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키나와 (17)... 일본 신문기사의 허구

입력 2017-08-30 10:12 수정 2017-08-30 12:47


오늘 오시타 소위가 가잔비라 언덕에 올라온 건, 미군이 나하에 상륙할 경우 어떤 방법으로 미군의 전함들을 공격해야 할 건지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는데 하필이면 해안의 지형지물을 파악을 하러 온 날, 미군의 대규모 폭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가키하나의 작은 벙커에 몸을 숨겼다가 오로쿠비행장과 나라항만이 폭격당하는 상황을 세밀히 관찰했다고 얘기했다.


<가잔비라 근처에서 열심히 취재중인 미국기자.   사진=이파>

“이시타, 오늘 나하가 이렇게 불타는 건 미군의 군사력이 우월하기 때문만이 아니야. 틀림없이 정보가 샜어. 오늘 우리 황군 32사령부가 대규모 공습훈련을 하기로 되어있었거든”

“저도 처음엔 공습훈련인 줄 알았습니다.”

“어제 저녁 오키나와지역 황군의 수뇌부가 공습훈련 대책을 마련한 뒤 나하의 요정에서 만찬을 했어. 술을 한잔씩 마신 수뇌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미군함재기들이 몰려온 거야. 황군의 정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거지. 더욱이 사령관이 대만으로 출장 간 날이야. 미군이 어떻게 이런 정보까지 다 알아냈을까?”

“여러 가지 정보가 확실히 미군에 빠져나갔다는 겁니까?”

“그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심하게 당할 순 없지. 정보가 샌 게 확실해. 가잔비라 고사포 진지의 포병들도 미군비행기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조차 공습훈련으로 알고 있었다니까. 내가 가잔비라 고사포 진지 포병에게 ‘저건 미군기야’라고 알려줬을 정도니까”

“그래서 고사포로 미군기를 격추하기도 했습니까?”

“3대를 격추시켰지. 제 27대대 1중대장이 군복 윗도리를 벗어던지고, 일본도를 휘두르며 부하들에게 고함치며 명령한 덕분에 3대를 격추했지만 중대장은 기총소사에 의해 희생되고 말았어.”

“안타깝네요.”

“그 중대장의 용맹함을 신문기자에게 알리고, 훈장도 상신해야지...근데, 더 이상한 건 오늘 새벽 오로쿠비행장을 출발한 황군의 초계기들이 단 한대도 오로쿠비행장으로 되돌아오지 못했다는 거야.”

“남쪽에서 올라오는 태풍 때문은 아닌가요?”

“아냐..아니야. 모두 미군 함정의 레이더에 걸려 함포에 의해 격추된 것 같아. 그것도 역시 정보가 샜기 때문이야. 분명히 미군에게 우리의 정보가 모조리 다 새고 있어...정보가 새는 걸 막을 방법을 강구해야 할 때가 왔어”

오시타 중대장은 가잔비라 고사포의 포격으로 미군 그루먼 1대가 오키나와 기상대 오른쪽 상공에서 날개에 포탄을 맞아 조종사가 낙하산으로 탈출하는 걸 확인하고, 탈출한 미군조종사를 생포하기 위해 낙하산이 떨어지는 곳으로 내달렸다고 했다. 그를 끝까지 추적한 이유는 그를 생포해 일본군의 정보가 어떻게 미군에 전달되었는지를 알아내려는 의도였다는 것.

“탈출한 미군 조종사가 오노야마 쪽으로 떨어지더라고...계속 따라가서 끝내 덴토잔 기슭에서 그를 찾아냈지. 내가 권총으로 겨누며 항복하라고 외쳤지만 그놈이 절대 항복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권총을 빼들고 나한테 쏘는 바람에 바위 뒤로 피하다가 팔을 다쳤어. 근데 이 다친 팔로 내가 그놈을 그 자리에서 사살했어.”

우타가 차를 가지고 방안으로 들어왔지만, 오시타 중대장은 “잘 먹었습니다”라고 얘기할 뿐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오직 오늘의 전쟁 상황에만 몰두했다. 오시타 중대장은 육사 57기여서 지난 4월에 졸업했을 텐데, 사관학교를 졸업하기 전 어디선가 실전 경험을 쌓은 듯 보였다. 그의 용맹함과 지독함은 앞으로 미군들을 충분히 괴롭힐 만큼의 자세를 갖춘 것 같았다.

“이시타, 이건 전시중죄(戰時重罪)야. 오늘 우리가 눈으로 봤잖아. 어떻게 1만 채의 민간인 가옥에 저렇게 폭탄과 소이탄을 쏟아 퍼부을 수가 있어. 전시중죄를 규명하는 거 그게 무슨 조약이더라?”

“헤이그조약입니다”

“맞아, 그러니까 우리가 헤이그조약에 의거해 미국 놈들이 얼마나 중대한 범죄행위를 저질렀는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그런 자료를 지금 만들어보자는 거야...”

