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시] 등려군의 애절한 노래에 이런 사연이…

입력 2017-08-22 14:08 수정 2017-08-22 16:40
 

        도성 남쪽 장원에서(題都城南莊)

                                                 최호


지난해 오늘 이 문 앞에서

사람 얼굴 복사꽃 서로 비쳐 붉었는데

어여쁜 그 얼굴은 어디로 가고

복사꽃만 예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네.

 

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당나라 시인 최호(崔護)의 작품이다. 짧고 간명하면서도 긴 여운을 주는 시. 그 속에 숨겨진 사연이 더욱 흥미롭다.

그가 청년 시절, 청명절(淸明節)에 도성 남쪽으로 놀러갔다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농장(農莊)을 발견했다. 갈증이 나서 대문을 두드렸더니 복숭아꽃처럼 예쁜 아가씨가 문을 열었다. 물그릇을 가져오는 그 아리따운 모습이 복사꽃처럼 곱고 발그레했다.

아가씨를 잊지 못하던 그는 이듬해 다시 그 농장을 찾았다. 그러나 복숭아꽃은 예전처럼 흐드러지게 피었건만 대문은 잠겨 있고 아가씨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안타까운 마음을 누를 수 없던 그는 대문에 시를 한 수 적어 놓고 자리를 떴다. 그게 바로 이 시다.

이 사연은 《본사시(本事詩)》와 《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 실려 있다. 원나라 때는 《최호알장(崔護謁漿)》이라는 제목의 잡극(雜劇)으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덧붙여진 이야기도 있다. 그가 며칠 뒤 다시 그 집에 찾아갔더니 안에서 곡성이 들리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인가 하고 기웃거리자 노인이 나와 “내 딸이 문에 붙은 시를 읽고는 병이 나서 죽었네”라고 했다.

충격을 받은 그는 곧 빈소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누워 있는 딸을 보고 “나 여기 왔소” 했다. 그랬더니 딸이 금방 눈을 뜨고 살아났다. 이후 그는 아가씨와 결혼하고 머잖아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올랐다고 한다.

시의 원문에 나오는 ‘인면도화(人面桃花)’는 복숭아꽃처럼 어여쁜 여인의 모습을 뜻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뜻이 달라져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상황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굳어지게 됐다. 경치는 예전과 같지만 그 아름다움을 함께하던 연인은 곁에 없는 경우에도 쓰였다. 등려군이 부른 애절한 노래 ‘인면도화’도 이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예부터 복숭아는 젊은 여인을 상징했다. 복숭아를 소재로 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시 ‘도요(桃夭)’도 그렇다.

 

어여쁜 복숭아나무

곱고 고운 꽃이로다

이 아가씨 시집가면

그 집을 화목케 하리

 

어여쁜 복숭아나무

많고 많은 열매로다

이 아가씨 시집가면

그 집을 화순케 하리

 

어여쁜 복숭아나무

그 잎이 무성하네

이 아가씨 시집가면

그 집안을 화목케 하리.

 

桃之夭夭 灼灼其華 之子于歸 宜其室家

桃之夭夭 有蕡其實 之子于歸 宜其家室

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시경(詩經)》에 나오는 이 시는 싱싱한 복숭아나무와 화려한 꽃, 많은 열매, 무성한 잎을 통해 시집가는 아가씨의 집안 화평을 기원하고 있다. 아들딸 낳고 잘 살라는 축혼가(祝婚歌)이기도 하다. 여기서도 복숭아꽃·열매·잎 모두가 여성을 상징한다. 도(桃)는 여인을 복숭아꽃에 비유한 것이고 요(夭)는 젊고 아름답다는 뜻이며 귀(歸)는 시집간다는 뜻이다.

복숭아꽃 필 무렵 불어난 시냇물을 도화수(桃花水)라고 하는데 그 모습도 아름다운 아가씨와 무릉도원을 닮았다.

 
고두현/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거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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