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들이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이유

입력 2012-11-27 00:00 수정 2012-11-27 00:00


'예쁜 여자'를 말한다(21) 
'개그맨들이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이유'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직업은 무엇일까. 정확한 답을 알 수는 없지만 개그맨은 꽤 높은 순위에 들 것이다.

본인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별로 인기도 실력도 별로 없어 보이는 개그맨들이 깜짝 놀랄 만큼 예쁜 여자에게 팔짱 걸린 채로 신랑 입장하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봐 온 터다. 여기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정답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일단 연애와 인생의 본질에 대해서부터 고찰할 필요가 있다. 좀 거창한 얘기지만 매우 중요하므로 잘 읽어주시길 특별히 당부 드린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추상적인 질문 같지만 대답은 아주 명쾌하다.
우리는 감탄하기 위해서 산다.

이 결론은 내가 내린 것이 아니니 믿어도 된다. 일명 ‘짝퉁 슈베르트 교수’로 명성을 휘날리고 있는 김정운 교수의 주장이다. 그로 인해 나는 인간이 왜 사는지를 알게 된 셈이니 식사라도 제대로 한 끼 대접하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의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하루에 도대체 몇 번 감탄하는가다. 사회적 지위나 부의 여부와 관계없다. 내가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다 할지라도, 하루 종일 어떠한 감탄도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내 인생이 아니다. 바로 그만두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 돈으로 매개된 감탄이 없다면,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다.



- 김정운,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2009)



이렇게 되면 우리가 연애를 하는 이유도 아주 명료해진다. 감탄하기 위해서다. 감탄의 한자어 표기는 感歎이지만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感彈, 그러니까 '느낌의 총알'이라는 표현으로 바꿔도 좋을 것이다. 상대방을 발견한 뒤 나의 모든 세계가 뒤흔들릴 정도의 총알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그 상황을 연애라고 부른다.

그런데 예쁜 여자는 태생적으로 이 감탄이라고 하는 감정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왜곡된 인간관계와 기이한 에너지로 점철된 예쁜 여자의 삶 자체가 워낙 스펙터클한 까닭이다. 별의 별 경험을 다했다보니 웬만한 자극에는 이제 놀라지도 감탄하지도 않게 돼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감탄스러웠던 뭇 남자들의 사랑고백도 받다 보니 공통점이 발견되고 진부할 따름. 진실한 눈동자로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들의 욕망 귀결점이 결국 한 곳(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 곳)으로 수렴된다는 사실에도 예쁜 여자들은 이미 익숙하다. 그녀들은 남자가 뭔지, 연애가 뭔지를 너무 빨리 알아버린 불쌍한 인생들이다.

감탄에 둔감하다는 사실은 곧 예쁜 여자들이 보통 사람에 비해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웃지 않는 공주>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버전이 존재하는 이 설정은 예쁜 여자에 대한 훌륭한 우화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공주가 웃지 않았다는 사실, 따라서 그녀를 웃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왕위를 물려받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은 예쁜 여자에 대한 진실의 일부를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감탄할 것이 고갈된 사람이라도 웃음에는 반응한다. 기본적으로 웃음은 끊임없는 의외성을 그 바탕에 깔고 있는 까닭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개그맨들의 강점은 부각된다. 어떻게 하면 남을 웃길지, 어떻게 하면 통념을 뒤엎을 수 있을지를 매일같이 고민하는 개그맨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예쁜 여자를 매혹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즉 웃음의 유혹을 연습하는 셈이다.

개그가 갖고 있는 또 한 가지 강점은 청중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에 누가 있든 성역과 금기 없이 개그를 시도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개그맨이다.

평소였다면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할 예쁜 여자 앞이라 해도 개그맨의 가면을 쓴 채로는 짓궂은 장난도 걸 수 있고 그 안에 내밀한 진심도 훨씬 삼키기 쉽게 건넬 수 있다.

예쁜 여자의 입장에서도 이는 의외의 각도에서 파고드는 기습공격인 바, 몇 가지 우연적 요소들까지 잘 맞아떨어진다면 드디어 연애의 총알 한 방이 훌륭하게 발사될 수 있다.

자신과 코드가 맞는 개그를 구사하는 사람을 만남으로써 예쁜 여자는 비로소 감탄의 위대함을 체득한다. 거위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견한 물체를 어미로 각인하듯 예쁜 여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감탄의 주체, 즉 개그맨을 행복의 원천으로 각인한다. 인생이 살 만한 것이었음을 그로 인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결혼이 대수겠는가? 자신을 웃겨 주는 남자 앞에서 예쁜 여자는 안전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개그맨들이 예쁜 여자와 결혼하는 이유다. (계속)
1983년에 출생한 자칭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
'유니크', '연애의 뒷면' 등 두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
'미래한국', 'StoryK'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62명 34%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122명 66%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