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뱁새 살아있는 전설을 만나다 5

입력 2017-08-16 21:37 수정 2017-09-25 10:42
카트는 전속력(그래 봤자 시속 20킬로미터 이하)으로 6번홀 그린을 향한다.
뱁새의 조바심도 함께 태우고.
그린 근처에 다다르자 날듯이 카트에서 뛰어내리는 뱁새.
퍼터를 챙기는 것도 잊고 그린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는 길에 고개를 슬쩍 돌려 벙커 쪽을 보는 뱁새.
벙커 안에 볼이 두 개 보인다.
필시 전설과 다른 동반자의 볼일 터다.

다시 눈을 돌려 넓은 그린 위를 훑어보는 뱁새.
그린 위에는 녹색 잔디뿐 어디에도 볼 흔적은 없다.
뱁새의 귀 바로 밑 맥박이 쿵쿵 하고 뛴다.
체면을 차리기 위해 짐짓 아닌 듯이 하려고 해도 경망스러움이 묻어나는 총총 걸음이 뱁새를 자신도 모르게 홀로 이끈다.

기웃하고 홀을 들여다 보는 뱁새의 동공이 작아진다.
약간 올라갔던 뱁새의 입꼬리도 내려오면서 동그랗게 모아지는 폼이 필시 홀에 볼이 없는 듯 하다.

어디로 갔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로스트 볼이 났다는 당혹감으로 막 바뀌려는 찰라,
“여기 있다”는 최병복 프로의 목소리가 뱁새의 귀에는 어머니 목소리보다 더 반갑게 들린다.

뱁새의 볼은 벙커 턱에 있는 깊은 러프에 푹 묻혀 있다.

전설의 볼은 에그 플라이인데 벙커 턱을 넘어서 홀까지는 내리막이다.
속된 말로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는 자리다.

전설이 묵묵히 볼을 정확히 떠내지만 야속하게도 볼은 홀을 지나 한참 굴러간다.
등 뒤 가까이에서 본 전설의 벙커 샷은 팔이 몸에 붙어서 같이 회전한다는 느낌이 든다.

열 발짝밖에 안 되지만 억센 러프에 잠긴 뱁새의 볼.
더구나 내리막.

뱁새의 머리가 혼란스럽다.
가볍게 걷어내려고 하다간 러프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고,
힘을 조금만 과하게 줬다간 파 세이브는 언감생심이 될 상황.

생각이 뒤죽박죽인 채로 셋업을 한 뱁새.
스토로크가 지나치게 투박하다 싶더니 볼은 홀을 지나 전설의 볼보다 더 멀리 굴러간다.

둘 다 보기로 홀을 마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확실히 생각을 정리하고 스윙을 해야 했다’는 후회가 뱁새의 뇌리를 스친다.

7, 8번 두 홀은 둘 다 파.

그리고 전반 마지막 홀.
거리가 상당히 긴 왼쪽 도그렉(개의 다리처럼 어느 한 쪽 방향으로 휘어 있는 홀) 파4홀이다.

지름길로 가자니 약간만 감기면 물에 빠지기 십상이고
밀어 치면 거리도 손해 보고 벙커 또한 입을 벌리고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린 모양도 여태까지 홀 가운데 가장 어렵다.

전설이 드라이버로 티샷을 하는 데 왼발은 약간 오픈을 하고 오른발은 뒤로 조금 뺐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백 스윙을 해서 임팩트가 이뤄질 때까지 척추각 그대로 유지한다.
(그 사이에 자세히도 봤네!)

뱁새가 고개를 끄덕이는 폼이 왜 그런지 알 것 같다는 눈치다.
물론 전설에게 물어보지는 못한다.

전설이 왜 저렇게 셋업을 하는지 필드에 함께 나가 있는 뱁새에게 해설을 들어보자.

“김프로, 아니 뱁새 나오세요!”

