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종주산행 2일차,
대피소 침상 폭은 60cm 남짓이다. 모로 누워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가 눈을 떴다. 새벽 2시다. 알람은 3시에 맞춰 놓았는데... 잠을 설쳤다. 다시 잠을 청해 보았지만 헛수고다. 조용조용 일어나 모포를 개어 반납하고 배낭을 꾸렸다. 부스럭거림에 몸을 일으킨 J와 눈빛을 교환했다. 일어난 김에 서둘러 출발하자는 사인이다. 바깥 데크로 나오니 으스스하다. 일찌감치 취사실로 자릴 옮겨 버너에 불을 당겼다.
취사실 창밖으로 어슴프레 보이는 대청봉이 적막하다. 라면 끓여 초간단 요기를 한 후 헤드랜턴을 머리에 두르고 중청대피소를 나선 시각은 03시 12분.



별빛 쏟아져 내리는 설악의 밤풍경을 기대했다. 그러나 구름 사이로 간간이 새어 나오는 달빛 뿐, 칠흑 어둠이다. 날씨를 검색해 보니 오전 7시 전후해 비가 내리기 시작할 것이란 예보다.

봉정암 갈림길 바닥엔 넙데데한 돌이 촘촘히 깔려 있다. 수많은 산꾼들의 발길에 닳아 반질반질하다. 왼편 산중턱 옴팍한 곳에 불빛이 가물거린다. 불자라면 살아 생전에 한번은 꼭 찾고 싶어 한다는 봉정암이다. 해발고도 1,244m에 자리한 봉정암은 오대산 상원사와 양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백덕산 법흥사와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곳) 중 하나이다.
몇년 전 이맘 때, 낮시간에 이 길을 걸어내려 온 적 있다. 가파른 너덜길과 계단길이 반복되지만 펼쳐지는 주변 풍광에 고된 줄 몰랐었다. 탄탄한 근육질의 공룡능선은 어서 오라 손짓하지, 저멀리 울산바위는 위용을 갖춰 존재감을 과시하지, 희운각 계곡 주변의 단풍터널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지, 길 위 모든 산꾼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소녀였고 소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풍광이 어둠 속에 갇혀 있다.
중청대피소를 출발해 가파른 산비탈을 랜턴 불빛에 의지해 한 시간 남짓 걸어 04시 15분, 희운각대피소에 닿았다. 계곡물을 끌어들여 만든 샘터에서 식수를 보충했다.

희운각 대피소는 설악산에서 가장 오래된 대피소다. 1969년 2월, 대피소 인근 '반내피'(현, 죽음의 계곡)에서 한국산악회 소속 제1기 에베레스트원정대가 동계전지훈련 중 전원 조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를 안타까이 여긴 喜雲 최태묵 선생이 "이곳에 대피소라도 있었더라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텐데"라며 사재를 털어 1969년 10월에 대피소를 준공,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공룡능선, 천불동계곡과 가야동계곡이 맞닿은 곳에 자리해 있다. 하루 30여명 밖에 수용할 수 없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예약이 어렵다. 그래서 늘상 지나치기만 하는 곳이다. 곧 130명 정도 수용할 할 수 있는 규모로 확장한다고 하나 중청대피소 폐쇄에 따른 조치라 예약이 어렵긴 매한가지일 것 같다.

이곳에서 200미터를 진행하면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으로 갈라지는 무너미고개다. 산꾼들 사이에서 '갈등고개'로 통하는 곳이다. "공룡 탈까?" "천불동으로 내려설까?"를 놓고 갈등하는 곳이란 얘기다. 지쳐 다리가 절로 휘청이거나, 체력이 바닥나 바닥에 풀썩 주저앉거나, 무릎에 이상이 왔거나, 발목을 접질려 절뚝거리거나, 공룡에 지레 겁먹어 천불동으로 내려가겠다는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서 걸러지고 나눠진다. 우리 둘은 주저없이 '마의 공룡능선'을 택했다. 산우 J는 늘상 이곳에서 천불동 코스로만 걸었기에 이번만큼은 설사 비가 쏟아진다 하더라도 공룡을 택할 거라고 했다.
공룡능선은 업다운이 심한 암릉구간이다. 일단 들어서면 탈출로가 없다. 완주를 해야만 한다.(물론 전문 산꾼들이라면 릿지길도 있긴 한데...) 공룡능선의 거리(희운각대피소에서 마등령까지)는 5.1km다. 공룡의 등뼈를 닮은 까칠한 암릉을 여덟번 넘게 오르내려야 한다.



