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의 삶이 피곤한 이유

입력 2012-10-09 00:00 수정 2012-10-09 00:00


'예쁜 여자'를 말한다 ⑭ 예쁜 여자의 삶이 피곤한 이유

많은 사람들은 TV드라마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의 인생 속에 그토록 로맨틱하고 놀라운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요즘 드라마들에 무리한 설정이 반복되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도록 사랑했던 여자주인공이 알고 보니 배다른 동생이었는데 희귀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지만 신내림을 받은 남자주인공에 의해 씻김굿을 받고 완치되는 대신 남자가 교통사고로 먼저 죽는’ 정도의 무리한 설정이 아니고서야 비현실이라는 전제를 깔고서 마음 편하게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대응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말한다. 알고 보면 TV드라마만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매체는 없다고 말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이유는 예쁜 여자 때문이다. 모든 드라마에는 예외 없이 예쁜 여자가 등장하는데 따지고 보면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는 뭐가 어찌됐건 그 예쁜 여자 때문이다.

발상을 전환해 보자. 드라마 속의 예쁜 연예인이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정말로 저 정도로 예쁜 여자가 있다면 그녀의 현실은 어떨까를 상상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가만히 서 있는 예쁜 여자에게 낯선 남자가 다가가 작업을 펼치는 드라마 속 장면을 봤다고 하자.

“길 좀 여쭤볼게요. 당신의 마음으로 가는 방향은 어디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유치하고 식상하고 속이 뻔히 보이는 멘트를 날리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도 드라마니까 봐 주는 셈 친다며 군말 없이 계속 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난다. 구체적인 표현이야 다양하겠지만 아직까지 드라마로 시도되지 않은 기상천외한 멘트들이 예쁜 여자 앞에서는 난무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당신이 남자라면 예쁜 여자와 만날 때 결코 늦어선 안 된다. 기다리는 건 무조건 남자여야 한다. 그녀들이 혼자 길가에 서 있을 때 벌어지는 일의 전개에 대해서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드라마가 전부 다 예쁜 여자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평범한 여자들이 재벌가의 손자와 눈이 맞아 신분상승을 경험하는 이른바 ‘신데렐라 스토리’는 한국 드라마의 꾸준한 레퍼토리다. 이런 드라마를 시청하는 여자들은 ‘나도 언젠가는…’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에 위안을 얻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산타는 없다고 말하는 기분과 비슷해서 영 찜찜하지만 그래도 말해야겠다. TV드라마에 나오는 여자들이 아무리 평범해 보일지라도 그녀들 역시 ‘예쁜 여자’다. 안 예쁜 여자가 드라마에 주연을 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작품 속 그녀들은 그저 평범한 척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정점으로 평가 받는 <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드라마 안에도 예쁜 여자들은 잔뜩 등장한다. 그녀들이 뚱뚱하고 평범한 캐릭터를 연기한들 실제 모습을 보면 대다수 남자들의 마음을 매혹하고도 남음이 있다.

비현실은 그들이 만들어 내는 구체적인 에피소드나 몇 가지 우연적 장치에 국한될 뿐, 현실 속 예쁜 김삼순들은 드라마 같은 연애를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있다.

예쁜 여자의 주변에는 언제나 남다른 에너지가 감돈다. 남자들은 어떻게든 그녀의 눈에 들거나 그녀를 갖기 위해 무리한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 못지않은 황당하고 기묘한 사건들이 펼쳐지는 것이 명백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쁜 여자의 삶은 언제나 피곤할 수밖에 없다.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눈동자는 그녀를 비추는 카메라가 되어 언제나 예쁜 여자의 인생을 ON AIR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겨난다. 진실이 이러한데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간단하다.

예쁜 여자들이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계속)

1983년에 출생한 자칭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
'유니크', '연애의 뒷면' 등 두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
'미래한국', 'StoryK'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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