“네, 뱁새입니다”

“최상호 프로가 이른바 클로즈드 스탠스(오른발이 뒤로 빠지는 스탠스)를 취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만
최상호 프로님은 아직도 몸이 유연합니다.
그래도 최적인 스윙을 만들어 내기 위해 셋업을 약간 고쳤다고 생각합니다.
오른발은 약간 뒤로 빠져서 백스윙 때 힙턴(엉덩이를 돌리는 것)을 더 쉽게 하고
왼발은 열어서 다운 스윙 때 골반을 잘 열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 프로님과 라운드 하면서 놀란 것은 임팩트 직후까지 척추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신경을 제일 많이 쓰는 부분인데요.
(하여간 틈만 나면 제 자랑)
그래야 회전하는 힘을 그대로 볼에 수직으로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최 프로와 라운드 하면서 다른 느낀 점이 있는지요?”

“네. 최 프로님은 루틴도 인상적입니다.
샷을 할 때마다 마치 인생의 마지막 샷을 하는 것처럼 집중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도 스윙은 너무나 부드럽습니다.
부드럽게 떨어지는 헤드가 임팩트 존에서는 매섭게 돌아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치 헤드가 볼을 맞히기 위해 한껏 움츠리다가 용수철처럼 튕기는 것 같습니다”

뱁새의 해설이 골프 채널의 유명한 여성 필드 해설가의 그것 못지 않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손을 들어주기 바란다.
(이런, 아무도 없나요? 흑흑)

9번홀 뱁새는 긴 거리를 의식한 듯 강력한 티샷을 날린다.
뱁새 볼이 왼쪽으로 약간 감긴다.
물에 빠지지 않았을까 하고 걱정하는 데 “넘어갔을 것 같다”는 전설의 한 마디에 가슴을 쓸어 내리는 뱁새.

전설은 페어웨이 우측을 공략한다.
물론 좀 전에 뱁새가 해설한 그 스윙 그대로다.
그런데 볼이 약간 밀리면서 벙커 쪽으로 향한다.
나중 얘기지만 ‘잘못 쳤다’고 한다.
잘못 쳤다는 것이 스윙을 잘못했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겨냥을 잘못했다는 얘긴지는 알 도리가 없다.

벙커에서 전설은 하이브리드 클럽을 잡는다.
볼을 정타로 맞히는 맑은 소리가 들리긴 했으나 ‘굿 샷’ 소리가 뒤따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온 그린은 하지 못한 듯 하다.
하긴 워낙 먼 거리다.

클럽 몇 개를 들고 뛰어간 뱁새는(뱁새가 몇 개를 들고 갔을 지 짐작을 하는 사람은 애독자다. 애독자 여러분 사랑해요!) 러프에 머리를 내놓고 있는 볼의 상표가 엑스페론(Xperon)인 것을 확인하고도 재차 볼을 들어 확인한다.
(어허! 뱁새를 어떻게 보고. 절대 라이를 개선하려고 집어 든 것이 아니다. 이래 뵈도 뱁새는 영국 왕립골프협회(R&A)가 주관하는 룰 스쿨을 3단계까지 빼어난 성적으로 졸업한 재원이다. 어느 협회든지 뱁새 좀 경기위원으로 써주세요!)

친선이라 그렇지(필요할 때만 친선이래!) 공식 대회 같으면 볼을 확인할 때는
1. 먼저 동반자에게 볼을 확인한다는 의사를 통보하고
2. 동반자가 감시할 기회를 주고
3. 볼을 마크하고 집어 올려서 확인한 뒤
4. 원래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돌려놓고(리플레이스라고 한다)
플레이 해야 한다.

이 가운데 하나라도 생략하면 1벌타를 받는다.
(골프규칙 12조 볼 찾기와 확인에 나온다. 흠흠. 틀리면 망신이다)

뱁새 볼 위치는 고약하다.
거리는 상당한 데 발끝 오르막(몸 앞이 높은 자리) 라이에 반쯤 러프에 묻혀 있다.
(음, 아까는 볼이 이마만 내놓고 있다고 하더니? 제자리에 리플레이스 한 것 맞아?)

갖고 간 클럽 중 가장 긴 6번 아이언을 선택한 뱁새가 루틴을 밟고 시원하게 스윙 한다.
볼이 맞자마자 알았다.
또 엉터리 샷을 했다는 사실을.

