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시] 어떻게 줄 수 있을까, 내 전 생애가 담긴 침묵을

입력 2017-09-04 13:35 수정 2017-09-04 14:40
     아말피의 밤 노래

                      세라 티즈데일


 

별들이 빛나는 하늘에게 물었네.

내 사랑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하늘은 내게 침묵으로 대답했네.

위로부터의 침묵으로

 

어두워진 바다에게 물었네.

저 아래 어부들이 지나다니는 바다에게

바다는 내게 침묵으로 대답했네.

아래로부터의 침묵으로

 

나는 울음을 줄 수 있고

또한 노래도 줄 수 있는데

하지만 어떻게 침묵을 줄 수 있을까.

나의 전 생애가 담긴 침묵을.

 

사랑의 밑바닥에는 얼마나 깊고 넓은 항아리가 있을까. 별이 빛나는 하늘도, 어부들이 지나는 밤바다도 다 담고 싶지만 아무런 말이 없는 항아리. 내 사랑에게 무엇을 주어야 그 항아리가 말을 할까. 눈물이든 노래든 무엇이든 다 주겠건만 아, ‘나의 전 생애가 담긴 침묵’을 어떻게 줄 수 있단 말인가. 침묵이 메아리쳐 돌아온다 한들 그 또한 침묵일 테니…

‘아말피의 밤 노래’는 미국 여성 시인 세라 티즈데일(1884~1933)의 연시다. 티즈데일의 생애는 고독했지만 시는 대부분 감미롭고 섬세하다. 이 시의 배경은 이탈리아 남부 소렌토의 그림 같은 바닷가 마을 아말피. 유네스코가 ‘가장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선정한 명소다. ‘신들의 산책로’로 불리는 해안길은 정말로 하늘빛을 닮았다. 시인은 이 길을 밤에 혼자 걸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감싸주는 침묵과 함께.

그녀는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했다. 병치레가 잦아서 학교도 열 살이 되어서야 들어갔다. 친구들과 마음껏 어울리지 못해 외로웠다. 그런 그녀에게 친구가 돼 준 것은 시집이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열다섯 살 때였다.

스무 살 때 그녀는 가족과 함께 간 플로리다 해변에서 청년 시인 베이첼 린지를 만났다. 베이첼은 뉴욕에서 800여㎞나 도보로 여행하는 동안 시를 팔아 끼니를 해결했다. 그만큼 궁핍한 남자였지만, 그녀는 그에게 푹 빠졌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야속했다. 베이첼은 그녀의 사랑을 감당하기에 너무 가난한 처지를 비관해서 떠나버렸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시를 좋아하는 사업가와 결혼했다. 그런데도 실연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45세에 이혼하고 뉴욕에서 혼자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베이첼과 마주쳤다. 너무나 반가워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그러면 어떤가.

다시 불붙은 사랑은 너무나 뜨거웠다. 하지만 이번에도 인연의 끈은 너무 짧았다. 1년도 안 돼 베이첼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에 그녀는 말을 잃었다. 그렇게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침묵하다 얼마 뒤 그의 뒤를 따라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그녀가 남긴 시 중에 ‘선물’을 다시 펼친다.

 

나 한평생 살면서

첫사랑에게는 웃음을

두 번째 사랑에게는 눈물을

세 번째 사랑에게는 침묵을 선사했네.

 

첫사랑은 내게 노래를 주었고

두 번째 사랑은 내 눈을 뜨게 해줬지.

아, 그러나 내 영혼을 일깨워준 것은

세 번째 사랑이었어라.

 

여기서 침묵은 곧 영혼이다. 말없음으로써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침묵의 소리! 첫사랑의 노래와 두 번째 사랑의 눈물과 세 번째 사랑의 영혼을 모두 보듬어 안는 침묵의 품. 그것은 마침내 모든 허물을 덮고, 허물 때문에 더 사랑하는 숭고의 미학으로 우리를 끌어올린다.

침묵’이라는 시에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의 허물 때문에 더욱 사랑했노라고 고백했다.

 

그들이 내게 와서 당신의 허물을 말해 주었습니다.

당신의 허물을 하나하나 자세히도 말해 주었지요.

그들이 말을 마치자 나는 소리 내어 웃고 말았지요.

당신의 모든 허물을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 그들은 눈이 멀어, 너무도 눈이 멀어 볼 수 없었지요.

허물 때문에 내가 당신을 그만큼 더 사랑한다는 것을.

 

평생을 병약과 고독으로 아파했지만 그녀는 마침내 시와 사랑을 통해 진정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거친 바람 속에서 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보리처럼 긴 낮과 긴 밤의 슬픔을 부드러운 노래로 바꾸면서….

나아가 ‘연금술’이라는 시에서는 봄비가 노란 데이지꽃을 피워 올리는 것을 보고 ‘생기 없는 슬픔의 술’을 ‘살아 있는 황금빛’으로 바꾸는 것까지 배웠으니, 지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생의 연금술을 체득한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고두현/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거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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