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했다.

아무리 친선경기라지만.

전반을 친구에게 한 타 지고 넘어왔다.

아마추어인 친구에게.

나는 40타, 친구는 39타.

(핑계를 좀 대자면 친구는 대단한 장타자다. 아마추어인데 나와 비거리가 같다.그리고 나에게 골프를 배우고 있다)

 

서른발짝쯤 앞밖에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속에서 시작한 새벽 티업.

나는 첫 홀 보기(세컨샷 때 앞이 안 보임).

둘째 홀은 잘 맞았는데 볼이 없다. 더블 보기.

 

그렇게 시작한 라운드에서 친구는 귀신처럼 퍼트를 떨어뜨린다.

뒷벽치기로.

마치 신지애로 빙의한 듯 하다.

 

핸디캡 10타를 주고 시작한 내기인데, 일부라도 회수하기는 커녕 보태주고 전반을 마쳤다.

 

희망이 보이는 것은 세가지.

내 샷이 살아있다는 것.

또 친구가 그늘집에서 막걸리를 시켰다는 것.

그리고 배판도 있다는 것.

(흐흐흐)

 

친구에게 충고를 한다.

(진심이었다)

늦추지 말라고.

긴장을 한 번 풀면 다시 찾을 수 없다고.

 

그러나 어디 세상사가 그런가.

넉넉해지면 느긋해진다.

아니 방심한다.

(이런 섭리를 잘 아니까 뱁새가 지고 있는 주제에 충고를 하지)

 

후반 첫 홀, 친구가 멋진 티샷을 날린다.

(아니, 막걸리를 두 잔 마시고도)

어휴, 이거 역전하기 쉽지 않겠는데 하는 생각도 잠시.

100m도 안 남은 자리에서 톱핑을 내더니 40m 어프러치를 실패하고 보기를 한다.

(얼씨구)

 

이어지는 두번째 홀.

친구는 확 감기는 티샷을 하더니 트리플.

같은 홀에서 나는 버디.

(지화자)

 

친구는 다음 홀에서도 더블 보기.

이어지는 실수.

나는 줄파.

 

친구는 그렇게 결국 후반을 46타로 마쳐서 85타.

나는 후반을 1오버로 끝내서 77타가 된다.

(나도 승패가 이미 갈린 마지막 홀에서 멋지게 티샷을 날려놓고 세컨샷 미스. 웃다가. 이어지는 서드샷은 62m에 오르막. 나도 방심을 한다. 62도 웨지로 그림같이 붙이겠다는 무모한 선택을 한 것이다. 결과는 턱이 키보다 높은 벙커에 콱 박힌다. 별 수 없이 탈출만하고 더블 보기. 에고)

 

골프 한 라운드는 18홀이다.

승부는 18홀이 끝나야 결정된다.

승기를 잡았다면 절대 놓아서는 안된다.

흐름을 지켜야 한다.

프로든 싱글 핸디캡퍼든 보기 플레이어든 다 마찬가지다.

말수도 줄이고 술은 말할 것도 없다.

'마음을 놓으면(긴장을 풀면) 그 님은 떠난다' .

그래도 친구가 스코어 카드를 챙겨갔다.

9홀에 프로 이겼다고.TT

(경훈이, 자네는 너무 무서워! 꼭 언더파 치기를 응원하네)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뱁새 김용준 프로가 한경닷컴 골프칼럼 유구무언 애독자를 대신해 '우리 모두 한 타라도 잘 치게 해달라'는 기원을 하늘에 드렸다.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ironsmith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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