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키나와(13)...귀여운 아이들

입력 2017-08-17 09:53 수정 2017-08-24 13:35


그럼에도 이수는 우타의 진지한 눈길을 피할 수 없어서 큰 기침을 한번 하고 곧은 자세로 앉았다. ‘그래, 우타가 노래를 부르라면 불러볼 거야’   이수는 다시 한 번 헛기침을 한 뒤 조선말로 차분하고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이맘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덧없이 꿈같도다.”

이수는 본디 가락을 조금 변조하는 기질이 있어서 이 노래도 ‘판소리’가락으로 불렀고, 우타가 재촉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는 벌떡 일어서더니 2절까지 불러댔다. 처음엔 좀 흥얼거리듯 시작했지만, 그의 굵은 목청은 서서히 무덤 안을 꽝꽝 울릴 만큼 커졌고,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그의 음성은 청아해지더니, 군화발로 돌바닥을 장단을 맞추자 그 장단은 북소리처럼 무덤 안 전체를 공명시켰다. 조금씩 움직이는 그의 춤사위는 귀신들도 따라 춤출 만큼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그는 털썩 주저앉았다.

“이번엔 우타가 노래할 차례...!”

우타는 이수의 노래에 한참 동안 박수를 쳐주더니, 주저 없이 일어서서 두 손을 꼭 모아 쥐고, 가늘고 높은 음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근데 우타가 부르는 노래는 놀랍게도 이수가 방금 부른 ‘이 풍진 세상’과 꼭 같은 거였다. 하지만 그녀가 부르는 노래는 ‘이 풍진 세상’과는 가사가 전혀 달랐으며, 더욱이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독특한 변조였다. 그 노래는 음절의 중간부분을 길게 늘어뜨리는 데 비해 꼬리부분을 짧게 잘라 똑 같은 선율인데도 무척 단아하고 애절하게 들렸다. 이수는 그녀의 노래에 너무 깊이 취해 움직이지도 않은 채 온몸이 음률에 푹 젖을 만큼 가락을 감수했다.

노래를 끝낸 그녀의 볼엔 두 갈래 눈물 줄기가 반짝였다.

“우타...전에 이 노래 불러본 적 있어?”

“네에, 이수씨... 쓰시마마루(対馬丸)사건 들어보셨죠?”

“응, 어린학생들을 태운 선박이 미군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 사고 말이지? 우리 중대장한테 언뜻 들었어.”

“그 사고 추모식에서 제가 이 노래를 불렀어요”

“근데, 우리 도쿄대 친구들이 술 마시며 부르던 것과는 가사가 전혀 다르네”

“그래요?...근데 이수씨, 이 노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요?”

“전혀 모르는데...”

“사실...이 노래는 미국노래예요. 아마 일본군이 그 사실을 안다면 이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못하게 할 거예요"

"미국 노래라고?...그건 정말 몰랐네"

"30 년 전쯤, 가나가와 즈시게이세이중학교 학생 12명이 등굣길에 배가 전복하는 바람에 모두 익사했어요. 그때 추도하러온 가마쿠라여학교의 여교사가 미국노래의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불렀죠.”

“아...그래서 ‘12명의 돌아오지 않는 넋에게 바친다’라고 했구나.”

“맞아요. 근데, 그때 희생된 아이들은 12명이었지만 바로 두 달 전 오키나와 어린이와 교사 약 1800명을 태운 쓰시마마루가 바로 저기 보이는 나하항을 출발해 나가사키로 가는 중에 아쿠세키섬 근처에서 미군 잠수함의 어뢰공격을 받아 침몰했죠. 이 때 약 780명이 귀여운 아이들이 바닷물에 빠져죽었어요. 이들을 인솔하던 어른 700명도 함께요“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익사한 줄은 몰랐는데...”

“빠져죽은 아이들 가운데는 나랑 친한 아이들이 너무 많아요. 나하에 살던 어린이 대부분이 이날 바다속으로 사라졌죠. 나하에서 제일 귀여웠던 저의 열두 살 난 사촌 여동생도 이날 사라졌어요. 그래서 저는 추모식에서 ‘12명의 돌아오지 않는 씩씩한 넋’을 ‘780명의 돌아오지 않는 씩씩한 넋’으로 바꾸어 불렀죠.”


<쓰시마마루의 침몰로 희생된 아이들. 사진=쓰시마마루기념관에서 이파>

“일본군은 그 사건을 감추려고 쉬쉬한다던데...왜 감추려하는 거지?”

“일본군 사기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그 바람에 나하 주민들은 몰래 추모식을 올렸어요. 지금도 그 사건을 다른 사람에게 퍼뜨리면 잡혀가서 총살 당해요”

우타는 눈물을 글썽이더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귀갑묘 통풍구 앞으로 가서 검은 연기를 하늘로 내뿜으며 침몰해가는 나하항의 수송선과 전함을 내려다보면서 한숨을 길게 토했다.


<귀여운 아이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동상.  사진= 이파>

 

 
이파(李波)...소설가.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징용으로 끌려간 천재 식물학자와 오키나와 간호사의 애타는 사랑이야기다. 두사람은 일본군의 횡포와 미군의 폭격 틈바귀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더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한 포기의 산호를 더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이 소설은 필자가 15년전 일본에서 대학교수 하던 때부터 도쿄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 현지를 꾸준히 찾아가 취재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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