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직이 없어진다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가?

원장이 없는 빈자리는 컸다.
인재개발원의 원장이 공석이 된 지는 6개월이 넘었다. 전임 원장이 급작스럽게 개인 사정을 이유로 회사를 떠난 후, 회사 사정과 맞물려 원장을 선정하지 못했다. 내부 임원 중에 물망에 오른 사람들이 몇 명이 있었으나, 어떻게 인재개발원을 이끌어 갈 것인가에 대한 비전과 전략이 없다. 사람이 경쟁력이고 답인데, 인재의 정의를 내리지 못했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며, 조직과 인재육성이 사업 경쟁력의 원동력이 되기 위한 변화를 이끌 교육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해야 하는 가에 대한 방향이 전혀 없었다.
6개월 이상 수장을 잃은 인재개발원은 지금까지 해온 교육과정 위주로 운영되었다. 젊은 직원들은 하나 둘 타 그룹의 교육담당으로 자리를 옮겼고, 과장 이상의 직원 중에서 고과가 좋은 사람들은 인재원을 떠나 현업을 택했다. 남아 있는 교육담당자들은 패배의식이 강했다. 갈 곳도 없는 무능한 직원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처럼 어깨가 쭉 쳐져 있었다. 신입사원들 앞에서 당당하고 자부심 높은 태도로 그룹의 현황과 미래를 설명하는 교육담당자가 없다. 신입사원 여러분의 선택을 환영하며 여러분이 미래 그룹의 경영자라는 생각으로 강하게 이끌 것이라는 말을 하는 교육담당자가 없다. 어느 순간, 인재개발원은 그룹에서 나이 많은 고참이 쉬는 노인정으로 변모되어 가고, 워크숍 주제나 교육 프로그램을 인재개발원이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닌 주관부서에서 기획하고 준비해 인재개발원에서 실행한다. 인재개발원은 여관의 역할밖에 하지 못해 여관업이라는 놀림을 받아야 했다. 인재개발원 교육담당자는 가르치고 진단하며 컨설팅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그저 주어진 일정을 소개하는 수준이다. 사내외 강사가 교육을 진행하면 사무실에 들어 와 PC를 바라본다. 교육담당자가 운영자로 전락하여 시간을 알려주는 꾀꼬리가 된 느낌을 주었다. 원장이 없으니 전략과 기획 보고서는 사라졌다. 그룹 전체의 교육예산은 절반 이상으로 줄었고, 시설에 대한 투자는 없고 유지하기에 급급하게 되었다.
김전무가 인재개발원 원장이 되었다.
김전무는 가장 먼저 교육담당자 전원과 개별 면담을 실시하였다. 이들에게 A4지 2장을 주며 한 장은 ‘이 조직이 없어진다면 안 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3가지 이상씩 쓰라’고 했다. 다른 한 장은 ‘인재원의 미래를 위한 구체적 건의 5가지 이상을 작성하라’고 했다. 작성이 끝난 후 전부 강의장 한 벽에는 안 되는 이유, 다른 한 벽에는 건의 사항을 붙이라고 했다. 그리고 2색의 스티커 각 3장씩을 주고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안 되는 이유와 건의 사항에 스티커를 붙이되, 아니다 싶으면 굳이 붙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1시간이 지난 후, 김원장은 스티커가 부착된 안 되는 이유와 건의 사항을 살펴 보았다. 20명이 넘는 인원이 붙일 수 있는 스티커는 전체 60장이 넘어야 했지만, 안 되는 이유와 건의 사항에 붙은 스티커는 10장이 되지 않았다. 김전무는 인재개발원 전원을 회의실로 모이도록 했다. 김전무는 “여러분은 이 조직이 없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느냐?”고 물었다. 묵묵부답이다. 직원을 비자발적으로 해고시키지 않는 회사의 철학과 방침이 이들을 더 유약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어, “여러분의 이런 마음가짐과 행동으로는 이 조직이 조직과 구성원의 사랑 받는 인재원이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김전무는 “내가 함께 근무하고 싶은 인재원은 신입사원들이 큰 소리로 아침을 깨우고, 이곳 저곳에서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인재원, 팀장과 임원들이 후배들에게 자신이 배운 경험과 지식을 열정적으로 가르치며, 밤이 깊었는데도 현업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하느라 불이 커지지 않는 그런 인재원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했다. “사랑 받는 인재원이 된 후에 우리는 미래 먹거리를 이곳에서 기획하여 구체화하며, 각 분야의 전문가와 그룹의 경영자가 될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신의 꿈을 키우며 역량을 강화하여 글로벌 1등 기업을 이끄는 글로벌 1등 인재를 키우는 곳으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교육담당자인 우리가 그릇의 크기가 넓고 깊어야 하며 여러분은 그 역할을 담당하는 그룹의 얼굴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팅을 마치고 김원장은 다시 한 명 한 명을 불러 개별 면담을 실시하였다. 그들의 인사카드를 보며, 강점이 무엇이며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묻고, 무엇을 지원해 줬으면 좋겠느냐를 물었다. 각자의 강점을 강조하며 현재 담당하고 있는 직무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과 중장기 전략에 대해 물었다. 1년 후 변화되어야 할 모습과 1년 안에 해줘야 할 과제를 분명히 제시했다. 과제는 높은 수준의 도전과제였고, 많은 희생이 따르겠지만 할 수 있는 과제였다. 20여명의 교육 담당자는 못한다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지금까지 한직에 있었지만, 해낸다면 그룹에서 가장 근무하고 싶은 부서, 한번쯤은 도전하고 싶은 부서로 만들겠다는 의욕이 생겼다. 개별 면담이 끝나고 김원장은 ‘사랑 받는 인재개발원을 만들기 위한 10대 과제’를 선정하였다. 3일 전만 해도 생각도 하지 못한 과제였다. 흐릿한 눈과 축 쳐진 어깨를 가진 사람은 이제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할 수 있고 해내고야 만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3일이 지났을 뿐인데 그들은 그룹 혁신을 이끄는 주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조직의 성장은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조직장이 가지고 있는 그 조직에 대한 방향, 전략 그리고 조직과 구성원에 대한 관심과 철저한 육성에 의해 좌우된다. 아무리 뛰어난 직원이 많다 하더라도 조직장이 인성이 나쁘거나, 전문성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조직과 직원을 이끌어 갈 방향과 전략 그리고 애정이 없다면 성과는 창출되지 않는다. 방향과 구심점 없는 조직의 한 사람 한 사람의 무사안일은 결국 조직의 모든 사람들을 시키는 일만 하게 하고 누군가 이끌어 주겠지 하는 심정을 만든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어떤 조직이 제 역할을 못하고 정체 내지는 쇠퇴해, 없애도 되는 조직으로 변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런 조직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올바른 인성과 가치관을 갖고 높은 전문성으로 조직과 직원을 강하게 육성시켜, 제대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성과를 맛보게 하는 강력한 조직장 선임이 아닐까?
저는 행운아이며, HR전문가입니다. 삼성/LG/ GS/KT&G에서 31년동안 HR부서에서 근무했습니다. HR 담당자는 CEO를 보완하는 전략적 파트너로 사업과 연계하여 조직, 사람, 제도, 문화의 경쟁력을 높이며 가치를 창출하여 회사가 지속성장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석환의 인사 잘하는 남자는 인사의 전략적 측면뿐 아니라 여러 상황 속에서 인사담당자뿐 아니라 경영자가 어떠한 판단과 실행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던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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