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윗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KPGA 프로 선발전 마지막 날을 맞은 뱁새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장해물은 무엇일까?

 

늦가을 바닷가 코스에 불어닥치는 태풍에 버금 가는 바람?

아니면 한 달 넘도록 테스트 준비에 매진하느라 바닥난 체력?

 

서둘러 타임머신 다이얼을 2015년 10월30일 전북 군산에 있는 군산CC 레이크 리드 코스로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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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뱁새가 보이는데 눈빛이 반짝거리기는커녕 퀭하다.

눈 밑에는 다크 서클이 늘어진 꼴이 꼭 너구리 같다.

코밑과 턱 뿐 아니라 뺨을 따라서도 수염이 검게 제법 자랐는데 구레나룻(여러분 구렛나루는 틀린 표현이에요! 저도 헷갈렸어요)이 멋있기나 하다면 봐 줄만 할 텐데 쥐 뜯어 먹은 듯 제멋대로 자라서 꾀죄죄하기가 그지 없다.

면도할 시간도 없었다는 게 뱁새 측 해명인데 몇 분이나 걸린다고?

뱁새는 흰 바지를 입었는데 오른쪽 주머니가 새까만 것이 지저분한 손이 무던히도 드나들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혹시 한 달 내내 빨래 안 한 것 아녀?)

 

뱁새가 자기 조 카트에 파우치 따위를 실어놓고 그 통에도 뭐 좀 해보겠다고 퍼터와 볼 몇 개를 들고 연습그린으로 나선다.

그런데 금방 안내 방송이 나오자 약간 맥이 풀리는 듯해 보인다.

 

“KPGA 프로 선발전에 참가한 선수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립니다. 짙은 안개로 출발이 30분 늦어집니다. 선수 여러분은 클럽 하우스 근처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뱁새가 한 숨 돌리다가 마음의 준비를 다시 하려고 할 때마다 똑같은 방송이 되풀이 된다.

무려 네 차례나.

 

6시 조금 넘어서 5조로 출발하기로 한 것이 9시가 다 되어서야 안개가 걷히면서 드디어 시작한다.

경기위원회가 바람이 오후로 갈수록 거세지는 군산CC에서 형평성을 감안해 샷 건 방식(이제는 다 아시죠? 조별로 홀마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신호가 울리면 일제히 경기를 시작하는 방식인 것)으로 급히 바꾼다.

 

‘지친 몸으로 바람을 어떻게 이길 것이냐’가 승부가 되겠구나 하고 뱁새는 이빨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타임머신을 얻어 탈 수 있는 우리는 두 시간쯤 앞질러 가서 오늘 뱁새가 마주칠 가장 큰 장해물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대신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이 꼭 지켜야 할 원칙은 ‘미래에서 안 사실을 과거에 있는 당사자에게 알려줘서 과거를 바꿔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독자도 약속을 한다고 하니 함께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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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샷 건을 하러 레이크 코스 5번 홀로 가고 있을 뱁새보다 한 시간 반 정도 더 나중으로 가서 레이크 코스 8번 홀에 왔다.

파 3홀인데 아일랜드 그린이다.

거리는 160미터나 되어서 바람이 오늘처럼 세게 부는 날은 누구라도 두려울 홀이다.

(국내 최정상 프로들이  겨루는 2017년 군산오픈 때도 이 홀은 120미터에 세팅을 한 것을 보면)

 

뱁새는 어제 이 홀에서 동반자 가운데 유일하게 파를 했다.

어제는 중핀이었는데 맞바람을 감안해 24도 하이브리드를 친 것이 먹혔다고 한다.

160미터 거리를 190미터 가까이 나가는 클럽으로 해결하다니 바람이 얼마나 셌는지 짐작이 간다.

 

오늘은 바람이 어제보다 더 지독하다.

더구나 백핀이다.

야디지 북을 보면 계산해보니 핀까지 거리는 165미터가 조금 넘을 듯 하다.

 

뱁새는 먼저 친 동반자 세 사람의 샷을 보고(그 새 말구로 밀렸구만!)  고민한다.

몇 번 아이언을 잡았는지 알 길은 없으나(공식 대회에서 몇 번 아이언 썼는지 따위를 자기 샷하기 전에 물어보면 부당하게 어드바이스를 구한 것이 되어서 2벌타를 받는다) 한 사람은 맞바람 탓에 그린에 못 미쳐 해저드 구역에 떨어졌고 다른 한 사람은 오른쪽으로 밀려 벙커에 빠졌다.

그리고 한 사람은 조금 넉넉히 잡고 친 것 같은데 볼이 왼쪽으로 감겨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린 주변에 없다면 티잉 그라운드에서 3타째로 다시 쳐야 할 터다.

