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고 닦아 놓으면 요긴하게 써먹을 때가 있다.

뱁새가 벙커샷을 연마한 것이 그랬다.

 

뱁새 자신의 입을 빌자면 벙커샷 하면 대한민국에 딱 세 사람"이란다.

이 대목에서 뱁새는 늘 왼손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를 펴서 손을 내보이며 셋을 나타낸다.

 

남자 중에서는 최경주 프로, 여자 중에서는 이정민 프로 그리고 남녀 통틀어서 뱁새!”


(얼씨구!)



이 말을 믿어야 할까?

 

뱁새의 벙커샷 수련은 역사가 제법 길다.

물론 10년 남짓한 짧은 뱁새의 골프 경력에 비해 그렇다는 얘기다.

 

골프를 배운지 조금 지난 뒤에도 뱁새는 지질이도(사투리이지만 상식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쓰는 말이니 곧 표준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글쎄?) 벙커샷을 못했다.

 

골프에 입문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싱글 핸디캡 스코어(81타 이하를 치는 것을 말하지만 한국에선 79타 이하를 기록해야 진짜 싱글인 진싱글을 했다고 인정하고 80~81타는 개싱글(?)이라고 폄하 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가 그렇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를 기록한 그이지만 벙커샷은 서툴기 그지 없었다.

 

벙커에 빠지면 운에 맡겼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일단 들어가면 가끔 겨우 탈출하지만 핀에 붙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볼 한참 뒤를 쳐서 벙커에서 탈출도 못하고 여러 번 휘두른 적도 부지기수였다.

아니면 톱 볼을 쳐서 벙커 턱을 넘지도 못하거나.

 

더블 파(흔히 양파라고 하는 데 더블 파라고 하면 조금 더 세련되어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가요?)까지만 세는 아마추어 친선경기만 했기 망정이니 끝까지 셌다면 어쩌면 어떤 벙커에 뼈를 묻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뱁새가 벙커샷 단련에 나선 것은 제법 잘 친다고 뻐기다가 벙커가 유난히 많은 스카이72 오션코스에서 *망신(*이 무슨 자인지는 다 아시죠?)을 당하고 난 다음이었다.

그날 따라 어찌나 벙커에 많이 빠지는지.

처음 빠졌을 때 탈출에 실패해서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고 퍼덕거리다가 더블 파를 기록한 뒤로 그날 내내 벙커에만 빠지면 사단이 난 것이다.

 

그날 뱁새는 독심을 품었다.

(장타자이며 싱글도 기록했다고 기고만장하다가 만만하게 봤던 라이벌에게 지갑을 통째로 털렸으니 속이 시원하다!)

벙커샷을 마스터 하기로.

 

뱁새가 누군가?

한 번 한다고 하면 하는 사람 아니 새 아닌가?

(글쎄다? 요즘 다이어트 한다고 시늉만 하더니 실컷 먹고 제자리로 돌아왔다며?)

 바로 실행에 옮겼다.

 

라운드 때 풀숲에서 주운 공 한 자루(신발 주머니에 담았다)를 들고 벙커샷 연습에 나섰다.

 

뱁새가 찾아낸 벙커샷 최적(?) 연습 장소는 바로 집 앞 놀이터였다.

뱁새는 아파트 단지에 사는데  거주하는 동 바로 앞에 있는 놀이터에는 미끄럼틀 주변에 모래가 깔려 있었다.

(어느 동네 무슨 단지 몇 동인지는 차마 밝힐 수 없는 데 그 이유는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놀이터와 아파트 건물 사이에는 화단이 있고 바로 옆은 주차장이다.

뱁새는 이곳에서 매일 백 개 넘게씩(프로가 되고 나서 보니 별 것 아니지만 아마추어 하수로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것이었다) 벙커샷을 연습했다.

볼을 쉰 개 남짓 갖고 가서 한 번 다 치고 나면 주워담은 다음 다시 한 번 더 쳤다.

어떤 날은 아침에 치고 저녁 무렵에 또 치기도 했다.

 

처음에는 한 번에 볼을 제대로 맞혀 화단으로 올려 보내는 일이 드물었다.

볼 하나를 몇 번씩 쳐야 화단으로 겨우 올려보낼 수 있었다.

 

한 달쯤 지나자(최소한 몇 천 개를 친 뒤라는 얘기다) 제법 요령이 생겨서 맵시 좋게 볼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뱁새는 멈추지 않았다.

(지화자!)

 

그렇게 총 백 일 넘게 치고 나니(만 몇 천개쯤 쳤다는 얘기) 벙커샷에 자신감이 생겼다.

실전에서도 탈출에는 어려움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가끔 홀 옆에 바싹 붙여 원 펏으로 막는 벙커 세이브(그린 사이드 벙커에 빠지고도 파 또는 그보다 좋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도 나오기 시작했다.

벙커샷 울렁증이 있는 동반자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요령을 물으면 우쭐해 하기도 했다.

