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뱁새도 했는 데 나는 왜 못해! 8

입력 2017-09-28 11:00 수정 2017-10-14 16:53
언제 넘어졌냐는 듯 훌훌 털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뱁새도 그런 새 아니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너무 아쉽게 지역 예선을 탈락한 뱁새는 그 충격에 한동안 시달렸다.

지역 예선 마지막 라운드를 마치고 사우나에서 몸을 지질 때만 해도 씻을 듯 풀린 것 같던 피로가 몰려와서 그랬을까?

몸살로 한 주 가까이 앓아 누웠다.

자다가도 아쉬움 탓인지 몸부림 칠 때가 많았다.

‘에이 *. 때려치우자. 이게 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할 때마다 한숨을 쉬고 몸을 뒤척이며 돌아눕곤 했다.

‘저 **먹을 골프채를 내다 버려야지’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다.

(*과 **이 어떤 글자인지는 말 안 해도 다 아시죠?)

 

그런데 너무 약이 올랐다.

그동안 흘린 땀도 너무 아까웠다.

실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 ‘큰 소리 뻥뻥 치다가 주저앉은’ 꼴이 너무 창피했다.

(‘어이 젊은 친구! 이 바닥 겸손해야 돼!’라는 영화 타짜의 대사는 주인공 고니 같은 천재에게는 가당찮은 말이지만 뱁새 같은 오리지널 된장 촌놈 노력파에겐 금과옥조다)

 

그래서 뱁새는 골프 채를 다시 잡을 수 밖에 없었다.

 

뱁새는 2주가 조금 더 지나서야 기운을 차리고 다시 진짜 죽어라고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훨씬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고 9월~10월에 있는 '2015년 제3차 KPGA 프로 선발전'에 다시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실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전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말이 쉽지 고시철만 돌아오면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고시생처럼 내려놓기가 어디 쉬운가?)

 

 

2015년 10월에 열린 3차 프로 테스트는 예선과 본선을 모두 전북 군산CC에서 치렀다.

뱁새는 9월 하순에 일찌감치 짐을 싸서 군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최대한 깔끔한'(저렴한과 같은 의미인 것 짐작하시죠?) 숙소를 잡고 5주 가까이 군산에 머물면서 프로 테스트 준비에 전념했다.

다른 선수들은 부모나 아카데미 동문과 함께였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연습하고 혼자 자는 건 뱁새 뿐인 듯 했다.

그가 매일 눈을 뜬 시간은 새벽 4시.

낯선 곳이라 그 신새벽에 어디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지 몰랐기에 모텔에 있는 커피 포트에 물을 끓여 햇반을 데워서 김과 멸치 깻잎 따위와 함께 먹곤 했다.

(숙박업소는 대부분 취사 금지 아니니? 캑)

아침을 대강 떼우고 해가 뜨기도 전에 군산CC 연습그린에 도착해 숏 게임 연습을 시작했다.

어떤 날은 연습 그린 가로등 불빛 아래서 칩 샷을 할 때도 있었다.

 

골프장 대부분이 그렇듯이 군산CC도 연습 그린 주변에서 숏 게임 연습을 하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그린 키퍼(골프장 잔디와 코스를 관리하는 사람)가 코스에 신경을 쓰느라 감시가 소홀한(?) 시간에 ‘도둑것’(몰래 하는 짓을 일컫는 말)으로 숏 게임 연습을 했다.

가끔 그린 키퍼가 못하게 하는 칩샷을 하는 뱁새를 발견하고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나무랄 때면 저만치 떨어진 다른 연습그린으로 옮겼다.

거기서 또 걸리면 다시 이쪽으로 오는 식이었다.

(낯짝에 철판까지 깐 것은 아니어도 뻔뻔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도전이니까. TT)

 

그렇게 하루에 천 개 가까이(혹은 그 보다 많게) 숏 게임을 연습했다.

10미터, 20미터, 30미터까지 웨지로 칩 샷을 하기도 하고 8번 아이언으로 굴리는 런닝 어프러치도 연마했다.

눈치를 살펴가며 제법 멀찌감치 떨어져 40미터가 넘는 피칭 샷을 할 때도 있었다.

(군산CC 관계자분들 죄송합니다. 프린지 잔디 파 먹은 놈이 저여요)

그리고 틈틈히 드라이빙 레인지를 찾아 매일 두어 시간씩 타격 연습도 했다.

 

테스트 준비를 위해 군산에 머무른 5주 동안 필드에서 연습 라운드를 한 것은 12번 정도였다.

예선 코스와 본선 코스를 각각 여섯 바퀴씩 돌았다.

 

가을이라 군산CC에는 가끔 바람이 지독하게 세게 불었다.

당시 멘토였던 김중수 프로(지금의 사부)에게 상담을 하니 롱 퍼팅과 숏 게임 연습을 더 하라고 했다.

10미터 안팎이 아니라 20미터 이상도 열심히 하라는 것이다.

뱁새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내가 아이언 샷을 얼마나 잘 하는데 20~30미터짜리 퍼팅이나 숏 게임을 할 일이 몇 번이나 있겠어’ 라고.