 

뱁새는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다가 한숨을 내뱉고는 19도 하이브리드를 꺼내 든다.

풀 스윙을 하면 210미터는 나가는 클럽을 160미터에서 선택한 것이다.

아무리 맞바람이 심하다고 해도 과한 것 아닌가?

강한 바람뿐만 아니라 채를 시원하게 휘두를 힘조차 없는 자신의 현재 상태를 받아들인 것일까?

 

뱁새는 툭 떨어뜨리듯 클럽을 겨우 던지고 볼은 얻어걸렸는지 적당한 아치를 그리며 그린 센터에 떨어지더니 핀을 살짝 지나 그린 끝에 걸린다.

‘야호!’

성공이다.

뱁새는 자식뻘 되는 선수들과 동반하고 있는 것도 잊었는지 팔짝팔짝 뛰며 초랭이 방정을 떤다.

저렇게 좋을까?

 

나중 일이지만 이 홀은 이번 테스트 때 승부처였다.

뱁새는 오늘도 가볍게 투 펏으로 파를 잡았다.

이틀 연속 파.

 

그런데 전체 선수의 홀별 스코어를 보면 레이크 8번 홀에 '7'이나 '8'이라고 적힌 경우가 수두룩하다.

파3인데 일곱타나 여덟타를 쳤다면 도대체 몇 번이나 해저드에 빠뜨렸다는 얘긴가?

(혹시 손으로 꼽으면서 세어보고 계신 독자는 안 계시죠? 최소한 두 번 이상 해저드에 빠진 겁니다.)

어쩐지 뱁새가 이 홀에서 티 샷을 하기 전에도 카트가 3대나 밀려 있더라니.

(훗날 들은 얘기로는 이날 가장 많을 때는 여섯대나 밀려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뱁새가 넘어야 할 장해물은 이것이 아니었다.

 

이 홀에서 뱁새는 그 짧은 순간에 평생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지경에 놓인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첫번째는 동반자 중 세번째로 티샷을 한 김** 선수(명예를 위해 실명을 밝히지 않지만 당사자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와 얽힌 것이다.

김** 선수 볼은 왼쪽으로 감겼고 한 참 이곳 저곳을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그는 해저드 처리를 하기로 하고 드롭 존으로 향한다.

그런데 드롭 존은 누더기 처럼 해져서(얼마나 이 홀에서 해저드에 빠진 사람이 많았으면 그랬을까?) 드롭하다가 운이 없으면 맨땅에서 샷을 해야 할 판이다.

한참 망설이던 그는 티잉 그라운드로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한 참을 걸어가서 티업을 하기 직전이었다.

 

그 때 동반자 가운데 유일하게 온 그린 시켜 놓고 희희낙락하고 있는 뱁새의 눈에 스프링클러 자리에 쏙 들어가 있는 볼 하나가 눈에 띈 것이다.

물어보나마나 김** 선수의 볼이다.

 

뱁새는 순간 머뭇거렸다.

볼 임자에게 알려줄 것이냐?

그냥 모르는 채 내버려 둘 것이냐?

 

알려주면 라이벌인 그는 그린 사이드 칩 샷으로 파를 할 가능성이 크다.

내버려 두면?

해저드 처리는 일단 드롭 하면 끝이다.

원구를 찾았다고 해도 드롭한 볼로 플레이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 선수는 그냥 두 타를 까먹게 된다.

 

한 타가 아쉬운 상황.

한 명이라도 더 자신보다 못 쳐야 테스트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찰라의 순간에 뱁새가 갈등하는 것을 두고 뱁새의 인간성을 논할 수 있을까?

(글쎄다! 저번에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가 어쩌고 하면서 이를 악물더니 오늘은 웬일로? 흠흠)

 

'내버려 두자!'

'아니야 알려주자!'

뱁새의 마음 속에서 냉혹한 승부사와 인정 많은 머저리 밥통 같은 아저씨가 싸운다.

 

무엇이 아저씨의 발언권을 더 추어올려준 것일까?

뱁새는 소리를 친다.

"볼 여기 있다아~!"

 

티잉 그라운드에 가서 볼을 티업 할 준비를 하고 있던 김** 선수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그린 쪽을 바라본다.

 

뱁새는 무인도에 갇힌 조난자가 저 멀리 지나가는 배를 보고 양팔을 휘휘 내저으며 목청이 터져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과 똑같이 한다.

“니 볼 여기 있다고~오!”

(바람소리에 묻혀 제대로 분간할 수는 없지만 ‘네 볼’이라고 안 하고 ‘니 볼’이라고 한 것 같다. 급하면 꼭 고향인 전라도 사투리가 나오는 게 뱁새의 습관이다. 참고로 뱁새 고향은 해남인데 친구들이 완도에는 최경주가 있고 해남에는 뱁새가 있다고 농담을 하면 혹시라도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라고 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한다나 어쩐다나?)

