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야생초 - 계율, 인내, 생존.

입력 2017-05-14 08:56 수정 2017-05-15 08:58
계율.

야생초는 산과 들에서 저절로 자라는 풀이다. 빨리 핀 꽃들이 먼저 지고, 키 큰 꽃나무들이 이 산 저 산을 아름답게 할 때 야생초는 낮은 자세로 구석진 모퉁이에 저마다 자리를 잡았습니다. 연잎은 새벽이슬이 무거우면 잎을 숙여 이슬을 털었고 햇살이 따가우면 잎을 오므리며 자기를 보호했습니다. 야생초는 스스로 지키는 계율이 있습니다. 잡초는 뜨거운 햇살에 타죽을지언정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계율이 있고, 취나물은 배고픈 벌레에게 살점을 내어줄지언정 독을 품지 않는 살신성인의 계율이 있고, 산삼은 화려한 꽃 때문에 심마니에게 잡힐지언정 프로그램을 멈추지 않는 지조의 계율이 있다. 야생초는 강하다. 돌나물은 군집을 이루지만 저마다 자유롭게 뻗어나가고, 부초는 잎으로도 뿌리를 만드는 질긴 생명력이 있다. 경사진 땅에서도 백년 효능을 품는 백수오처럼 밝고 유익함을 선택하고, 넝쿨 속에서도 생약 성분을 모으는 약쑥처럼 자기 가치를 찾자.

인내.

야생초는 참고 버틴다. 비가 오면 온몸이 비옷이 되고, 햇살이 따가우면 온몸은 양산이 된다. 5월이라 여러 꽃들이 화려한 빛과 자태를 드러낼 때 논둑과 밭둑의 야생초는 잡초라는 이유로 무서운 적(敵)으로 분류되었습니다. 독한 제초제가 뿌려져 육신이 녹고 살기 가득 찬 예초기 칼날이 지나가면서 푸른 살점이 찢기고, 뽑혀지고, 잘려졌다. 공포와 폭력이 지나간 밑둥치에 줄기의 수액이 내려와 상처를 쓰다듬는다. 야생초는 참을 수 없는 고통도 참는 생명의 전사(戰士)다. 잡초의 억센 풀뿌리는 지구의 피부를 보호하고, 쑥부쟁이는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서 땅과 하늘을 연결한다. 5월의 야생초여! 멋진 나무들 때문에 기죽지 마라. 꽃들이 가기 싫어하는 모퉁이 빈자리를 찾아가 생명의 판을 벌리고, 불탄 자리에서도 싹을 내밀고 참고 버티며 생명을 이어가라. 참고 버티며 대(代)를 이어가는 야성의 야생초처럼 참고 버티며 강해지자.

생존.

야생초는 억세다. 쇠비름은 밟힐수록 뿌리를 뻗고, 야생 약초는 초식동물의 먹이가 되지만 비명을 지르지 않으며, 억센 야생초는 청정(淸淨)기보다 맑은 산소를 생산한다. 질경이는 바퀴에 밟혀도 살아남는 지독함이 있고, 민들레 홀씨는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다. 엉겅퀴는 억센 힘으로 아스팔트도 뚫고 나오며, 약쑥은 몸뚱이에 약(藥)기운을 끌어 모았다가 인간에게 선물한다. 까맣게 불탄 자리에 먼저 일어서는 잡초는 선구자 같고, 소리 없이 새싹을 틔우고 늦가을 찬 서리에 몸을 접는 들국화는 적지(敵地)에 먼저 들어가고 마지막에 탈출하는 특전용사 같고, 마디마디 떨어졌다가 다시 사는 쇠뜨기는 큰 지혜와 사랑을 남기고 홀연히 떠난 성자 같다. 야생초여! 낮고 거친 삶일지라도 주저하지 말고 생명으로 생명을 이어가라. 화려함에 기죽지 않고 약한 생명체를 도우며 사는 야생초처럼 착한 서민들의 영웅이 되소서!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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