“예, 제가 돕겠습니다.”

“내가 세어봤는데, 미군은 민간 어선도 20여척이나 파괴했어. 전폭기가 민간 어선을 폭격하는 것도 심각한 전쟁범죄잖아?”

“저도 미군 그루먼이 민간인에게 기총소사 하는 걸 봤습니다.”


<미군의 폭격으로 여기서 많은 주민들이 죽었다고 했더니, 그는 일본군의

공격으로  1만2500명의 미군이 여기서 죽었다고 반박했다.    사진=이파>

이수는 아까 우타와 귀납묘 구멍으로 밖을 내다봤을 때 일본군이 그토록 자랑이었던 잠수모함 ‘진게이(迅鯨)가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연기를 내뿜으며 가라앉았으며, 또 고속정들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고, 발동함정도 파괴되어 부유물만 지금 바다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또 조선인 군부들이 하역작업을 벌이던 수송함인 타테가미(立神)도 군수품을 가득 실은 채 가라앉아버렸으니 앞으로 오키나와에 있는 군인, 군부, 주민들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오시타 중대장의 메모에 의하면 바다에서만 피해를 입은 게 아니었다. 오로쿠비행장 등에 있던 일본 전투기 10여대 오늘 하루에 다 파괴되었고, 항공용 연료인 가솔린 100여개드럼이 한꺼번에 폭발해버렸다. 오시타 중대장과 이수는 밤늦도록 보고서 작성에 매달렸다. 밤 1시쯤 되었을 무렵, 보고서가 10여 장에 이르자, 오시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면서 후다닥 일어서더니 먼저 부대로 돌아가겠다며, 바삐 우타의 고모 집을 빠져나갔다.

오시타가 떠나자 이수는 우물터로 가서 온몸에 쌓인 먼지를 씻어내기 위해 바가지로 물을 떠 머리위에 확 부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몸의 먼지보다 머릿속의 먼지가 먼저 씻겨나가는 그런 전율이 왔다.

“아, 지금까지 내가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이수는 지난 5년간 내내 뭔가를 잘못 판단해왔다는 판단이 찬물을 뒤집어 쓴 머릿속으로 지나갔다. 중국에서, 남지나에서, 태평양에서 일본군이 계속 이긴다는 신문기사만 봐왔는데 처음 경험하는 전쟁에서 이렇게 엄청난 피해를 당하는 걸 눈으로 확인하자 지금까지의 판단이 얼마나 틀렸는지 혹독하게 인지되었다.

실제 황군의 종군기자는 고급장교예우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써온 신문기사의 위력은 모든 사람들의 판단력을 잃게 하고 충성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했다.이수는 몇몇 군부들이 길에서 주운 신문을 읽어달라고 했을 때 그냥 읽어준 게 후회되었다. 군부들조차 그 기사의 내용을 들으면 마음 든든해했으니까.

신문기사의 위력이 얼마나 컸으면 이수조차도 일본군이 지금까지 이렇게 계속 당해오면서도 ‘황군보다 미군의 피해가 컸다’라고 하는 턱없는 허구를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였을까?


<10월10일 미군공습기사. 미군기 26대 이상을 격추했다고  써있다.>

오시타 소위의 보고서도 오늘의 피해가 일본군의 취약성 때문이 아니라 군사정보가 미군에게 샜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지 않은가. 그건 말도 되지 않는 얘기다. 이미 미군은 정찰기의 항공사진에 의해 일본군의 배치를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을 테니까.

전쟁이란 결과적으로 ‘피해자만 남는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수는 옷을 벗은 뒤 바가지로 물을 퍼서 여러 차례 머리위에 쏟아 허구의 방정식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씻어내고 또 씻어냈다.너무나 지쳐 물에 젖은 몸을 제대로 닦지도 않은 채 이수는 안방으로 다시 돌아와 폭 쓰러졌다.

새벽녘 잠깐 잠에서 깼을 때 그의 몸엔 깨끗한 이불이 덮여져 있었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우타가 그의 허리를 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이수가 그녀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자 그녀도 그의 허리를 더욱 꼭 껴안았다.

두 사람은 달빛 환한 자마미 바닷가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함께 뛰어다니는 꿈을 꾸었다. 밤바람을 자유롭게 만끽하며 뛰어다니던 두 사람은 새벽녘에 이르자 드디어 손가락 하나, 발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들만큼 지쳐버렸다. 함께 드러누운 자리에 밀물이 자꾸 밀려오는데도 도저히 피할 수 없어 온몸이 물에 잠기게 내버려 둔 채,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만큼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파(李波)...소설가.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징용으로 끌려간 천재 식물학자와 오키나와 간호사의 애타는 사랑이야기다. 두사람은 일본군의 횡포와 미군의 폭격 틈바귀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더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한 포기의 산호를 더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이 소설은 필자가 15년전 일본에서 대학교수 하던 때부터 도쿄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 현지를 꾸준히 찾아가 취재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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