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키나와(14)...허리를 껴안고

입력 2017-08-22 10:00 수정 2017-08-22 11:03


“이수씨, 오늘도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저 바다 속으로 사라졌을까요?”

“그래...그런데, 이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게 더 참혹한 거지...”

이수는 단순하고 맑게만 보이던 우타의 가슴에도 깊은 상흔이 숨겨져 있다는 걸 깨닫고, 그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서서 우타에게 다가가서 그녀가 내려다보는 나하항을 함께 볼 비비며 오래오래 내려다 봤다.  이제 곧 날이 저물 것이다. 이수와 우타는 서로 볼을 비비느라 시간을 의식하지 못했지만, 드디어 시간은 두 사람이 현실로 돌아오기를 요구했으며, 또 다시 스스로 어디에 서 있는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아야 할 순간에 다다르게 했다. 우타가 볼을 때며 이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수씨, 이수씨는 전공이 뭐예요?”

“나?...나는 식물이 전공이긴 한데...”

“식물요?...하, 나도 식물을 정말 좋아하는데...이수씨 그럼, ‘바다꽃’이 뭔지 알아요?”

“바다꽃?...그건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하하하...식물이 전공이라면서 바다꽃이 뭔지도 모르다니...”

“오키나와에서 자라는 거야?”

“네, 내가 살던 자마미섬 앞바다 속에 무지하게 많아요. 거기엔 엄청나게 넓은 바다꽃 정원이 있는데 어릴 때부터 나는 그 낙원에서 헤엄치며 놀았어요.”

“혹시?...산호를 말하는 건가?”

“하아!...확실히 식물전공이 맞긴 맞나보네...실은 ‘바다꽃’이란 이름은 제가 붙여준 거니까 이수씨가 모를 수밖에요”

“와아!...정말 멋지게 이름 붙였네...근데 우타, 산호는 식물이 아니라 동물인데?”

“에?, 나도 알아요. 산호가 자포(刺胞)동물이란 거...하지만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본성이 식물과 꼭 같잖아요. 더욱이 자마미 산호는 정말 식물처럼 생겼어요.”


<오키나와춤은 산호가 바닷물에 흔들리는 듯하다.  사진=이파>

이수는 도쿄대에서 식물을 전공하면서 식물의 광합성에 대해 빠져버렸다. 왜냐하면 사람과 같은 동물들은 지구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나, 식물이 만들어놓은 에너지를 낭비하는데 그치지만, 식물만 스스로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늘 나하를 공습해온 미군들처럼 이렇게 에너지를 함부로 쓰면 언젠가 지구의 에너지가 다 떨어져 광합성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었으며, 앞으로 광합성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면 자연과 지구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영원한 에너지를 산출해낼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런데 광합성을 연구하려면 산호를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지구의 동물가운데 광합성을 하는 건 산호뿐이니까. 물론 산호가 직접 광합성을 하는 게 아니라 공생조류(共生藻類)의 하나인 주산셀러를 산호의 몸속으로 유입시켜 광합성을 일으키는 거지만, 산호를 잘 연구하면 광합성을 생산할 수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도쿄에 살 때 자취집 안에 커다란 어항에 산호를 키우면서 산화가 광합성을 하는 방법을 관찰해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산호가 자마미에서 채집해온 것일 가능성이 높은 듯했다. 그래서 이수는 우타가 산호는 식물과 같다는 말에 전혀 반박할 수 없었으며, 그녀가 이름 지은 ‘바다꽃’이란 산호의 매력적인 이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오키나와 자마미섬에 밀려나온 산초초.  사진=이파>

“이수씨, 산호는 동물인데 왜 식물처럼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까요?”

“응?...그건 광합성을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광합성이요? 그게 뭔데요?...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움직이면서 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사실은, 나도 잘 몰라서 그 까닭을 알아내려고 애쓰던 중이었어...”

“이수씨, 산호는 스스로 움직이진 않지만 자기 주변의 모든 생물들이 다 잘 살게 해주는 건 알고 있죠?”

“그게 바로 내가 산호를 좋아하는 까닭이지...우타, 지금 우리는 산호처럼 한곳에 붙어 자라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 서서히 움직이면서 주변에 죽어가는 생명들을 살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저도 지금,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에요. 우리 가잔비라 진지로 가서 부상병이 없는지부터 살펴봐요”

“좋아, 일단 거기 가서 부상당한 사람이 있으면 이 의료품으로 응급치료를 해주자”

“좋아요. 이수씨, 저는 오늘 근무지가 가잔비라인 거 아시죠?”

귀갑묘 바깥으로 빠져 나가기 위해 두 사람은 힘을 합쳐 귀갑묘의 통풍구를 더 넓혔다. 출구를 가로막던 비쭉비쭉한 돌멩이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무덤 안으로 우르르 쏟아졌다. 밖으로 나갈만한 공간이 확보되자 이수는 우타의 허리를 껴안고 귓불에 세차게 입을 맞춘 다음, 우타의 몸을 번쩍 들어 그녀의 머리가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떠밀었고, 어깨가 밖으로 절반쯤 빠져나갔을 때, 이번엔 그녀의 다리를 껴안고 바깥으로 밀쳐냈다. 가녀리고 탄력 있는 그녀의 몸은 쉽게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이상했다. 우타가 귀갑묘 바깥으로 나가자 이수는 갑자기 극심한 불안감으로 몸서리가 쳐질 만큼 당혹해졌다. 먼저 밖으로 나간 그녀가 별안간 귀신처럼 한 순간에 어디론가 흔적 없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확 밀려왔다. 자신만 덫에 걸려 이 귀납묘를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여 겨우 몇 초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인데도 통제할 수 없는 외로움이 그를 소스라치게 만들었다.  그는 이 지독한 공허감을 떨쳐내기 위해 보급품상자를 들어 허둥대며 밖으로 내 팽개치고 어깨나 팔에 상처가 나든 말든 쫓기는 도마뱀이 도망치듯 사정없이 바깥으로 몸을 내던졌다. 우타는 이수의 갑작스런 행동의 기이한 동인을 알아차렸는지 밖으로 나온 그의 목을 빠르게 감싸 안아 꼭 껴안은 뒤 조심스럽게 끌어 당겼다.

“이수씨, 왜 이렇게 급해요?”

“응?...사실은 우타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질까봐...”

“제가요?... 하아, 이수씨, 걱정 말아요. 앞으로 영원히 함께 있을 게요.”
이파(李波)...소설가.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징용으로 끌려간 천재 식물학자와 오키나와 간호사의 애타는 사랑이야기다. 두사람은 일본군의 횡포와 미군의 폭격 틈바귀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더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한 포기의 산호를 더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이 소설은 필자가 15년전 일본에서 대학교수 하던 때부터 도쿄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 현지를 꾸준히 찾아가 취재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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