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둘러 타임머신 다이얼을 돌려 뱁새가 2015KPGA 프로 선발전 본선 마지막 날 첫 홀로 시작하는 군산CC 레이크 코스 5번 홀에 있는 시간으로 돌아간다.

('5번 홀이 첫 홀이냐'고 묻는다면 전편을 읽지 않은 것이 틀림 없다. 전편부터 함께 한 애독자 여러분은 타임머신을 타는 사람이 지켜야 할 약속 잊지 않으셨죠? 뱁새에게 말해주기 없기.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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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뱁새가 막 첫 티샷을 할 참이다.

5번홀은 400미터가 넘는 파4인데 이 코스에서 두 번째로 어렵다.

(장부상 핸디캡 2번홀이라고 써 있다는 얘기고 뱁새 생각으로는 제일 어렵다고 한다)

 

뱁새 머릿속은 첫 홀부터 복잡하다.

바람이 오른쪽에서 강하게 불어오는 데 페어웨이는 좁다.

왼쪽으로 볼이 당겨지면 해저드라서 바람만 감안하면 한참 오른쪽을 보고 쳐야 하는 데 우측 역시 아웃오브바운드(OB)이다.

결국 뱁새는 저 멀리 페어웨이 약간 우측에 보이는 벙커만 보고 치기로 한다.

 

프리 루틴을 하고 시원하게 스윙을 날리는 데 손맛이 묵직한 것이 나쁘지 않았는지 실수했을 때 나오는 특유의 으악소리는 지르지 않는 뱁새.

볼이 바람에 날려 페어웨이 좌측으로 상당히 감기는데 괜찮을 것 같다는 캐디의 말에 뱁새 안색이 밝아진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페어웨이 좌측에 볼이 없다.

포어 캐디까지 달려와 "볼이 튀는 것을 봤다"면서 함께 러프를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

해저드에 빠진 것이다.

  

세컨샷(해저드에 빠졌으니 스코어를 셀 때는 서드샷이다)도 제법 멀리 남은데다 해저드를 한 번 더 건너야 하는 홀.

그린은 땅콩 모양으로 길죽한 데다 우측은 다시 해저드다.

 

뱁새는 롱 아이언을 꺼내 들고 여전히 강한 훅 바람을 차마 다 감안하지 못하고 그린 중앙을 겨누고 샷을 한다.

이 정도 센 바람이라면 그린 우측을 봐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다.

 

볼은 기가 막히게 맞아서 롱 아이언인데도 제법 높이 뜬다.

그런데 이것이 화를 불러서 볼이 허공의 바람을 타고 왼쪽으로 밀리고 밀리더니 그린 좌측 벙커보다도 더 왼쪽 러프까지 날아간다.

 

내리막 30야드 가까운 어프러치를 남긴 상황인데 핀을 지나면 해저드까지 굴러가기 마련인 벼랑길이다.

까닥 잘못하면 한 홀에서 해저드에 두 번 빠뜨리는 참사가 벌어질 참이다.

 

이런 궂은 날씨에 핀은 또 어떻게 이렇게 오른쪽 구석 해저드 가까이에 꽂아뒀는지!

뱁새가 속으로 누군가를 원망한다.

 

결국 하체를 단단히 고정하고 체중이동을 최소한으로 하고 어깨만 회전하는 트러블 샷의 기본기를 겨우 지켜 온 그린 한 것에 만족하는 뱁새.

투 펏으로 첫 홀부터 더블 보기다.

 

어째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다.

 

괜찮아. 이제부터 잘 하면 돼. 이 홀은 어려워서 다들 보기 이상은 할거야라고 애써 자신을 다독이는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산전수전 겪은 뱁새지만 스스로가 조금 안쓰럽다.

 

6번 홀 370미터짜리 파4에서는 무난히 파.

 

7번 홀 515미터짜리 파5에서 뱁새는 맞바람을 이기고 깔끔한 티샷을 날린다.

날씨가 좋은 날 연습 라운드 때는 투 온을 시도할 수 있을 만큼 티샷을 멀리 보내 본 적도 있지만 오늘은 턱도 없다.

안전하게 3온 전략을 펴기로 하고 미들 아이언을 잡고 샷을 했는데 볼이 밀리더니 카트 도로를 지나 경사진 러프에 떨어진다.

정신 차리자고 뱁새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걸 보니 정신이 없는가 보다.

 

아니나 다를까?

온 그린을 노리고 러프에서 8번 아이언을 들고 세번째 샷을 휘두르는 데 “때앵~하는 종소리 비슷한 소리가 나더니 볼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발끝이 높은 경사를 감안해(발끝이 높으면 보통 볼이 왼쪽으로 휘는 것은 보기 플레이어 이상이라면 다 숙지하고 있을 것이다) 목표보다 우측을 보고 친다는 생각만 했을 뿐 위에 있는 전봇대를 보지 못한 것이다.

(내가 미쳐!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거니? 뱁새!)

 

볼이 조명을 맞고 튀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어리둥절한 뱁새 양 볼에 싸늘한 기운이 싸악 올라온다.

로스트 볼이 났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로스트 볼이면 한 벌타 먹고 나서 제자리에서 다시 쳐야 한다.

벌타는 하나지만 아까 친 것도 타수에 넣어야 하니 사실상 두 타가 순식간에 날아가는 셈이다.

시작하자 마자 더블 보기 두 개를 하면 궁지에 몰리게 되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이 될 터다.

 

오만 가지 생각이 뱁새 머리를 스쳐가는 순간

볼 해저드에 빠졌어요라고 동반자가 알려 준다.

뱁새는 그 어린 동반자가 얼마나 고마운지 친자식보다 더 예뻐 보인다.