무너미고개 전망데크를 지나자 바위벽이 떡하니 막아섰다. 랜턴빛을 치켜올려 비춰 보니 경사가 장난 아니다. 늘어뜨려진 쇠밧줄을 단단히 움켜잡고서 몸뚱이를 당겨 올리며 용을 썼다. 본격 공룡의 등뼈를 탐하기 앞서 삭신을 말랑하게 풀어주는 시작점이다.



숲속의 밤은 더욱 짙다. 적막하다. 이따금 기척에 놀란 날짐승이 날개를 퍼득일 땐 털끝이 쭈뼛해지기도 했다. 신발코를 비추는 불빛에 의지해 무념무상으로 걷다가 희운각에서 1.5km 걸어온 지점에 배낭을 내렸다. 전장으로 향하는 행군도 아닌데, 절경을 다 놓쳐가며 깜깜한 밤길을 서둘러 걸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후 4시까지만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설악동 주차장에 닿으면 된다. 반팔셔츠에 반바지차림인데도 온통 땀범벅인 J에게 말했다.
"여기서 좀 쉬었다가 어스름이 걷히면 진행합시다. 온갖 미물들의 밤활동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되지 말고...ㅎ"



체온 보존을 위해 바람막이를 꺼내 걸쳤다. 바위턱에 걸터 앉아 초콜렛으로 열량을 보충해가며 어스름이 걷히길 기다렸다. 30여분 지났을까, 푸른빛 여명이 번지기 시작했다.



다시 배낭을 둘러멨다. 서서히 잿빛구름이 낮게 드리워지면서 공룡능선은 모노톤의 수묵화로 변해갔다. 수묵화 속의 단애와 첨봉, 그리고 기암괴석과 고사목 사이로 홀린 듯 빨려 들었으니...

하늘에 바위가 꽃처럼 피어나 아름답다는 천화대(天花臺)와 천화대의 20여 암봉 중 으뜸인 범봉이 말쑥하게 위용을 뽐내고 동해에서 기어오른 구름은 울산바위를 휘감으며 마등령에 올라 앉았다. 설악 萬象을 오묘하게 컨트롤하는 산신의 능력에 그저 감복할 따름이다.

공룡능선을 걸으며, 매번 느끼는 것은 어줍잖은 필설로 끄적인다는 것은 설악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 싶어 이번 역시 여기서 부터 마등령까지는 썰(說)을 풀지 않고 몇 컷의 사진으로 대신하겠다.






드디어 공룡능선의 끝이 보인다. 오세암 갈림길 이정표가 반갑다. 비선대와 오세암, 그리고 황철봉 거쳐 미시령으로 갈라지는 길목이다. 또 마등령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경계 짓는 곳이기도 하다.



오세암 갈림길을 지나 완만한 숲길을 따라 마등령(1,320m)에 올랐다. 꾸역꾸역 모여들던 비구름이 마등령에 이르자 비로 바뀌었다. 여기서부터 백두대간길을 버리고 하산길이다. 그냥 하산길이 아니다. 비선대까지의 너덜길이 남아 있어 맥 놓긴 이르다.



몇년 전 동일 코스를 종주했을 때 '두번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굳게 결심(?) 했던 것도 실은 마등령에서 비선대까지 이어지는 마의 돌계단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번엔 빗길이다. 신발 밑창도 닳고 닳아 맨질맨질한데다가 가파른 돌계단도 미끌미끌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금강굴 갈림길에 이르러 J에게 "조오기~ 위, 금강굴에 들렀다가 가자"고 했다. J가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누구 잡을 일 있냐고요~" 금강굴까진 바위벼랑에 아찔하게 매단린 철계단을 따라 200m를 더 올라가야 한다.
가도 가도 도무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던 길이었지만 이제 400m만 가면 비선대다. 한발 두발 쉼없이 내딛는 걸음이 실로 놀랍다.



비선대에서 30분을 더 걸어 설악동에 닿았다.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는 소공원 광장엔 연휴를 즐기려는 나들이 인파로 북새통이다. 중청에서 시작, 공룡능선을 타고 넘어 마등령, 비선대, 설악동까지 걸어 온 거리는 총 14.4km. 땀에 절고 비에 젖어 후줄근해진 몰골을 단장키 위해 모텔로 고오~. 설악동 상가 주변 모텔들은 산꾼들을 대상으로 샤워 후 옷을 갈아 입을 수 있도록 룸에 딸린 샤워실을 깜짝 대실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4,000원의 행복'이다.



주말 산에 푹 빠져 사는 트레킹 매니아로서 산행 관련 기록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 山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봉제산업 전문지, '월간 봉제기술'에서 데스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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