겨우 제 앞가림 하는 주제에 선생질(절대 교사들을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도 했다.

(그 때 혹시 저에게 벙커샷 배우신 분들께는 사과드립니다. 잘못 가르쳐 드려서 죄송해요. 그 때 알려드린 방법은 정통 벙커샷이 아니더라구요! 흑흑)

 

그러던 어느 날 뱁새의 벙커샷 수련에 위기가 찾아왔다.

집에 온 아내가 이것 좀 보라며 아파트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여줬다.

어떤 미친 인간(애써 완곡한 표현으로 바꾼 것이 틀림 없다. 원문에는 미친*으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이 애들 노는 놀이터에서 골프 연습을 하는 데 볼이 이리 저리 튀어서 위험해요라는 글이었다.

글에는 몇 동 앞 놀이터라는 문구도 들어 있는데 분명 뱁새가 노는(?) 곳임이 틀림 없었다.

 

그랬다.

뱁새가 벙커샷 연습을 하러 웨지 두 개(당시에는 56도와 60도 웨지를 썼다)와 볼 한 봉지를 갖고 놀이터에 갈 때마다 늘 놀이터가 비어 있던 것은 아니다.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미래의 최경주와 박인비에게 뱁새는 간곡하게(?) 부탁을 하곤 했다.

 

애들아! 아저씨 골프 연습하게 잠깐만 비켜 줄래?”라고.

('좋은 말로 할 때'라고 윽박지른 것은 절대 아니다)

 

워낙 인상이 선하게 생긴 뱁새의 으름짱에 아이들은 군말 없이(그건 뱁새 네 생각 아니니?) 비켜 서곤 했는 데 다른 데로 가는 것이 아니고 주로 미끄럼틀 위에 올라 가서 뱁새가 하는 괴상한 짓을 관람하곤 했다.

나중에는 자주 보게 되자 볼을 주울 때 아이들이 뱁새를 도와주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러니까 뱁새는 벙커샷을 연습할 때 갤러리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뱁새가 벙커샷을 잘 하기나 해서 매끈하게 모든 볼이 화단에 바로 올라갔으면 뒤탈(뒷탈은 바른 말이 아닙니다)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또는 아예 탈출도 못해서 미끄럼틀 옆 모래사장에 볼이 머물러 있거나.

 

그런데 가끔은 웨지 헤드로 볼을 직접 맞히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보기 플레이어만 되도 배우는 것이지만 그린 사이드 벙커샷은 볼 뒤 모래를 치는 것이지 볼을 바로 맞혀서는 절대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럴 때는 어찌 되겠는가?

미끄럼틀에서 화단까지는 열댓 발짝이고 그 화단 뒤는 옆 동 건물 벽이다.

볼은 소리를 내며 날아가서 다시 소리를 내고 옆 동 벽에 부딪힌 다음 어디로든 튀었다.

물론 볼 머리를 때리면 낮게 튀기 마련이니 미끄럼틀 높이까지 튕겨나와서 아이들이 맞는 경우는 없었다.

(일단 딱 잡아떼고 보자. 흠흠)

 

그런데 벽을 맞고 옆 주차장쪽으로 날아가는 경우는 많았다.

(그 주차장을 이용하는 주민들은 차에 타고 내릴 때 웬 골프볼이 여기 있지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뱁새가 차마 주우러 가지 못했으니까)

 



우지근 뚝딱

 

그럴 때면 뱁새는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으면 다시 태연하게(뻔뻔하게 아니고?) 연습을 재개했다.

 

주차장쪽에서 볼이 뭔가 금속성 물체에 부딪히는 소리가 자주 났는데 혹시 놀이터 옆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 몸체에 뭔가 묵직한 물체에 맞아 오그라든 자리가 있거든 뱁새이거나 뱁새 같은 정신 나간 *이 주변에 사는 것이니 참고하기 바란다.

 

그렇게 벙커샷에 익숙해지고도 몇 달을 더 연습해 뱁새가 벙커샷에 자신감을 가질 무렵이었다.

출장을 다녀오느라 한 동안 벙커샷 연습을 못한 뱁새가 여느 때처럼 볼 자루와 웨지들을 들고 놀이터를 찾았다.

 

!!!

 

놀이터 바닥에 모래가 없어졌다.

바닥이 전부 우레탄 소재로 바뀐 것이다.

 

!!!!

 

모래가 아이들 건강에 좋지 않다고 우레탄으로 바꿨다나 뭐라나?

뱁새 머리 속에는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왔던 그 글이 떠올랐다.

혹시 뱁새 같은 속 없는 인간들 때문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지 못한다고 생각한 부녀회의 강력한 요청으로 바꾼 것은 아니었을까?

 

뱁새는 잠깐 좌절했으나 여기서 멈출 뱁새가 아니었다.

 

벙커샷 연마를 계속할 장소를 찾아야 했다.

