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나무의 힘

입력 2012-07-23 14:16 수정 2012-07-23 17:43
                                           벌거벗은 나무의 힘

사과(apple)는 힘이 세다. 아담과 이브를 인류의 조상으로 만든 것도 사과요, 뉴튼으로 하여금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닫도록 한 것도 사과다. 세잔의 인상주의가 미술사에 영원히 남도록 한 것도 사과요, 스티브 잡스를 앞세워 21세기를 송두리째 뒤집어놓은 것도 사과다. 이브의 사과와 잡스의 사과가 성한 사과가 아닌, 한입 베어물린 사과인 건 도대체 무슨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사과만 그러하랴. 나목(벌거벗은 나무)의 힘 또한 막강하다. 언어의 연금술사요 변화무쌍한 사람의 마음을 그려내는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소설가 박완서(1931-2011)씨의 데뷔작이 바로 '나목'이요, 누구도 흉내내기 힘든 독특한 화풍으로 1950-60년대 이 땅 서민들의 삶을 표출, 20세기 국내 최고의 화가가 된 박수근(1914-1965)씨의 대표작도 '나목'이다.
 
이파리란 이파리는 다 떨군 채 벌거벗은 맨 몸뚱아리로 허허벌판에 홀로 서서 한 겨울 칼바람과 눈보라를 고스란히 맞는 나목의 이같은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박완서씨는 생전에 마흔살 주부로서 소설 쓰기에 도전하자고 작정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고백했다.

"더없이 총명하고 다감했던 오빠를 6.25 때 잃었다. 이유 없이 끌려가 고문당한 끝에 사람만 봐도 무서워 떨던 오빠의 모습은 기막혔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로 인한 마음 속 아픔과 슬픔은 가시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놔봤지만 남의 일이다 싶어선지 다들 시큰둥했고 그럴 때마다 상처는 오히려 커져만 갔다. 나는 내 슬픔을 털어놔야 했다."아물지 않는 상처가 평범했던 마흔살 주부를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로 변신시킨 셈이다.

박수근씨는 강원도 양구에서 보통학교만 나온, 스펙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화가다. 소설 '나목'에 나오는, 미군부대에서 잔돈푼에 미군과 가족들의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의 실존인물이 바로 그다. 학벌과 학력도, 연줄도 없이 가난에 허덕였으나 자기만의 작품을 위해 앞뒤 재지 않고 정진한 끝에 결국 한국인은 물론 세계인이 좋아하는 화가로 우뚝 선 것이다. 

살다 보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허허벌판에 내몰릴 때가 있다. 그것도 벌거벗기운 채로. 춥고 아프고 쓰라리기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무는 벌거벗었을 때 큰다. 단단한 나이테를 만들면서.사람도 다르지 않다. 칼바람과 눈보라를 이기면, 살이 타는 듯한 가뭄을 견디면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을 터. 앞을 향해 힘차게 달려나가면 이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곳에 서게 될 게 틀림없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울 것이므로.  **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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