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시] 시인 예이츠의 안타까운 사랑 '하늘의 융단'

입력 2017-08-07 14:58 수정 2017-08-07 16:23
 

      하늘의 융단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금빛 은빛 무늬로 수놓은

하늘의 융단이,

밤과 낮과 어스름의

푸르고 침침하고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밑에 깔아드리련만

나 가난하여 오직 꿈만을 가졌기에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히 걸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아일랜드 국민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의 사랑시다.

첫 시집으로 막 이름을 날리던 1889년 어느 봄날. 스물네 살 청년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드는 여인이 나타났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비밀결사조직 지도자의 소개장을 갖고 나타난 젊은 여성. 이름은 모드 곤이었다. 곤은 예이츠의 아버지 앞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싸우자며 열변을 토했다.

그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한 예이츠는 곤을 위해 무엇이든 하리라 다짐했다. 곧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 단체에 가입했다. 곤이 좋아할 만한 사회활동에 주력하면서 시풍도 탐미적인 것에서 민족주의 성향으로 바꿨다.

그런 그에게 곤도 서서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인에 대한 존경일 뿐 사랑은 아니었다. 뛰어난 대중 연설가이자 여성혁명가인 곤에게 사사로운 연정은 사치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예이츠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뒤 그는 용기를 내 정식으로 청혼했다. 그러나 곤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이후 몇 번이나 계속된 구애도 허사였다. 곤은 아일랜드 독립군 장교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 장교는 1916년 대규모 ‘부활절 봉기’에 참가했다가 영국군에 잡혀 사형되고 말았다.

남편과 사별한 곤에게 그는 한 번 더 손을 내밀었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의 나이 51세였다. 어릴 때 변호사인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대를 고집했고, 시인이 되기 위해 그림마저 내던진 자유인이었으나 사랑만큼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 가난하여 오직 꿈만을 가졌기에/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 사뿐히 걸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라던 간절한 기원도 소용이 없었다.

절망한 그는 평범한 25세 여인 조지 하이드 리즈와 ‘탈출하듯’ 결혼했다. 거의 자포자기 심정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의 생애에 처음으로 안정이 찾아왔다. 오래고 질긴 사랑의 고통에서 비로소 벗어난 것이다.

이때부터 앞날이 환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시 세계가 훨씬 깊어졌다. 딸과 아들도 잇달아 얻었다. 얼마 후엔 아일랜드공화국 상원의원이 되고, 이듬해(1923년)에는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파란만장한 사랑의 상처가 문학적 성공의 자양분이 된 것이다.

이런 사연과 함께 그의 다른 시 ‘아, 너무 오래 사랑하지 말라’를 옆에 놓고 읽어보면 삶의 또 다른 비의(秘意)를 발견할 수 있다.

 

그대여, 너무 오래 사랑을 말라.

나는 너무 오래 사랑을 했다.

그리하여 시대에 뒤졌다.

마치 옛 노래처럼.

 

우리 젊은 시절에는 언제나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의 생각과

구분하는 일을 아예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토록 하나였으니.

 

그러나 아, 일순간 그녀는 변했다-

아, 너무 오래 사랑을 말라,

그렇지 않으면 시대에 뒤지리라.

마치 옛 노래처럼.

 

그런데, 그의 진짜 속마음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노년에 쓴 시 ‘그대 늙었을 때’에서 그는 ‘그대 내면에 감춰진 순례하는 영혼을 사랑하고/ 그대 변해가는 얼굴과 슬픔을 사랑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라며 첫 순정을 평생 간직하고 있었노라고 고백했다.

이제는 발밑에 깔아줄 융단도 없고, 가난하여 더 애틋한 꿈도 없고, 사뿐히 밟고 갈 어여쁜 발걸음도 없지만 그의 눈길과 음성은 여전히 그날의 연인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절절함 때문일까. 끝내 이루지 못한 그의 사랑이 더욱 안타깝고, 처연하고, 서늘하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애절하고 아름다운 지도 모른다.

 
고두현/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 거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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