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가이아나의 국부는 왜 인도 사람일까?

입력 2017-08-04 16:18 수정 2017-08-04 17:04

요즘 조금 색다른 영화를 찾다 보니 인도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미국의 할리우드 스타나 한국의 한류 배우들처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스타들 중에 인도 배우도 빠질 수 없다. 인도 출신 남자 배우라면 가장 먼저 아미르(Aamir Khan) 칸이 떠오른다. 필자도 아미르 칸의 명작 중, 세 얼간이(3 Idiots)나 피케이(PK)를 즐겨 봤었다. 아미르 칸의 작품이라든가, 다른 유명한 인도 영화들, 소위 말하는 발리우드(봄베이+할리우드의 합성어) 영화들을 자주 찾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인도가 가진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 인도 영화를 보면 볼수록 인도인의 종교인 힌두교에 많은 관심이 생겼다.
힌두교 신자들이 가장 많은 지역은 인도반도와 그 근처이다. 인도와 네팔을 포함 모리셔스부터 시작해 말레이시아를 걸쳐 오세아니아의 피지까지의 넓은 영역을 포함된다. 물론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곳은 아시아의 남부 국가들이다. 하지만 조사를 하던 중 예외를 찾았다. 바로 가이아나라는 나라다.
남미에 위치한 가이아나는 굉장히 신기한 나라이다. 일단 이 나라의 국호부터 말하자면, 가이아나 협동 공화국이다. 말 그대로, 가이아나는 문화, 언어, 종교의 합동 나라이다. 인구의 약 60%가 개신교, 천주교, 성공회, 여호와의 증인을 비롯해 크리스천이고, 그 다음에 가장 많은 신자를 가지고 있는 제일 많은 종교는 거의 30%로 힌두교이다. 민족 구성으로 살펴보면 가이아나는 작은 인도라고 부를 정도로 인도계 주민이 많은 나라이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인도계가 차지하고 있다. 필자는 인도에서 동떨어진 남미 국가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인도 사람이 살게 된 것인지 궁금했다. 그 답을 가이아나 화폐에서 찾았다.



100 달러 뒷면에 성 조지 성당의 사진이 있다. (출처: banknote.ws)

가이아나 화폐 중 100 달러 뒷면에는 성당 사진이 있다. 수도 조지타운(Georgetown)에 있는 이곳의 이름은 성 조지 성당(St. George's Cathedral)이다. 이 성당은 목재로 만든 성당 중 지구 상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다. 1894년에 완공된 이 성당의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 그것은 성 조지 성당이 천주교가 아닌 성공회 성당이라는 것이다. 한 화폐에 성공회 성당의 사진이 실릴 정도라면, 그 나라에서 성공회 영향력, 더 나가, 영국의 영향력이 어떠했는가 짐작할 수 있다. 100 달러를 살펴본 후, 가이아나의 근대사를 검색했더니 역시 예상한 대로 가이아나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원래 가이아나가 속했던 이 일대는 원래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다. 어떤 이유로 영국의 식민지가 됐을까 궁금해졌다. 게다가 영국이 왜 인도 사람들을 이 땅으로 끌고 온 것인지 답을 찾기 시작했다.
16세기 말부터 네덜란드 사람들은 가이아나에 이민을 왔다. 17세기가 되면서 가이아나와 주변 지역이 네덜란드의 식민지가 되어 버렸고, 이미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노예들이 끌려왔다. 18세기 중순부터 가이아나에 영국 이민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영국이 이 지역을 지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네덜란드와 프랑스 동맹을 이기지 못했던 영국은 환금의 시기를 기다렸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영국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 등장한 나폴레옹이 네덜란드까지 침략했고, 이를 계기로 가이아나도 프랑스 영향 하에 들어갔다. 나폴레옹이 유럽에서 제거 되는 과정에서 영국은 프랑스가 지배했던 남미 지역의 일부를 점령하게 되었다. 그 영토 중 하나가 가이아나이였다.


500 달러 뒷면에 국회 의사당의 사진이 있다. (출처: banknote.ws)

다시 화폐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500 달러의 뒷면에 예쁜 건물이 실려 있다. 그 건물은 현재 가이아나 국회 의사당이다. 그러나 이 건물이 최근에 생긴 것은 아니다. 약 200년에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1831년에 가이아나의 모든 지역을 장악한 영국이 수도인 조지타운에 정부 청사를 만들 목적으로 세웠고, 2차 대전 이후까지 조지타운을 중심으로 가이아나를 통치했다.
이제 가이아나에 인도 사람들이 대규모 이민 오게 된 과정을 설명해 보자. 이를 위해서는 남미에서 노예들의 반란이 일어났던 19세기로 돌아가야 한다. 19 세기 초기에 남미에서는 노예가 일으킨 반란이 잇따라 발생했다. 노예들의 반란으로 탄생한 아이티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던 영국은 가이아나에서 더 이상 노예 제도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영국이 가이아나를 점령하기 전, 이미 이 지역에서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던 사례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영국이 인도에서 남미 식민지를 위한 노동자 동원에 집중했다. 수많은 인도 사람이 해외 노동 이민자 자격으로 가이아나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노예들을 대신해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들어왔던 인도 사람들은 이후 가이아나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000 달러 뒷면에 가이아나 은행의 사진이 있다. (출처: banknote.ws)

19세기 말, 영국이 모든 해외 식민지에서 자치 행정 체제를 도입한 후, 가이아나에서는 선거가 실시됐다. 1891년에 선포된 헌법으로 1892년에 처음으로 총선이 열렸다. 20세기에 강하게 분 민족주의 바람이 가이아나에도 영향을 끼쳐, 이 곳에서는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가이아나는 영국과 협상을 통해 결국 1966년에 독립을 쟁취했다. 가이아나 사람들은 앞으로 독립할 것을 알고 있었고, 독립이 되기 1년 전부터 1000 달러 뒷면에 보이는 가이아나 은행을 세웠다. 미리 독립을 준비한 덕에 가이아나는 독립하자마자 다른 나라 화폐가 아닌 자기의 화폐를 발행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가이아나의 독립 과정에서 인도 사람들의 역할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도계 가이아나 정치인들이 독립 과정에서 적극적인 모습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인도계로 구성된 인민진보당이 영국에 압박을 가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등장한 인도계 지도자 제띠 자간(Cheddi Jagan)은 가이아나의 독립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가이아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 국부로 남아 있다. 인도 사람들은 자신의 조국인 인도를 떠났지만, 저 멀리 남미에 있는 가이아나를 또 다른 모국으로 만들었다.

 

알파고 시나씨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2004년 한국으로 유학 온 알파고 시나씨는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터키 지한(Cihan)통신사 한국특파원으로 활동했으며, 각국 화폐들에 대해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 :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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