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시] 어찌하여 그대는 나를 깨우느뇨?

입력 2017-09-29 17:29 수정 2017-10-23 10:05
          오시안의 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


 

어찌하여 그대는 나를 깨우느뇨?

봄바람이여! 그대는 유혹하면서

‘나는 천상의 물방울로 적시노라’라고

하누나. 허나 나 또한 여위고

시들 때가 가까웠노라.

내 잎사귀를 휘몰아 떨어뜨릴 비바람도

이제 가까웠느니라. 그 언젠가

내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던 나그네가

내일 찾아오리라. 그는 들판에서

내 모습을 찾겠지만 끝내 나를

찾아내지는 못하리라.

 

‘오시안의 시’는 독일 문호 괴테가 자전적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여주인공 로테에게 읽어주며 격정에 사로잡힌 작품이다. 소설 속의 시간대는 크리스마스 직전이다.

그가 이 작품에서 인용한 오시안은 3세기 무렵의 고대 켈트족 눈먼 시인이자 용사다. 1765년 제임스 맥퍼슨의 시집을 통해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오시안의 시는 당시 유럽의 혁명 바람을 타고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괴테가 소설 인용한 것 외에도 나폴레옹은 이 시에 나오는 핑갈의 전투를 실제 전쟁에 적용했다. 화가 앵그르는 ‘오시안의 꿈’이라는 그림을 그렸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낭만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괴테가 20대 중반에 겪은 일을 토대로 쓴 작품이다. 약혼자 있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그는 이룰 수 없는 비련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다 유부녀를 사랑한 끝에 권총으로 자살한 친구의 이야기를 연결해 쓴 것이 이 작품이다. 이 소설로 그는 스타가 됐고, 작품 속의 베르테르가 즐겨 입던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연미복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모방 자살 신드롬도 생겼다.

베르테르가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오시안의 시’를 읽어주는 대목에서 로테도 감동에 젖어 함께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베르테르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결심을 했다는 사실을 눈치챘지만 운명의 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시에 감명 받은 그녀는 베르테르에게 한없이 연민을 느끼며 그의 손을 자기 눈과 이마, 가슴에 갖다 대며 뜨겁게 뺨을 합친다. 베르테르도 그녀를 부둥켜안고 키스를 퍼붓는다. 이 장면은 걷잡을 수 없는 흥분의 소용돌이로 독자들을 휘몰아간다. 하지만 곧 정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와 그의 품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베르테르를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베르테르가 자살을 결행하려고 여행길에 쓰겠다며 권총을 빌려 달라는 메모를 하인 편에 보냈을 때 그녀의 가슴은 요동친다. 그녀는 심부름 온 하인에게 떨리는 손으로 계속 머뭇거리며 시간을 지체해 보려 최대한 노력한다. 하지만 남편의 재촉에 먼지까지 닦아서 권총을 내어주고 만다.

베르테르는 그녀가 ‘떨면서 먼지까지 닦아서’ 주었다는 하인의 얘기를 듣고 ‘기쁨에 넘쳐 사랑하는 여인의 손을 통해 죽음을 맞도록 축복해 준 신께 감사하다’고 사후에 로테에게 전해질 편지에 덧붙인다. 그녀의 손이 스쳤다는 생각에 한없는 애정으로 총에 키스를 수없이 하는 젊은 베르테르의 한없는 슬픔.

그 장면에 ‘어찌하여 그대는 나를 깨우느뇨?’라는 외침과 ‘허나 나 또한 여위고/ 시들 때가 가까웠노라’라는 탄식이 오버랩되어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끝내 나를/ 찾아내지는 못하리라’는 예언적 명구의 울림이 그래서 더 크고 깊다.

참고로, 맥퍼슨이 쓴 장편 서사시 ‘오시안의 노래’ 첫 부분은 이렇다.

 

어스름 밤하늘의 별이여! 너는 서녘에서 찬란히 반짝이며,

빛나는 이마를 구름 밖으로 추켜들고 의젓이 언덕을 넘어가누나.

너는 무엇을 찾기에 거친 벌판을 눈여겨보느뇨?

사나운 바람도 자고, 멀리서 계곡 물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출렁이는 물결은 바위를 희롱하고, 파리 떼 윙윙거리며 벌판을 날아간다.

너 눈부신 빛이여! 무엇을 찾느뇨?

너는 눈웃음을 치며 흘러가는구나.

흐르는 물결은 기꺼이 너를 껴안고 사랑스런 머리칼을 씻어 주누나.

잘 가거라, 고요한 별빛이여! 어서 나타나거라, 너 오시안의 혼이 깃든 별빛이여!

너는 힘차게 나타나누나. 세상을 떠난 벗들이 눈에 선하여라.

그들은 생존해 있던 지난날처럼 로라의 황야에 모여드누나.

핑갈은 안개에 젖은 기둥처럼 나타나고, 부하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네.

보라, 노래하는 시인을…

 
고두현/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거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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