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고사성어]각주구검(刻舟求劍)-어제의 자로 오늘을 재지 마라

입력 2017-10-05 10:00 수정 2017-10-12 09:37
누구도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 누구도 순간을 붙잡을 수는 없다. 누구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 수는 없다. 어리석은 자는 어제의 잣대로 오늘을 잰다. 자가 어긋나면 오늘을 나무란다. 오늘을 자르고, 오늘을 늘려 어제의 자에 맞춘다. 현명한 자는 오늘의 잣대로 오늘을 잰다. 어제의 잣대를 오늘 잣대의 보조로 쓴다. 어리석은 자는 어제에 매이고, 현명한 자는 오늘을 직시한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다 강 한복판에서 실수로 아끼던 칼을  물에 빠뜨렸다. 놀란 그는 재빨리 주머니칼을 꺼내 칼을 빠뜨린 부분의 뱃전에 표시를 해뒀다. 그리고 안도했다. “칼이 떨어진 자리에 표시를 해놓았으니 언제든 찾을 수 있겠지.” 배가 언덕에 닿으려 하자 그는 급한 마음에 표시가 된 뱃전 아래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한데 거기에 어찌 칼이 있겠는가. 칼을 찾느라 허둥대는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다.《여씨춘추》찰금편에 나오는 얘기다.

‘잃어버린 칼 위치를 뱃전에 표시한다’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은 판단력이 둔하고 어리석음을 꼬집는 표현이다. 세상일에 어둡고 융통성이 없음을 나무라는 말이다. 강 한복판에 칼을 빠뜨렸으니 배가 언덕에 닿을 무렵에는 얼마나 칼과 멀어졌겠는가. 그걸 깨닫지 못하고 표시된 바로 아래에서 칼을 찾으려 했으니 그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한데 모두가 비웃는 이 어리석은 자와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우리 또한 옛 표식을 들고 오늘의 길을 찾으려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옛 문구 하나 달랑 붙들고 거기에 오늘을 맞추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가. 장자가 수레꾼의 입을 빌려 말하지 않았나. 옛 책에 쓰여 있는 성현의 말씀은 발걸음이 아닌 발자국일 뿐이라고. 성현의 말씀을 폄하하려는 뜻은 전혀 없다. 인간은 분명 고전이란 안경으로 오늘을 훨씬 깊고 넓게 본다. 다만 오늘을 어제에 매두지 말라는 거다.

흘러간 물로는 발을 씻지 못한다. 오늘을 재는 데는 오늘의 자가 제격이다. 표식은 옛 자리일 뿐 지금의 자리는 아니다. 오늘을 걷는 건 우리의 발걸음이다. 발자국은 앞서간 자의 흔적일 뿐 내 발걸음은 아니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한국경제신문 기자, 한국경제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청소년 경제논술신문 생글생글 커버스토리 집필,
한국경제TV '오늘 한국경제' 진행, 한국직업방송 '신동열의 취업문을 여는 경제상식' 출연.
KBS라디오 '세상의 모든 지식' 출연.
저서:굿바이 논리야, 내 인생 1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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