발 끝 오르막이면 볼이 어디로 가기 쉽겠는가?
(이 문제 정답을 못 맞히면 왕초보 인증. 히히히)
백돌이(100타를 수시로 넘나드는 초보를 말함)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 아닌가?
발 끝 오르막 라이에서는 볼이 왼쪽으로 감기기 쉽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 클럽을 살짝 열든지
아니면 목표보다 우측을 겨냥하든지
둘 중 한가지(혹은 둘을 섞어서)는 해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 뱁새가 또 셋업을 잘못한 것이다.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선생질(절대 다른 골프 지도자를 비하할 의도는 없음을 밝힌다) 할 때는 잘도 지적하더니 제 앞가림은 못하는 뱁새.
(흑흑)

볼은 신나게 왼쪽으로 휘더니 나중에 안 일이지만 건너면 18번 홀 그린 프린지까지 날아갔다.
(아이고 창피해라)
핀까지 남은 거리는 40야드가 넘는데다 언덕을 하나 넘어서 핀까지는 왼쪽이 높은 데 내리막 경사이기까지 하다.

어프러치를 꺼내 들고 18번 홀 쪽으로 간 뱁새.
퍼팅을 하는 옆 팀에게 모자를 벗어서 인사하는 것으로 민망함을 던 뒤 (저 사람 뭐야 하는 눈총은 옆 홀로 볼을 보내 본 사람은 안다)샷을 준비한다.

58도 웨지를 선택한 뱁새.
전설이 어프러치를 할 동안 열 번도 넘게 연습 스윙을 하더니(이 때 프린지 잔디를 파면 매너 꽝이다. 뱁새는 팠을까 안 팠을까?) 이번에도 볼을 멋지게 베어낸다.

하지만 인생사든 골프든 어디 과정이 좋다고 결과까지 항상 좋던가?
볼은 내리막을 타고 홀에서 열 걸음은 족히 되어 보이는 곳까지 흐른다.

먼저 쳤지만 스핀이 잔뜩 먹은 전설의 어프러치도 내리막을 이기지 못하고 굴러서 뱁새보다 더 먼 거리가 남았다.

여전히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는 뱁새 아니 전설의 과묵함이 왼쪽을 더 볼 걸 그랬네 어쨌네 하고 궁시렁거리는(꿍시렁이 아니고 궁시렁이 맞으며 어디까지나 표준어다) 뱁새와 대조를 이룬다.

마크하고 브레이크를 살피는 전설이 세상에! 그 먼 거리 퍼팅을 집어 넣는다.
파 세이브다.

한 타 앞서고 있던 뱁새는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나서 숨을 깊게 들이 마신 뱁새의 눈빛이 갑자기 매의 그것으로 바뀐다.
매의 눈을 한 뱁새가 바쁘게 돌아다니며 브레이크를 파악한다.

그리고 연습 스윙을 3번 하고 홀 우측을 보고 스트로크를 매끄럽게 한다.볼은 시원스럽게 굴러가더니 홀 쪽으로 휘기 시작한다.

어! 어!
뱁새의 입에서 탄성이 저도 모르게 나온다.

과연 뱁새는 파를 지킬 수 있을까?

(꼭 궁금할 만 할 때 끊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전편부터 점점 분량이 늘어나는 것이 아무래도 독자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봐야 할 것이다)

김용준프로의 골프학교 아이러브 골프
Café.naver.com/satang1

 

날아가는 볼을 보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 최상호 프로


필자인 김용준 프로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한국경제신문 기자로 몇 년간 일했다.
2000년 대 초 벤처붐이 한창일 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했으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호구지책으로 시작한 컨설팅 일에 제법 소질이 있어 넉넉해졌다.
다시 건설회사를 인수해서 집을 떠나 이 나라 저 나라에 판을 벌였다.
그러나 재주가 부족함을 타의(他意)에 의해 깨달았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 잘하는 골프에 전념해 지금은 상당히 잘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다 독학으로 40대 중반에 KPGA 프로 테스트를 통과해 프로 골퍼가 됐다.
그래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는 있다.
그렇지만 아직 50살이 되지는 않아 KPGA 챔피언스투어(시니어투어)에는 끼지 못하고 영건들이 즐비한 2부 투어에서 고전하며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투어에서 우승하겠다는 꿈을 꾸며 열심히 골프를 수련하고 있다.
골프학교 아이러브골프를 열어 아마추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입장으로 연민을 갖고 레슨도 하고 있다.
또 현존하는 가장 과학적인 골프볼인 ‘엑스페론 골프볼’의 수석 프로모터로서 사명감을 갖고 신나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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