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오키나와(11)...탄력적인 몸매

입력 2017-08-10 09:16 수정 2017-08-10 09:18


그녀는 이수가 자벌레처럼 기어가는 모습을 보더니 가볍게 웃으며, 자기도 공기구멍 쪽으로 다가와 함께 바깥을 내다보려고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나 구멍은 두 사람을 한꺼번에 수용할 만큼 크지 않았다.

하지만 공기구멍을 더 늘릴 수는 없었다. 미국 그루먼 비행기의 조종사가 이 구멍을 발견하면 무조건 로켓포를 발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두 사람은 좁은 틈새로 겨우 바깥을 내다봤다.

두 사람은 각각 한쪽 눈으로 미군 비행기가 사각형의 소이탄인 네이팜탄을 민가지역으로 떨어트리는 걸 지켜봤다.

아까의 로켓포처럼 폭발음이 크게 들리진 않았지만 소이탄은 민가와 일본군 숙소로 활용중인 학교건물들 위에 내려 앉아 모든 집들을 불태우고 있었다. 수많은 연기기둥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아아, 우리 학교가 불에 타들어 가네...”

아까 이수가 나카타와 함께 지나온 마쓰야마 현립병원 옆에 있는 오키나와 제2고등여학교가 소이탄을 맞고 불타는 중이었다. 그렇게도 당당하던 단발머리는 검은 연기를 하늘로 내뿜으며 불타는 나하 시내를 내려다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가 다니던 옛 오키나와 제2 고등여학교가 있던 자리.      사진=이파>

두 사람은 불꽃과 연기로 얼룩지는 나하를 내려다보다가, 언제부턴가 두 사람의 볼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두 사람 중 어느 쪽도 볼을 다시 때진 않았다.

누가 먼저 그랬을까?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살짝 비비기 시작했다. 죽음이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일까?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불타서 검은 연기가 하늘을 가리는 이 땅위에서 처음 마주친 두 개의 볼은 서로 세포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이어 볼이 아닌 다른 곳에도 여전히 세포가 생명을 지니고 있는지 느껴보고 싶어 두 사람은 서로 입술로 곳곳을 더듬었다. 누가 이런 감촉을 태어나게 했을까? 왜 지금까지 우리는 몸속에 이런 희열과 촉촉함이 숨겨져 있는 걸 몰랐을까? 왜 아무도 이걸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탄력적인 몸매를 가진 두 사람은 지금까지 전혀 몰랐던 몸속 깊은 곳에 파묻혀있는 신기하고 신비한 생명들을 입술로, 손으로, 가슴으로 구출해나갔다.

늪 속에 빠져있던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을 땀 흘리며 구조해서 바다바깥으로 밀어내 그곳에 방파제를 쌓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두 사람의 감각은 하나가 되어 계속 헤엄을 칠 뿐 파도 바깥으로 빠져나갈 순 없었다.

결국 두 몸의 거대한 파도는 방파제에 부딪쳐 물 바깥으로 치솟더니 하얀 모래사장에 발가벗은 채 내팽겨 쳐지고 말았다. 시간이 한참을 멈췄다. 긴 숨소리만 남은 귀납묘 돌바닥 위에 두 사람은 맨몸으로 나란히 드러누워 귀갑묘의 돌 천장을 함께 바라보았다.

“나하에 언제 왔어요?”

“두 달 전에....”

아직 숨이 가라앉지 않은 이수에게 물어보는 그녀의 말투는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팽팽하고 발랄했다. 위태롭고 처참한 이 전쟁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운율적이고 튀는 억양이었다. 이수는 그녀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려다가, 느닷없이 딴말을 내뱉었다.

“난, 반도인(半島人)이야...”

“알고 있어요. 본토인이나 류큐인 가운데 이렇게 하얀 얼굴에 키 크고 코 큰 사람은 없거든요...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나?, 서 이수, 일본이름은 이시타 리수...”

“그럼, 어떻게 불러야 하죠?”

“그냥 이수라고 하면 돼”

“이수? 이수?...음...제 이름은 우타예요. 치넨 우타”

“치넨 우타? 처음 들어보는 성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네”

“그래요?, 우리 마을에 가면 저와 이름 같은 사람이 3명이나 더 있어요”

“그 마을이 어딘데?”

“자마미예요...나하에서 배를 타고 한참 가야하는 작은 섬이에요.”


<여름휴가를 즐기러 온 젊음.    사진=이파>

우타는 일어서서 빛이 들어오는 공기구멍으로 가서 나하항 앞쪽 바다를 가리키며 저쪽이 ‘자마미’라고 했다. 사실 이수는 도쿄제대를 다닐 때부터 산호(珊瑚)에 관심이 많아 거대한 산호초가 있는 자마미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이수로선 우선 그녀가 어떻게 해서 쏟아지는 폭탄 속을 헤쳐와 이 작은 ‘개미구멍’을 뚫고 묘지 안으로 뛰어들었는지가 더욱 궁금했다.
이파(李波)...소설가.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한 이 장편소설은 징용으로 끌려간 천재 식물학자와 오키나와 간호사의 애타는 사랑이야기다. 두사람은 일본군의 횡포와 미군의 폭격 틈바귀에서 한 사람의 생명을 더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한 포기의 산호를 더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다. 이 소설은 필자가 15년전 일본에서 대학교수 하던 때부터 도쿄도서관들을 뒤지고, 오키나와 현지를 꾸준히 찾아가 취재해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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