그것도 수시로 할 수 있도록 가까이서.

 

그 때 뱁새의 뇌리에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뱁새는 집으로 뛰어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포털 사이트 지도 서비스를 띄웠다.

(혹시 이 사이트가 뱁새를 후원한다면 나중에라도 사이트 이름을 밝힐 방침이다)

거기서 위성 사진으로 동네를 훑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여간 요령은 좋아! 꾀돌이!)

 

항공사진 모드에서 여기 저기 모래밭 비슷한 곳이 보이면 확대해 보기를 반복하던 뱁새는 뜻밖에('뜻밖의 장소' 처럼 뒤에 꾸미는 말이 올 때는 뜻밖의가 맞고 '뜻밖에 빨리 왔다'처럼 부사로 쓸 때는 뜻밖에가 맞다는 사실)  가까이서 마땅한 장소를 찾아냈다.

바로 옆 단지에 모래사장이 있었던 것이다.

 

뱁새는 부리나케 뛰어갔다.

고운 모래가 있던 뱁새 집 앞 놀이터와는 달리 모래가 거칠어서 작은 돌멩이가 많이 섞여 있었지만 놀이터도 아니고 옆으로 볼이 튀어도 안전한 기가 막힌 장소였다.

(이 또한 공개할 수 없음은 절대 라이벌이 벙커샷을 연마해 뱁새의 뒤통수를 칠까 무서워서가 아니라 '주차장 차량을 우그려뜨린 *이 너냐 '라는 문책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벙커샷 할 장소를 찾은 비결을 공유하는 것은 기특하지 않은가?)

 

이 곳에서 다시 뱁새는 몇 달을 칼을 갈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던가?

(역시 뱁새에게 한자 서비스는 기대난이다)

그러다가 뱁새가 귀인을 만난다.

 

어느날 서점 골프책 코너에서 뱁새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아이고 서점에도 가세요?)

제목은 숏 게임 바이블이었다.

저자는 데이브 펠츠.

그 책 8장은 벙커샷 편이었다.

 

냉큼 책을 사들고 돌아온 뱁새는 특히 벙커샷 부분을 몇 번이고 탐독했다.

그리고 벙커샷의 원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원리만? 떽!)

 

데이브 펠츠 선생이 소개한 방법대로 벙커샷을 연습한 것은 또 다른 인내의 시간이었다.

(기회가 되면 벙커샷 레슨도 하겠다)

벙커샷을 마스터 하겠다는 뱁새의 각오는 대단했는지 차에는 항상 볼 한 자루(물론 뱁새가 골프장 러프를 따라 걸으며 주운 볼이다. 채워 놓아도 벙커샷을 연습하다 보면 볼이 어디론가 날아가서 없어지니 늘 눈에 불을 켜고 로스트 볼을 주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가 따로 실려 있었다.

그리고 모래만 보이면 벙커샷을 연습했다.

그곳이 연습장이든 아니든 말이다.

 

뱁새가 포항에서 사업을 할 때는 마음이 답답하다는 핑계로 바닷가를 찾아(포항시 청하면 이가리 모래사장이나 칠포해수욕장) 수 백 개씩 벙커샷을 하곤 했다.

가끔 백사장에 사람이 없을 때는 백 미터 이상인 페어웨이 벙커샷까지 쳐볼 수 있었다.

여름에 가족과 피서를 할 때 백사장에서 벙커샷을 연습하기도 했다.

대부분 피서객은 ‘저런 미친*이 있나하는 표정으로 지나치곤 했는데 쭈삣거리며 다가와 저도 좀 해 볼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이들도 드물지만 있었다.

(분명 그들도 지금쯤 최소한 싱글 핸디캡퍼가 되었으리라고 뱁새는 짐작한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흘렀더라?

 

아차!

지금 뱁새 KPGA 프로 테스트가 한창 진행중이지.

(독자한테는 전편 읽고 오라고 자주 독촉하더니 정작 필자는 지난 얘기도 안 보고 막 쓰는가 보네?)

 

아이고!

그 얘기는 다음 편에 해야 할 것 같다.
20151030일 전북 군산CC 리드 코스에서 KPGA 프로 선발전 본선 마지막 날 고전하고 있는 뱁새가 기가 막힌 벙커샷을 한 얘기를 하려던 것이 이렇게 된 것이다.

너무 길면 안된다고 편집자가 이 쯤에서 자르자고 하니 말이다.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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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smithkim@gmail.com

 

 

 



파5에서 투온을 시켜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강력한 티샷을 날리고 있는 뱁새 김용준 프로. 볼이 떠난 뒤에도 머리가 그대로 남아 있고 왼쪽 골반이 목표쪽으로 도는 폼이 제법 잘 치는 티가 난다. 프로 테스트 때 이런 스윙을 갖고 있었다면 고생을 덜 했을 것을 하고 생각을 하면 뭘하나 이미 지난 일인 것을!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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