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키나와(12)...노래, 좋아해?

입력 2017-08-16 09:21 수정 2017-08-19 12:34


치넨우타는 지난해 오키나와 제2고녀를 졸업하고, 지난 6월초 일본군 32사단과 나하시가 오키나와주민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간호사에 지원해 연수를 받은 뒤, 하에바루야전병원의 간호사로 근무 중이라고 했다.

오늘 이곳에 오게 된 건 가잔비라 고사포진지에 오키나와 제2고녀 4학년 학생들이 진지구축에 동원됐는데, 이 학생들이 작업 중 다칠 경우 간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여학생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아침 일찍 고사포진지로 올라가는데 미군의 함재기에 의해 고사포진지가 폭격당하는 걸 보고 그녀는 혼자서 아래쪽으로 도망쳐 내려오다가 이전부터 알고 있던 이 귀갑묘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오늘 가잔비라 고사포진지로 가는 중이었는데...”

“이수씨, 공습이 없었더라도 우리 가잔비라에서 만날 뻔 했군요”

“가잔비라에서 만났으면, 우타가 나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이수씨처럼 눈에 띄는 사람은 오키나와엔 없어요”

“그래?”

“근데, 이수씨. 이수씨는 저와 이 무덤 속에서 만난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야, 당연히...”

“이수씨...이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에요. 폭탄이 떨어지는 가잔비라 고사포진지에서 불안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어떤 훤칠한 남자가 귀납묘로 뛰어들기에, 저 사람을 따라가면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별안간 들어 ‘목숨 걸고’ 달려 내려와 이 귀납묘에 뛰어든 거였어요...”

우타는 ‘목숨 걸고’라는 말에 힘을 주더니 말끔히 이수를 쳐다보았다. 이수는 어떤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라 그녀의 눈을 마주 들여다보았다.


<사진=이파 DB>

그녀는 귀갑묘 바닥에 나뒹굴어진 정어리통조림을 보자, 배가 고프다며 좀 따달라고 했다. 이수는 ‘이거 군수품이어서 함부로 따먹으면 안 되는데’라고 얘기하려다가 자신도 심한 허기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재빨리 따개를 찾아 통조림 덮개를 들어낸 뒤 우타에게 통째로 내밀었다.

콤콤한 비린내가 무덤 안에 가득 찼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손가락 집게로 국물 떨어지는 정어리 한 토막을 꺼내 이수의 입에 직선으로 드밀더니, 그 다음 자신도 정어리 꼬리부분을 하나 건져내 귀납묘 천정을 향해 팔을 쭉 뻗더니,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혀 입안에 쏙 집어넣었다.

우타가 정어리를 먹는 행위는 마치 춤사위 같았다. 아니, 아까부터 그녀의 모든 몸 움직임은 춤사위로 보였는데,  팔꿈치, 손목, 손가락의 놀림이 현악기를 켜듯 음악적으로 움직이는가 하면 북을 치듯이 가락에 맞춰 행동했다.


<일요일 오키나와 나하 고쿠사이도리를 걸으면 이렇게 춤추는 사람을 곳곳에서 만난다. 사진=이파>

짠 정어리를 먹고 나자 이수는 입안이 텁텁해져오는 걸 느꼈다.

“우타, 혹시, 정종 마셔본 적 있어?”

“아뇨, 하지만 오늘은 마셔볼래요”

이수는 보급상자속에 들어있는 5병의 정종 가운데 2병을 꺼내 따개를 딴 다음, 각자 1병씩 나눈 뒤 병을 서로 부딪치고 나서 목구멍 속으로 쏟아 부었다. 뭔가 뒷맛이 아쉬운 듯하자 우타가 자기의 의료품가방을 열고 뒤적이더니 우친 두 뿌리를 꺼내서 이수에게 한 뿌리를 내밀었다.

“어?...이거 우친이잖아!”

“맞아요. 입이 텁텁할 땐 이게 최고예요”

“오키나와엔 진짜 우친이 많아?”

“그럼요. 우리 아버지는 우친을 직접 재배했어요...”

“그래?...나는 이 며칠 전 우친 몇 뿌리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두 사람은 우친 뿌리를 통째로 입안에 넣은 뒤 와각와각 씹자 우친은 정종과 혼합되어 두 사람의 얼굴을 빠르게 자극했다. 금방 볼이 발갛게 상기된 우타는 콧소리로 류큐가락을 흥얼거리며 어깨를 가볍게 들썩이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눈에 힘을 주며 이수를 쳐다봤다.

“이수씨, 노래 하나 불러주세요”

“노래?...노래 좋아해?”

“그럼요. 제 이름이 우타(노래)잖아요”

“난, 노래를 잘 못하는데...”

“그래도 불러 봐요...”

그녀의 요구는 상황과 현실에 전혀 적합하지 않았다. 지금 바깥에선 자기가 다니던 학교와 살던 집이 불타고 있는데 엉뚱하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자 이수는 ‘혹시 우린 이미 귀신이 아닐까?’라고 의심해봤다.

‘아까 기총소사를 당할 때 몸은 벌써 총 맞고 죽었는데, 영혼만 이 무덤 안으로 뛰어들어 이렇게 둘이서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 우리 두 사람만 아직 죽은 줄 모르고 서로 영혼끼리 대화를 하고 있을지 몰라. 그러니까 이 불덩이가 된 전쟁터에서도 노래를 부르자는 얘기가 나오는 거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폭파의 잔해들로 가득 차고, 존재와 무가 혼돈되는 이 가잔비라 산기슭의 ‘개미집’안에서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이파(李波)...소설가.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징용으로 끌려간 천재 식물학자와 오키나와 간호사의 애타는 사랑이야기다. 두사람은 일본군의 횡포와 미군의 폭격 틈바귀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더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한 포기의 산호를 더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이 소설은 필자가 15년전 일본에서 대학교수 하던 때부터 도쿄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 현지를 꾸준히 찾아가 취재해서 썼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가상통화의 미래, 어떻게 생각하세요?

  • 현대판 튤립 투기이며 화폐로 인정받지 못할 것 702명 59%
  • 결제·지급 수단으로 인정받아 은행 대체할 것 483명 41%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