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선호의 생물학적 근거

입력 2012-05-17 03:11 수정 2012-05-17 03:11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은 언뜻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인다. 조류에게 그 깃털의 화려함을 인식할 수 있는 미적 감각이란 게 존재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지나치게 럭셔리한 깃털은 비행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진화(evolution)는 어째서 이토록 쓸모없어 보이는 기관의 존립을 허락했을까?



이 문제의 해답에 근접하기 위해서 우리는 외계인이 지구인들을 관찰하는 상황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지구에 몰래 닿을 정도의 기술력을 가진 외계인이라면 21세기 인간들의 사회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세계는 갖추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인간이란 종은 참으로 이상하다. 예를 들어 가방을 살 때 재료 상으로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L과 V가 기이하게 꼬여있는 그림이 박혀 있을 경우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군말 없이 지불한다. 비슷한 상황이 C나 D&G의 경우에도 연출된다. 잔뜩 바가지를 써놓고도 사기를 당했다는 느낌에 괴로워하기는커녕 진심으로 기뻐한다.”



명품에 대한 집착은 흔히 자본주의 경제학의 반례로 지목된다. 그 원조는 소스타인 베블런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대공황의 전조를 읽은 사회경제학자였던 그는 탐욕이 지배하던 시대의 혼돈 속에서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계속 오르는 재화가 있다.”는 관찰을 근거로 전통적인 수요-공급 법칙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의 업적은 아직까지도 ‘베블런 효과’라는 이름으로 계승되고 있다.



허나 시장과 인간에 대해서 보다 심도 있는 관찰을 하고 나면 베블런 효과는 자본주의의 예외가 아닌 그저 조금 특별한 사례일 뿐이라는 진실이 금방 드러난다. 외계인들이 위에서 예리하게 관찰했듯이 명품의 핵심은 브랜드의 희소성이지 재화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는 명품구매를 통해서 가방이나 신발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나는 비싼 것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된다’는 사인(sign)을 구매하는 것이다. 가방과 신발은 브랜드가 프린트되는 공간을 제공하는 탈 것(vehicle)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사례는 동물세계에서도 발견된다. 맨 처음에 언급한 공작새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생물학자들은 아무런 효용가치도 없어 보이는 공작새의 이 깃털이 교배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음을 관찰했다. 즉, 수컷의 화려한 깃털이 몇 개만 부족해도 짝을 찾지 못한 채 ‘노총각 공작’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부부 생물학자 아모츠 & 아비삭 자하비(Amotz & Avishag Zahavi) 교수들은 여기에 ‘핸디캡 원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작새는 ‘화려한 깃털’이라는 핸디캡을 놓고 누가 더 생존력이 강한 수컷인지에 대한 승부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체력이 좋고 생존성이 있는 수컷일수록 깃털 관리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을 것이기에 암컷들은 오래 고민할 필요 없이 깃털만 보고 판단을 하면 된다. 이 쯤 되는 편리함이라면 진화의 허락을 받았을 법도 하지 않은가?



자하비 부부는 이 핸디캡 원리를 지나치게 많은 부분에 적용했던 까닭에 학계에서 약간의 비웃음을 샀던 모양이지만, 적어도 이 원리를 명품을 구매하는 인간 세계에도 적용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엄청나게 비싼 것에 비해 실용성은 보통인 명품은 틀림없이 ‘핸디캡’이다. 허나 그 핸디캡이 여러 가지 사인을 효과적으로 방출한다. 남성은 여성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하면서 자신이 이 핸디캡을 감당할 만큼 여유가 있으며 게다가 당신을 위해 이 불편함을 감수할 각오까지 되어 있다는 사인을 동시에 보낼 수 있다. 선물을 받은 여성은 자신이 그런 남성의 사랑을 받을 만큼 매력적인 존재라는 사인을 온 세상에 보낼 수 있다. 불황일수록 명품이 더욱 잘 팔리는 이유도 우리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핸디캡도 통찰력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1983년에 출생한 자칭 “서른 살의 자유주의자”.
'유니크', '연애의 뒷면' 등 두 권의 책을 저술한 작가.
'미래한국', 'StoryK'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글을 기고하는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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