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공자(無腸公子)

                                               윤희구


 

정원 가득 찬비 내리고 물가엔 가을이 가득

제 땅 얻어 종횡으로 마음껏 다니누나

창자 없는 게가 참으로 부럽도다

평생을 두고 애끊는 슬픔 모를 터이니.

 

滿庭寒雨滿汀秋 得地縱橫任自由

公子無腸眞可羨 平生不識斷腸愁.

 

조선 말 윤희구(尹喜求·1867~1926)의 시는 해학과 골계미를 겸비했다. 무장공자(無腸公子)란 ‘창자 없는 귀공자’로 게(蟹·해)를 뜻한다. 껍질 속에 창자가 없으니 단장(斷腸)의 슬픔을 모르리라. 그래서 옛 화가들은 이별 앞에 눈물짓는 이에게 게 그림을 건네며 위로했다.

게 그림의 숨은 뜻은 또 있다. 그중 하나는 과거(科擧) 급제다. 등딱지의 껍질 갑(甲)은 ‘갑’과 ‘일등’을 의미한다.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덕담으로 더없이 좋다. 단원 김홍도 작품에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집게발로 꽉 붙들고 있는 그림이 있다. 갈대를 뜻하는 한자 ‘로(蘆)’는 ‘려(臚)’와 발음이 비슷하다. ‘려’는 윗사람의 말을 아랫사람에게 전한다는 뜻이고, 여전(臚傳)은 임금이 과거에 급제한 사람을 호명하는 것이니 그 의미가 더욱 중의적이다.

게는 껍질 때문에 곽선생(廓先生)으로 불리기도 한다. 김시습은 《금오신화》에서 게를 ‘곽개사(郭介士)’라 했다. 게걸음을 본뜬 곽삭(郭索)의 줄임말이다. ‘곽’은 성곽이나 둘레, ‘삭’은 얽힌 모습을 뜻하므로 ‘개사’는 ‘절개 있는 선비’란 의미다. 옆걸음으로 다닌다 해서 게를 횡행거사(橫行居士)라고도 한다.

《근원수필(近園隨筆)》을 쓴 김용준은 게와 인간의 습성을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는 게를 ‘어리석고 눈치 없고 꼴에 서로 싸우기 잘하는 놈! 귀엽게 보면 재미나고, 어리석게 보면 무척 동정이 가고, 밉살스레 보면 가증(可憎)하기 짝이 없는 놈!’으로 묘사했다. 그러고는 ‘이 비애의 주인공은 실로 나 자신이 아닌가’라며 스스로에게 거울을 비춘다.

‘단장의 비애를 모르는 놈, 약고 영리하게 처세할 줄 모르는 눈치 없는 미물! 아니 나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중에는 또한 이러한 인사가 너무나 많지 않은가.’
그의 비유처럼 게는 ‘속창시’가 없어서 온갖 짓을 다하고 다닐 것 같지만, 딱딱한 등껍질을 갑옷처럼 입고 흙바람 몰아치는 전장에서 기개 있게 덤비는 무사이기도 하다. 바다 용왕 앞에서 두 팔을 창 삼아 번뜩이며 감히 옆걸음질을 친다고 노래한 옛 시인도 있다.

미식가들은 계절별 미각으로 게를 분류한다. 꽃게장은 6월에 잡은 암게로 담근 것이 가장 맛있고, 털 많은 참게장은 가을에 담근 게 좋으며, 대게는 겨울을 넘기고 속이 꽉 찬 박달대게가 제일이라고 말한다.

맛뿐만 아니라 영양도 좋다. 키토산이 많이 함유돼 있어 암을 예방하고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며 빈혈, 변비, 당뇨, 간장 질환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키토산은 게살보다 게 껍질에 더 많이 들어 있다. 말린 껍질은 사료와 거름으로도 쓴다.

대부분 생물은 살이 뼈를 감싸고 있으나 게는 껍질 속에 살이 들어 있다. 그 기묘한 반전의 생태 속에서 오묘한 은유의 시편들이 나오니 더욱 반갑다.

 
고두현/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거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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