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h! 얼쑤! 세계속의 한류] 멕시코 사람이 만들고 유통하는 한국문화

입력 2017-09-27 10:09 수정 2017-09-27 13:57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장 송기진

 

문화 도매업자는 이제 그만

 

멕시코시티에는 중국, 미국, 일본, 독일, 스페인, 프랑스 등 전 세계 국가에서 문화원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2,000만명이 넘게 사는 멕시코시티는 세계 문화 각축장인 셈이다.

각국 문화원에서는 매월 100명이 참여하는 강연부터 5,000명 이상이 관람하는 대규모 공연까지 막대한 국가예산을 투입하여 수 많은 행사를 개최한다. 매 행사 때마다 홍보를 위해 언론을 초청하지만, 모든 언론이 그렇듯이 멕시코 언론도 선별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한다.

작년 8월 중순 문화원장으로 부임한 이후 여러 행사를 개최했지만, 현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적은 솔직히 별로 없었던 듯 하다. 12월에 열렸던 심청전 공연도 대규모였지만 마찬가지였다. 금년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고민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K-POP, K-DRAMA, K-MOVIE, K-FOOD, 사물놀이, 국악 등 콘텐츠는 충분히 매력적인데도 불구하고, 한류 팬의 양적·질적 성장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른바 ‘확장성의 한계’에 부딪혔다는 느낌이 강했다.

멕시코에는 Televisa, TV 아즈떼까 등 17개 방송사(전국단위 공중파 3개사, 지방 공중파 8개사, 케이블 TV 8개사)와 El Universal, Reforma 등 255개의 신문사(전국지 53개사, 지역지 202개사), 무려 1,775개의 라디오 채널이 있다. 물론 인터넷 언론사도 많다. 양적으로만 보면 멕시코는 가히 언론천국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또한, 멕시코 언론은 대통령, 군인, 성직자와 함께 4대 권력으로 불릴 만큼 영향력이 크다. 비록 언론사에 대한 신뢰도는 낮은 수준이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유달리 문화, 예능, 스포츠(특히 축구) 관련 뉴스에는 열광한다. 멕시코 현지 행정원에 따르면, 멕시코에서 소위 자발적으로 ‘읽고 보는 뉴스’는 문화 분야가 유일할 것이라고 한다.

※ 올해 1월 멕시코의 한 여론조사기관(Parametria)에서 8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멕시코 국민들은 일간지는 19%, 방송사는 17% 정도만 믿는다고 답했다.

이점에 착안하여 지난 5월 중순 멕시코 유력 언론사인 TV 아즈테카와 El Universal의 한국문화 방한 취재사업을 추진했다.

사업을 기획하며 목표로 삼았던 것은 우선, 보도 분량을 최대한 키우자는 것이었다. 둘째, 멕시코 언론인들 사이에서 한국을 소재로 한 기사는 읽히고 보인다는 확신을 주자는 것이었다. 셋째, 멕시코인이 멕시코 사람의 시각에서 한국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선례를 남기자는 것이었다.

 

멕시코 언론의 방한취재 사업은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었지만, 결과는 사실 놀라울 정도였다. TV 아즈테카는 시청율 30%에 육박하는 아침 방송에서 5일간 매 5분씩 한국문화 취재기를 방송했으며, 현재까지 30만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다시보기를 했다. El Universal은 K-POP, K-DRAMA를 주제로 2차례에 걸쳐 전면에 가까운 특별판을 제작해 지면 보도했다.

멕시코에서 유력 방송사 인기 프로그램의 20초 분량 스팟 광고 단가는 약 2,400여만원, 유력 신문사 전면광고 단가는 900여만원이다. 취재인력 4명인 이들의 취재지원에 들어간 비용은 항공료와 1주 숙박비 등을 합하여 천만원에 못 미쳤다. 방송분량(총 25분)을 단순 계산해도 20초

분량 스팟 광고 75회(약 18억원)의 효과를 낸 것이다.

