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그 비극적 자화상

입력 2017-05-29 16:45 수정 2017-06-12 14:15

<
총장님, 어떻게 아드님은 잘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의논 드리려던 참입니다. 사장을 할 만한 분을 소개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들은 나이도 어리고 아직 업무 장악 능력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후배 중에 증권 회사 전무까지 한 친구가 있습니다. 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민성이 동생이 생겼습니다.”

<,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산달이 언제입니까?>

8월 중순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공 총장은 내가 좋은 명을 뽑아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아들이라야 할 텐데…>

“아들입니다.”

 

공총장과 방여사에게 소선의 둘째 아들이 언제 태어나면 명품이 될지를 뽑은 다음 그 이유를 설명하라는 숙제를 냈다.

벽에 붙여둔 게시판은 아직 깨끗했는데 옛날 인연을 적어서 설명할 일이 생겼다.

전혀 뜻밖의,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저어, 수진이 엄마입니다.”

<예에?>

무슨 소린가? 느닷없는 이름과 뜬금없는 폰의 울림은 아주 먼 데서 들려왔다.

낯설기 짝이 없었다.

“일원동에서 자주 찾아뵈었던 수진이 엄마입니다.”

<아아>

아들의 목소리가 우렁차서 교수나 정치 쪽으로 나가든지, 안되면 아나운서라도 하라고 했었던 집인 줄 알았다.

아들은 갑목(甲木)일주에 시()가 병인(丙寅)이어서 그렇게 기억 하고 있는, 그 집 수진이는 키가 크고 늘씬 했는데추억을 더듬어 나갔다.

남편은 대기업 부장을 하다가 벤처기업 쪽으로 창업을 했고, 수진이 엄마는 이대 가정대를 나왔던 기억도 떠올렸다.

이대 가정대학에서는 뭘 가르치는지 몰라, 행복한 가정과는 거리가 먼, 지식 위주의 책 속에 학생들을 가둬 놓고 있었는데어디 이대만 그랬나? 모든 대학의 가정 대학이 그땐 그랬지 하는 그 당시의 생각도 더듬어 냈다.

그런데 전화를 한 수진이 엄마는 그쪽이 아니었다.

“일원동에 살 때 저희 집에도 오셨고 이사 갔을 때도 오셨지 않습니까? 식사까지 하고 가셨는데…”

내가 기억해내지 못하는 게 야속하다는 듯 아주 자세한 설명을 했다.

 

드디어 알게 됐을 때 주말 일요일쯤에 전화드리고 찾아뵙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수진이 엄마는 명문대학 나와 재취 자리에 시집갔었다. 수진이 아버지는 딸을 둘 데리고 장가들었고 또 딸 하나를 낳았다.

그때 낳은 딸이 지금 이대 다닌다고 했다.

나는 옛날 그 수진이 엄마가 잠을 잘 못 자고 건강이 좋지 못했을 때를 떠올렸다.

콩팥이 망가져 자다가 소변보러 3~4차례 이상 깨는 바람에 그랬던 것이었다.

낮은 야산조차 오르는 것을 힘들어했으나 나중에는 설악산 대청봉을 날아다닐 듯할 만큼 건강 해졌던 기억도 떠올렸다.

건강해지자 수진이 아버지가 아들을 하나 낳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했다.

좋은 날을 잡았다. 물론 섭생은 당연히 잘했고 드디어 아들을 만들기 위해 부부합방을 할 시간에 목욕을 한 다음 자리를 펴는데 막내딸이 일어나 방해를 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져 버렸다.

하늘의 뜻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임을 알아야만 했었는데

사실 그 날 새벽에 씻으러 목욕탕에 들어가서 불을 켜는데 느닷없이 전구가 나가버렸다.

수진이 아버지가참 희한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새벽에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막내딸, 늦잠 꾸러기 막내딸이 새벽에 일어나 엄마 품으로 어떻게 기어들었는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자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었던 그 수진이집은 한동안 엄청나게 내게 잘했었다.

언제부턴가 핫바지 방귀 새듯 사라졌었고 그 뒤 우연히 만났을 때 건강을 물었었다.

“예, 좋은 한의사님 만나 보약 먹고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

한심하다 여겼었다. 고치긴 내가 고쳤건만

『그래 잘 살아라. 복 많이 받고싸가지』

그랬었던 그 수진이 아버지는 아프다고 했다. 경인(庚寅)일주 였으니 병신(丙申)년 천극지충에 얻어맞았으면 살았어도 산목숨이 아닐 테지.

그래도 인연이다 싶어 주말을 비워 뒀건만 사정이 생겼다거나 하는 등의 전화도 없이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들을 제대로 된 사람 취급 한 내가 잘못 된 것일까?

 

한정희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명리학을 연구하여 명리학의 대가로 손꼽힌다. 무료신문 메트로와 포커스에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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