(듣자 하니 뱁새가 귀가 얇기로는 조선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한다는 데 뭘! 사업하다가도 어떤 놈한테 홀딱 넘어아서 큰 손실도 봤다며! 캑)

골프를 친 이후 지금까지 퍼팅 브레이크만은 꼭 스스로 판단해서 플레이하는 뱁새인데 지금은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다.

 

뱁새는 당초 볼 두 개 왼쪽을 보려던 것을 볼 한 개만 보기로 하고 라인을 수정한다.

그리고 연습 스윙을 세 번 하고 부드럽게 스트로크를 한다.

볼은 홀을 향해 매끄럽게 반듯이 굴러가는가 싶더니 마지막 두 뼘쯤 남기고 오른쪽으로 휘어 컵을 핥고 들어가다시피 하다가 돌아 나온다.

 

이!럴!수!가!

눈을 감고 고개를 이리 저리 비틀며 주저 앉다시피 한 채로 탄식을 연거푸 토해 내는 뱁새. 

결국 탭인으로 보기.

 

이렇게 오늘 9오버파가 된 것이다.

 

아쉬운 장면은 이것만이 아니다.

두 홀 전인 레이크 코스 2번홀 파5에서는 티 샷이 그림처럼 날아가 240미터쯤 남았다.

뱁새는 투 온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믿기지 않게 참아내고 7번 아이언으로 150미터쯤 보낸 다음 50도 웨지로 90미터를 쳐 홀에 바싹 붙였다.

당시 8오버파로 버디를 기록한다면 7오버파로 내려가 합격 직행을 바랄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 우측이 높다고 보고 친 퍼팅은 또 한 번 브레이크를 먹지 않고 그대로 직진해 금쪽 같은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그 다음 3번홀 짧은 파4버디 홀’(버디를 잡을 가능성이 높은 홀)이라고 마음 먹고 들이댔다.

뱁새의 티 샷은 페어웨이 한 가운데를 갈라 홀까지 남은 거리는 70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58도 웨지로 풀 샷을 날려서 그린 위에 떨구자 볼은 백 스핀을 먹고 홀 옆 세 발짝에 멈춰섰다.

버디 찬스.

'여기서 넣고 마지막 홀 파3를 파로 막으면 합격'이라고 뱁새는 생각한다.

(제발 이런 셈을 하지 말고 덤덤하게 퍼팅해야 하는 데 뭐하는 거니? 뱁새!)

 

꼭 넣어야 하는 펏을 넣는 것이 승부사의 필수 덕목 아닌가?

뱁새는 그런 점에서는 진정한 승부사가 되기엔 아직 먼 모양이다.

첫사랑에게 고백할 절호의 찬스보다 더 소중한 이 마지막 버디 찬스를 또 날려버리고 만다.

 

이번에는 브레이크가 좀 덜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친 것이 홀 끝에서 홱 휘면서 홀을 놓친 것이다.

(볼은 중심을 찾아서 잘 놓고 퍼팅하지 않으면 굴러가다가 힘이 떨어졌을 때 무거운 쪽으로 자빠질 수 밖에 없다. 뱁새의 마지막 버디 찬스도 어쩌면 뱁새가 잘 못 쳐서가 아니라 볼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 때 중심 찾은 '엑스페론 골프볼'을 썼다면 그 퍼팅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고 뱁새는 생각한다)

너무나 아쉬운 파.

 

그리고 마지막으로 맞은 파3 홀에서 합격 직행은 포기하고 연장전에라도 가보자며 노린 회심의 파 펏이 홀을 돌아 나온 것이다.

 

뱁새 눈물은 일행을 태운 카트가 4번홀에서 홀들을 거슬러 클럽 하우스까지 오는 제법 긴 시간 내내 그치지 않는다.

 

후회와 아쉬움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자식 뻘 되는 선수들 사이에서 울고 있는 자신이 더 서러웠고 그래서 또 운다.

5주 가까이 좁은 모텔방에서 혼자 자며 새벽이면 햇반을 커피 포트에 끓여서 깻잎 통조림 따위와 떼우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생각되는가 보다.

신새벽에 알람 시계보다 더 먼저 일어나 누구의 응원도 없이 외롭게 볼을 쳤던 자신이 불쌍한 것이리라.

퍼팅 그린에서 그린 키퍼의 눈을 피해 도둑것(몰래 얻는 뭔가를 말하는 전라도 사투리)으로 숏 게임을 하루 종일 연습하다시피 한 자신이 얼마나 처량하겠는가.

그래서 뱁새는 더 서럽게 운다.

 

스코어 카드를 낼 때는 이미 눈이 토끼처럼 빨개졌을 터인데 누가 볼새라 스코어 카드 제출처(보통 방 하나를 정해서 한다)에 들어가기 전에 콧물을 하고 한 번 빨아들이는 뱁새.

 

잘 쳤어?”

이미 낯이 익은 나이 지긋한 그 중앙경기위원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뱁새에게 묻는 것이 절대 형식적인 인사로 하는 말 같지는 않다.

그럴 것이 오늘 친 136명 가운데 뱁새가 나이가 제일 많다.

 

서울에 빈 손으로 올라가야겠지요?”

라는 뱁새의 목소리에는 낙담이 그대로 묻어난다.

 

뱁새 스코어 카드 왼쪽 머리춤에는 뱁새 이름과 어제 스코어 79타가 적혀 있다.

 

경기 위원은 오늘 스코어를 합산하더니

뱁새 선수! 전반 6, 후반 3, 81타 맞습니까?”라고 애처로움을 담은 목소리로 묻는다.

 

라고 답하는 뱁새 목소리는 기어들어간다.

 

뱁새가 아쉬움과 서러움을 겨우 집어 들고 일어서려는 순간 테이블 위에 쌓여 있는 (이미 제출한)다른 선수들의 스코어 카드를 두루륵훑어보는 경기위원의 모습이 뱁새 눈에 들어온다.

 

뱁새와 눈이 마주친 그는

오늘 날씨가 안 좋아서 다들 못 쳤어! 혹시 연장전에 갈지도 모르니 집에 가지 말고 클럽 하우스 근처에 있어봐!라고 따뜻하게 말한다.

 

상식으로만 따지면 위로하는 말이려니 하고 생각해야 옳은 데

연장전이라는 말에 뱁새는 귀가 번쩍 뜨이며 가슴이 쿵쾅 쿵쾅 뛰기 시작한다.
 

과연 뱁새는 경기위원의 말마따나 연장전에 나갈 수 있는 것일까?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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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smithkim@gmail.com

대회 시작 전 퍼팅 그린에서 몸을 풀고 있는 선수들. 경기를 시작하기 전 선수들의 마음은 다 같다. 오늘 최고의 경기를 하겠다는 그 마음 하나다. 그러나 결과는 뱁새 김용준 프로의 스토리에서 보다시피 너무나 가슴 아프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사진 속 흰 옷을 입은 미녀 골퍼는 KLPGA 이민아 프로(엑스페론골프)다.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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