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입력 2017-10-09 09:11 수정 2017-09-29 15:48
인문학에 사람들의 관심이 많다. 인문학 정의를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으로 내린다. 보통은 ‘인간다움’을 찾고 연구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사람이란 누구인가?’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살았던 사람들, 성현들에 대한 연구, 그들의 사상을 오늘 우리들에게 배울 점 등을 다시금 되새겨보는 것이라고 본다. 인문학의 첫 질문은 ‘사람은 누구인가?’이다. 그것을 좀 더 좁혀 들어가면 ‘나는 누구인가?’이다.

어느 덧 살아온 햇수도 적지 않은 나이가 되다보니,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많이 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하고 정리를 한 결과물이 자서전, 자전 등이다. 옛 선비들의 글 중 행장, 묘지명 등은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보는 사람됨이라면, 자서전(自敍傳) 자전(自傳) 등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최근 선비들의 그런 글을 모은 책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읽었다. 그들의 자전(自傳)은 글 분량이 많지 않다. 예외도 있다. 대표적인 글이 심노숭(1762-1837)의 『자저실기』(自著實紀)이다.

“성격이 편안하고 고요함을 좋아하여, 많은 사람이 모여 시끄러운 곳은 몸뚱이를 아예 들여놓지 않고 피했다. 그렇기 때문에 집에 거처하는 때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했고, 향리에 거처할 때에는 고장 사람들이 그가 어진지 그렇지 않은지를 몰랐다. 벗과 사귐에 있어서도 벗들이 그와 왕래하지를 않았다. 아아, 이 사람은 그저 병든 사람인가? 그저 바보인가? 몸은 병들어 있을지언정 마음에서는 병으로 여기지 않으며, 바깥으로는 바보이지만 내면은 바보가 아니다. 도화를 두고 서적을 두고서, 그 속에 몸을 푹 담그어 본성을 기르니, 지각이 아예 없다고 할 수 없다.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어서 그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으니, 사업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찬(贊)은 다음과 같다. -중략- 오로지 스스로의 덕을 지킬 줄 알 뿐이고, 남에게 알려지길 구하지 않으니, 세인이 알지 못함이 마땅하도다 ”

위 글은 권익창(1562-1645)의 <호양자자전(湖陽子自傳)>일부이다. 호양자(湖陽子)는 그의 호(號)이며, 그는 이름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죽을 때까지 학문에 몰두 해 퇴계(退溪)학맥의 전통을 고수한 인물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찬을 쓴 사람도 있다. 그 중 하나가 표암 강세황(1713-1791)이다. 그의 화상찬(畵像讚)을 보자.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수염과 눈썹이 하얗구나. 머리에는 오사모를 쓰고. 몸에는 하얀 야인의 옷을 입었네. 여기에서 볼 수 있다네.마음은 산림에 있지만. 이름은 조정에 오른 것을. 가슴에는 많은 서적을 간직하고. 필력은 오악을 뒤흔드네. 세상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나 홀로 즐길 뿐. 늙은이의 나이는 일흔이고 늙은이의 호는 노죽 이라네. 그 화상은 자신이 그린 것이고. 그 화상찬도 자신이 지었다네”. 『나 홀로 즐기는 삶』 인용.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참 ‘나’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때로는 ‘아니, 저런 사람인지 몰랐다’ 하는 소리도 듣는다. 최근에 청소년전문 사역자가 성추행 사건으로 교계에 구설수에 오른 일을 보면서, 사람은 겉으로 보거나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나’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다분히 외형적이고 어떤 결과물 업적 등이다. 그러나 ‘나는 누구인가?’는 ‘나’라는 사람의 진솔한 내면, 인간성, ‘나’의 가식 없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지도자가 되거나 종교인일수록 많은 질문을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 앞에서 옳음과 바름을 위해 씨름하면서 자신을 다잡아 가야하는 존재가 아닐까? 바울의 고백이 생각난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는 원치 않는 것을 향해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아, 이것밖에 못되는 인간이 바로 ‘나’인가?”(롬7:24) 고민하는 모습. 이런 고민을 했던 본회퍼( Bonhoeffer 1906-1945)의 시(詩) 일부이다.

 

“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명랑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중략-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목 졸린 사람처럼 숨쉬려고 버둥거리는 나,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중략-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나님!”

이 가을에 진지하게 ‘나는 누구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어떨까? 글로 ‘나는 누구인가?’를 정리하는 자전(自傳)을 한번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목사입니다. 몇년간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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