 

바람소리에 섞여 정확히 듣지 못해놓고도 손을 내두르는 뱁새의 바디 랭귀지(아, 이런 것도 바디 랭귀지에 속하는구나!)의 뜻을 알아챘는지 김** 선수가 그린 쪽으로 한 달음에 달려 온다.

5분 이내에 찾은 것이어야 하니까 서두르는 것일 것이다.

그의 볼이 맞다.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스프링클러 헤드에 있던 볼을 구제 받아 그린 사이드에 드롭하고 친 그의 칩 샷이 그대로 홀에 빨려 들어간 것이다.

버디!

 

김** 선수는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뱁새는?

얼굴이 사색이 된다.

 

내버려 뒀으며 김** 선수는  최소한 더블 보기요 어쩌면 이 홀에서 무덤을 판 다른 여러 선수들처럼 일곱타 혹은 여덟타를 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오지랍 넓은 동네 아저씨가 볼을 찾아주는 바람에 버디가 되었으니 서너타 이상을 번 것 아닌가?

 

‘내가 미친 놈이지’라는 생각이 뱁새의 뇌리를 지나친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다.

 

뱁새의 인간성을 시험하려고 신이 점지한 홀인가?

(늘 밝히지만 필자는 종교적 편향은 전혀 없다)

 

한 선수가 또 사고를 치려 한다.

 

맨 처음 티 샷을 하면서 맞바람은 얕보고 덤벼 볼이 턱도 없이 짧아 해저드 구역에 떨어진 박** 선수다.

그의 볼은 해저드 내 얇고 작은 갈대 사이에 놓여 있다.

 

바닥에 대지 않은 채로(해저드에서 지면에 클럽을 대면 2벌타다) 백스윙 때 혹시 갈대를 부러뜨린다고 해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다운 스윙해서 볼을 쳐내면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박** 선수가 정신이 나갔는지

갈대를 손으로 잡으려고 한다.

옆으로 제치거나 뽑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 때 뱁새는 볼을 찾아주느라고(가슴에 손을 얹고 감시하러 간 것이 절대 아니라고 뱁새는 우기는 데 글쎄다!) 근처에 있다가 그 낌새를 챈다.

 

그 짧은 순간에 뱁새가 소리를 빽 지른다.

“야 이 미친*아”

얼마나 급했으면 *자가 섞여 나온다.

(*자가 뭔지는 이제 말 안 해도 아시죠?)

 

화들짝 놀란 박** 선수가 뱁새를 돌아본다.

 

“해저드에서 갈대 뽑으면 벌타인 것 몰라? 뭐 하는 거야?”

뱁새는 그 짧은 시간에 골프 룰까지 알려준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박** 선수.

고맙다는 말도 할 엄두를 못낸 채 클럽을 놀려 개흙에 놓인 볼을 맞혀 겨우 그린에 올려 놓는다.

이어서 투 펏으로 보기.

 

박** 선수 역시 내버려 뒀으면 최소한 트리플 보기를 하는 상황인데 보기로 막게 된 것이다.

(갈대를 제치는 순간 이미 돌이길 수 없이 패널티다)

 

9번 홀로 향하는 카트에서 뱁새는 머리가 복잡하다.

후회막급이다.

‘내가 미쳤지. 죽든지 말든지 내버려 둘 것을. 뭐 하러 살려줘서”

 

이 후회는 죽다 살아나 버디를 한 김** 선수(최종적으로 김** 선수는 2위로 프로 테스트를 통과했다. 김프로 잘 치고 있지?)가 그 다음 홀부터 신들린 듯 샷을 하면서 마지막 홀까지 뱁새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첫날 넉넉한 합격권에 든 동반자 네 사람 모두 실력은 큰 차이가 없다.

(흠흠흠. 하여튼 묻어 가기에 일가견이 있다니깐. 아무래도 뱁새 네가 제일 실력이 부족하겠지! 캑)

 

그런 데 결정적으로 경쟁자 두 명을 침몰시킬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에 왔는데도 제 발로 차버리다니!

 

이렇게 인심을 쓰고도 뱁새는 과연 프로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
 

그런데 답답한 노릇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가 다시 첫 홀로 돌아가더라도 뱁새에게 미래의 일(?)을 알려줄 수 없다는 점이다.

환장하겠네!

이거 어쩐다지?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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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onsmithkim@naver.com

문제의 그 군산CC 레이크 코스 8번홀 파3. 가는 글씨로 뭐라고 써놓은 것이 뱁새의 필적이다. 강풍 속에서 프로 선발전 본선 이틀 모두 파를 했다고 뱁새가 무용담을 얘기하더니 딱 보기에도 어려워 보인다.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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