말 안 해주고 시치미 뚝 떼고 있으면 꼼짝 없이 로스트 볼 처리를 해야 할 판 아닌가?

(고마워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동반자 세 명 중 누군였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지금은 모두 프로가 된 것은 알고 있으니. 김프로 박프로 아니면 유프로 세 명 중 한 사람이겠지)

 

홀까지 80미터 남짓한 해저드 앞에 드롭을 하면서 뱁새는 '100야드 이내에서는 핀에 붙일 수 있다'는 근거 있는(?) 자신감을 자신에게 주입한다.

맞바람을 감안해 50도 웨지로 보통 때 같으면 100미터쯤 보냈을 스윙을 하는 데 볼이 기가 막히게 날아가더니 핀 옆에 붙는다.

무슨 이런 소설 같은 일이!

그래도 건방 떨지 않고 이리 저리 재서 원 펏으로 막은 뱁새는 보기를 해 놓고도 주먹을 불끈 쥐고 숨을 깊이 들이쉬어 본다.

 

이어지는 8번 홀로 이동하는 카트.

그런데 티잉 그라운드에 카트가 무려 3대나 서 있다.

 

아일랜드 파38번 홀에서 선수들인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뱁새가 이 홀에서 아주 노련한 선택을 한 끝에 파를 기록했다는 얘기는 미리 보고 온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 패스

(긴 사연이 있는 홀이니 전 편을 안 읽은 독자는 이제라도 꼭 돌아갔다 오기를 권한다)

 

이어지는 9 홀 420미터짜리 파4에서 뱁새의 티샷은 왼쪽으로 감기더니 홀과 홀 사이를 구분하는 러프 지역에 빠지고 만다.

 

티 샷을 할 때는 프리 루틴을 하고 딱 한 가지만 생각하고 스윙을 해야 한다.

그런데 뱁새 머리에는 직전 8번 홀에서 자신이 한 어리석은(?) 일이 계속 맴돈다.

내가 미쳤지. 뭔 지* 났다고. 내 앞가림이나 잘 할 것을따위의 후회가 떠나지 않은 것이다.

머리가 복잡하니 스윙은 거칠 수 밖에.

 

러프 지역에서 하이브리드를 잡은 뱁새는 작전이고 뭐고 없이 핀을 보고 시위를 당긴다.

그린 우측에 꽂힌 핀 오른쪽에는 해저드가 입을 벌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결과는 물어보나 마나다.

 

볼이 러프에 놓여 있어 왼쪽으로 감길 것을 감안해 클럽 페이스를 약간 열고 친 것이 교과서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그건 보통 때 얘기고 지금처럼 우측이 위험 지역일 때는 '살고 보는 것'이 먼저다.

볼은 뱁새 생각보다 당겨지지 않고 그대로 날아서 그린 우측 프린지를 맞고 바로 옆 해저드로 튕겨 들어간다.

입을 떡 하고 벌린 채 바라보던 뱁새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누구 탓을 하리

가까스로 보기로 마치고 분을 삭히려 카트도 타지 않고(뱁새 너 안 피곤하니?) 바로 옆 리드 코스까지 걷는 뱁새의 걸음은 쌀 섬을 짊어지고 겨우 겨우 발걸음을 떼는 깡마른 일꾼의 그것보다 더 무거워 보인다.

 

리드 코스 1번홀은 395미터 밖에 안 되어 얼핏 보면 만만해 보이지만 페어웨이 좌우는 벙커가 있고 그린 입구에는 키 높이 벙커가 가로막아 결코 쉽지 않다.

핸디캡 3번이라고 야디지 북에 표시된 것이 괜한 것은 아니다.

 

맞바람과 8번 홀에서의 후회를 이겨보겠다고 뱁새가 힘껏 휘두른 것이 화근이 되어서 티 샷한 볼은 신나게 오른쪽으로 밀리더니 카트 도로 근처 러프까지 간다.

 

남은 거리는 180미터 이상.

맞바람까지 감안하면 하이브리드를 잡아야 하는 데 그린 앞 벙커를 넘길 자신이 없다.

뱁새는 그래도 한 가닥 남은 정신줄을 겨우 붙잡고 자신의 실력을 감안해 아주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그린 우측 러프로 볼을 보내서 거기서 어프러치로 승부를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이 작전은 그럴 듯 해서 그린 우측에서 스무 발짝 남짓한 피칭 앤 런(볼을 조금 띄워서 그린에 맞은 뒤 굴러가게 하는 샷)으로 핀 옆 두 발짝에 붙인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머리 속이 복잡한 뱁새가 내리막이 두려워 과감하게 스트로크를 하지 못하는 바람에 볼은 홀 앞에서 살짝 휘어서 보기로 마무리 할 수 밖에 없다.

 

동반자 중 얄미운 두 녀석은(뱁새 심정이 그랬다) 그림 같은 어프러치로 파를 기록한다.

그 둘 중 하나는 8번 홀에서 뱁새가 베푼(배푼은 틀린 표현!) 인정의 특혜를 입은 김** 선수도 있다.

 

잊어버리자. 잊어버리자

뱁새가 연신 주문처럼 이 말을 되뇌인다.

 

뱁새는 뺩을 때리는 거친 바람보다 더 아프고 바윗덩이를 진 것처럼 무거운 몸보다 더 무거운 마음속 후회와 싸우고 있나 보다.
 

과연 뱁새는 이 고비를 이겨 낼 수 있는 것일까?

뱁새가 힘을 내도록 우리도 응원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독자 여러분 다시 한번 외쳐 주세요.

뱁새 파이팅이라고.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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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좋기만 해서야 어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특히 뱁새 김프로처럼 자기 입으로 인생을 걸었다고 얘기하는 프로 테스트에서 맘씨 좋은 동네 아저씨 노릇을 하고 있으면 답답하다.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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