취재에 참여한 올가와 자넷은 한국 방문이 처음이었다. 홍대거리, 통인시장, 남산타워 등 주요 명소 뿐 아니라 멕시코 언론 최초로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을 취재했고, 강원도 낙산사에서 1박 2일간의 템플스테이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올가 마리아나(Olga Mariana)는 TV 아즈테카의 인기 아침프로그램 벵가 라 알레그리아(Venga La Alegría, 시청율 30%)의 리포터다. 그녀는 퇴근 시간에 2호선을 타고 서울 지하철을 취재했다. 만원임에도 노약자석에 앉지 않는 한국인들을 보며, 그녀는 “이렇게 질서 있는 모습은 멕시코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하상가에 있는 즉석사진 코너를 보고 놀랐다고도 했다. 그녀 역시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한국문화 행사를 취재하다 우리 문화에 ‘중독’됐다고 한다.

 


'벵가 라 알레그리아' 방송 화면 캡쳐


'벵가 라 알레그리아' 방송 화면 캡쳐

“저 안내판에 표시된 시간에 정말로 버스가 도착하나요?” 멕시코 최고 유력지 El Universal(1일 12만부 발행)의 문화담당 기자 자넷 메리다(Janet Merida)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으며 물었다. 24살의 그녀는 특히 K-POP과 K-DRAMA에 관심이 많다. 가끔씩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이 초대하는 한국영화 상영행사나 K-POP 콘서트에 참석했다가 열성팬이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다녀 온 소감을 한마디로 말해달라고 했더니 ‘fantásticamente(환상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방한 취재 후 둘은 이제 한국문화 행사에 항상 취재를 나온다. 그리고, 소속 언론사 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도 한국 취재 경험을 열심히 알리고 다닌다고 한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문화우군(Cultura Amigos)이 만들어진 것이다.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지난 7.23 열린 K-POP 월드 페스티벌 멕시코 예선전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멕시코 국영 방송사 Canal Once TV(교양 프로그램 D‘Todo 진행자 Alexia)에서 내년에는 30분짜리 한국 관련 다큐멘터리를 일곱 편 만들어 1주간 방송해 볼 생각 없냐며 먼저 제안을 해왔다. 협의해 보자고 하면서 살짝 웃었다.

부임 1년을 갓 넘은 지금 돌이켜 보면, 문화원장 첫 6개월은 기존 한국문화 홍보 시스템에서 맴 돌았던 기간이었다. 공급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었지 수요자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주재국 국민들의 관점은 언론을 통해 투영된다. 주재국 언론을 우리 문화 유통 채널로만 보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행사를 개최하고, 보도자료를 충실히 작성해 줘도 그들은 자신들의 시각에서 선별하고, 보도한다. 멕시코 현지인들은 우리 문화 콘텐츠를 우리의 시선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지난 8.11(금) 주멕시코 한국문화원에서는 ‘아리랑 뮤직비디오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멕시코 거주 재외예술인인 신현준씨가 본조 아리랑과 작곡가 한돌의 홀로아리랑을 혼합하여 편곡한, ‘기억의 아리랑’이라는 타이틀의 새로운 아리랑을 멕시코 영상감독이 뮤직비디오로 제작한 것이다.

이날 발표회에는 80여명의 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여, 당초 1시간 예정이었던 발표회가 2시간동안 진행됐다. 왜 이리 많은 기자들이 왔냐?고 물으니, 멕시코 행정원들은 “멕시코 감독이 만들었으니까!”라고 답했다.

슬픔에 젖은 아리랑의 분위기를 멕시코 영상감독은 전혀 다른 시선에서 해석해 전 세계인들의 미소와 교차시키며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발표회를 취재 온 멕시코 언론인들과 현지인들은 모두 제작자의 취지와 해석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우리 민족의 ‘한(恨)’을 상징하는 아리랑이지만, 멕시코사람들에게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아리랑 뮤직비디오 발표 기자회견

 

생각을 바꾸자. 문화원이 문화 도매업자가 돼서는 한계가 분명해 보인다. 투자자의 위치에서 그들의 시각으로 우리 문화 콘텐츠를 재생산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한류의 확장성을 증대하는 길이며, 한류를 세계화하고, 더 다양하게 하는 방법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해외문화홍보원
재외 한국문화원장들이 현지에서 펼치고 있는 생생한 한국 홍보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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