(허허 건방을 떠는 것 보니 뱁새 너 아직 멀었구나!)

 

그래도 경험이 많은 멘토의 말이고 보니 듣는 시늉이라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매일 숏 게임과 퍼팅을 질리도록 했을 것이다.

 

그렇게 뱁새의 칼은 날이 서 갔지만 피로는 날로 쌓여갔다.

 

마침내 10월 중순 예선전이 왔다.

 

예선전에서 뱁새를 살린 건 뜻밖에도 퍼팅이었다.

두 번 치른 지난 테스트에서 아쉬움에 치를 떨게 한 것이 바로 퍼팅이었는데 말이다.

 

이틀 내내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어서 레귤러 온을 하지 못한 홀이 많았다.

뱁새는 그럴 때 상당수는 기가 막히게 숏 게임으로 갖다 붙였고 가끔 애매한 거리에 떨어진 것도 제법 많이 집어 넣었다.

물론 귀신 같은 퍼팅 솜씨에 동반자들은 무너졌다.

예선 첫날 함께 한 동반자 세 사람은 모두 탈락해 이틀째 대회에 나가지 못했다.

뱁새가 스리 온 원 퍼트를 몇 개씩이나 해대는 통에 놀란 것일까?

비슷하지만 실은 약간 다른 이유일 것이라고 뱁새는 짐작한다.

서두르다 실패한 경험이 생긴 뱁새가 이번 대회 때는 요령이 좋아져서 아무리 위기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플레이하는 통에 동반자들이 리듬을 잃은 것이라는게 뱁새의 추측이다.

 

뱁새는 퍼팅을 앞세워 첫날은 1오버파 둘째날에는 이븐파를 쳐서 지역 예선 조 10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1천350명 중에 270명이 들어가는 본선에 당당히 오른 것이다.

 

그리고 2주 뒤인 10월29일과 30일 이틀간 본선이 열렸다.

그 사이에는 날씨가 얼마나 좋은 지 연습 라운드 때는 아름다운 가을 날씨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본선 당일에는 이틀 내내 초속 9~11m 정도로 강풍이 불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왼쪽 해저드 경계선으로 볼을 치면 페어웨이 오른쪽 끝에 아슬아슬하게 볼이 걸릴 정도였다.

제2차 선발전 첫날 분 태풍보다 약간 덜한 정도였다면 짐작이 될까?

 

본선 첫날 뱁새는 7오버파를 기록했다.

퍼팅도 기가 막히고 하고 벙커샷도 잘 했지만 유난히 긴 코스(군산CC 레이크 리드 코스)에 부는 강풍 앞에 뱁새는 속수무책이었다.

140명 가까운 같은 조 선수 가운데 언더파를 친 선수는 한 명밖에 없었다.

 

스코어 카드를 제출하는데 중앙위원회에서 온 경기위원장이 뱁새에게 물었다.

‘잘 쳤어’라고.

피로에 찌든 얼굴이 안쓰러웠을까?

뱁새는 ‘집에 가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답하면서 7오버파를 적은 스코어카드를 제출했다.

눈치를 살피는데 ‘오늘 날씨가 안 좋아서 다들 점수가 안 좋다’고 혼잣말 비슷하게 한다.

 

보통 프로 테스트 본선 점수가 이틀 합계 4~5오버파가 커트라인인데 첫날 이미 7오버파를 쳤으니 희망이 없다고 뱁새는 생각했다.

그런데 숙소에 들어와서 휴대폰으로 리더 보드를 보니 웬걸!

27등이었다.

B조 136명 중에 45등까지 합격인데.

다들 고전했다는 얘기다.

 

푹 자고 이튿날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를 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뱁새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너무 긴장하고 설레기도 해서 거의 뜬 눈으로 보냈다.

 

본선 마지막 날 아침.

개운하게 눈을 뜰 턱이 없는 뱁새가 침대에 널려 있던 몸을 주섬주섬 일으키는데 몸이 천근 만근이다.

어깨에 바윗덩이를 얹어놓은 것 같다.

아침을 만들 기운도 먹을 입맛도 없다.

그래도 빈속으로 경기를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간식 박스에서 눈에 띄는 단 것 한 두가지를 입에 쑤셔 넣고 물로 억지로 삼켰다.

 

과연 뱁새는 이런 컨디션으로 본선 마지막 날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애독자 여러분 추석 잘 쇠고 만나요’라고 인사를 드리려 했더니 한경닷컴 대표께 메시지가 왔어요. ‘야 뱁새! 명절에도 연재는 계속 하는 거지? 쇼 머스트 고우 온 알지?’라고. 흑흑)

 

김용준 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Café.naver.com/satang1

김용준 프로가 아마추어 시절 내리막 홀에서 아이언 티샷을 날린 뒤 엉성하게 피니쉬를 하고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억지로 피니쉬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김 프로는 아마추어 시절에는 너무 세게 휘두르는 통에 피니쉬 자세가 무너지는 문제점을 안고 살았다. 지금도 가끔 그 버릇 나온다.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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