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들이고 부모 호강시키는 비결

입력 2017-01-20 13:23 수정 2017-01-24 09:11
▷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은지 벌써 보름이나 훌쩍 지났다.오래전 김밥 할머니가 기부한 50억 재산을 가지고 신축한 모 대학 공연장에서 명품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를 공연한다고 해서 나이 70세를 한참 넘긴 꽃노년 이모들을 데리고 함께 나섰다.이 악극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비극적인 가족사를 그려낸 작품이다. 애오라지 자식만 바라보고 살아온 어머니와 아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효(孝)’라는 공감대를 통해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 아들은 어머니가 떠난 후에야 비로소 그 사랑의 깊이를 깨닫고 통한(痛恨)의 눈물을 흘린다.하지만 이 세상 어디에도 어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 회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깊은 울림을 전한다.국민 엄마 고두심과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 내공 깊은 베테랑 배우 김영옥이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 분이 역을 맡으면서 악극의 중심을 이끈다.한편, 자신의 출세를 향해 달리지만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아들 역할에는 배우 이종원과 안재모가 새롭게 호흡을 맞췄다.이외에도 뛰어난 연기로 스크린과 안방극장에서 활약중인 이유리를 비롯해 이연두,정운택,이종박 등이 극적인 인물로 등장해 악극을 풍요롭게 만든다.특히 시종일관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변사(辯士) 역할은 명품 개그맨 이홍렬이 등장한 것도 이 악극이 압권이었다.두 시간 동안 진행된 내용을 짧게나마 전달하자면 대충 이랬다.

 

외아들 진호는 사라호 태풍으로 아버지를 잃고 홀로 자신을 키운 어머니를 위해서 자신이 잘 살면 그것이야말로 효도인 줄로 알고 살았다.결국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을 졸업한뒤 대기업 회장의 딸과 결혼해서 어머니께 용돈을 꼬박꼬박 보냈다.그러던 어느 날 열차 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고 무려 10년 동안 제사를 모셨다.어느 날 산소에 찾아간 진호는 과거 고향 약봉마을에서 미래를 약속했던 옥자를 우연히 만나서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 있었음을 알게 됐다.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집 앞에서 마주치던 노파가 자신의 어머니였으나 끝내 알아보지 못했다.이제 그 노인은 한 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다.대성통곡을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한들 이미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난 후였다.과거 우리의 어머니들은 그랬다.살찐 고기 먼저 골라 자식 입에 넣고 정작 본인은 생선 대가리만 먹었다.수 많은 자식들은 어머니가 워낙 생선 대가리를 좋아하는 줄만 알았던 것이다.이번 악극은 한국전쟁 이후의 어려운 생활 속에서 자식들을 키웠던 이 시대의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사모곡이라고 볼 수 있다.

 

변사의 한(恨)스럽고 감칠 맛 나는 해설이 공연장을 찾은 많은 부모들에게 숙연하게 만들었다.옆 좌석에서 연신 눈물을 흘리던 큰이모의 표정은 더욱 심각했다.남편과 사별하고 혼자된 지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큰 아들과의 관계가 아직도 원만하지 않다.10년 전 치매 환자인 남편 병치레 때문에 한때 자식들과 불편했던 시절이 있었다.큰아들 며느리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시댁에서 가급적 먼 곳으로 이사 갈려고 짐을 싸기도 했다.그러자 큰이모는 별별 궁리 끝에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32평 아파트를 가지고 거래를 시도했다.남편이 생존하는 동안만이라도 부양하면 사후(死後)에 달랑 남은 집을 물려 주겠다는 조건이었다.하지만 큰아들 내외는 처음엔 잘하는 듯 싶었지만 끝내 집도, 돈도 싫다면서 제주도로 영영 이사를 가버렸다.하는 수 없이 큰이모는 혼자서 치매 환자를 감당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그 사건이 일어난 후 장남과의 관계는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소원해지고 말았다.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공연을 보고 있는 내내 예전 감정이 복받쳤는지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냈다.

 

▷ 중국 서진에 재상을 지낸 치공이라는 인물이 살았다.그는 엄청난 재물을 모았으나 이웃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에게도 거의 쓸 줄 모르는 엄청난 구두쇠였다.그런데 특이하게도 그의 손자 치가빈은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다.평소에 효심(孝心)이 대단했을 뿐만 아니라 도량이 컸으며 생각마저 자유롭고 넉넉한 사내였다.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문안 인사를 올리고 나자 할아버지 치공이 손자에게 이렇게 물었다.“너는 대체 돈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냐”라는 질문에 치가빈은 “돈이란 것은 귀한 것도 되고 동시에 천한 것도 되지요.그래서 천한 것은 쌓이면 귀하게 되지만 귀한 것을 오랫동안 쌓아두면 천하게 되는 법이지요”라고 대답을 했다.그러자 할아버지는“너의 말대로라면 재물이 천하다고 한다면 너는 이 천한 것 때문에 호의호식을 누리고 있지 않느냐”라고 되묻자 손자는“옳으신 말씀입니다.저는 천한 돈으로 귀한 삶을 누리고 있지요.그러나 돈은 물처럼 위에서 아래로 흘러야 하는 법인데 집안에 가둬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어차피 사람이 죽으면 재물 역시 가져갈 수도 없으니 마땅히 어려운 이웃과 친척은 물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마땅할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치공은 “네가 하루에 얼마나 쓸 수 있느냐“라고 묻자 치가빈이 대답하길 ”그것은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할아버지 치공은 창고를 열고 나서 오늘 하룻동안 마음대로 써보라며 돈을 건넸다.그러자 처가빈은 치공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하루에 그 엄청난 재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모조리 나눠줬다.엄청난 재물이 순식간에 없어지자 할아버지 치공은 놀라서 기절하고 말았다.제아무리 돈을 많이 써봤자 기껏해봐야 조금 쓰고 말 것이라는 당초 기대를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재물에 대해 이미 초월한 효자 처가빈은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후대까지 대학자이자 정치가로 역사에 그 이름이 전해 내려져 오고 있다.

 

▷ 누구나 탐내는 재산을 증식하기 위해서는 결국 종자돈부터 출발해야 한다.진정한 부자는 치공처럼 돈을 잘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치가빈처럼 돈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하물며 부모를 잘 부양하면 많은 재산을 물려 주겠다고 하는데도 이마저 거부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이 들린다.최근 대법원이 ‘효도 계약서’를 근거로 “불효를 저지른 자식에게 사전에 부모에게 물려 받은 2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다시 돌려줘라”는 판결이 내려져 눈길을 끌었다.나 같은 흙수저들에겐 다소 생소하게 들린다.‘효도 계약서’라고 하면 자녀에게 부모 재산을 증여할 때 효도할 것을 담보로 서명한 계약을 말한다.왜 이렇게 계약서까지 작성해야 하는지 따져 물을 수도 있다.‘효도 계약서’에 기록된 조항을 촘촘히 살펴보면 한 달에 한 두 번 정기적인 방문은 물론 병원비와 급할 때 생활비를 지급해 달라는 요구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자 화가 난 부모들도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다.상가등 수익형 부동산을 자녀에게 미리 주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임대료는 모두 되돌려 달라고 주문했다.이유인즉 자식에게 미리 재산을 증여한뒤 매달 나오는 임대료로 본인들의 생활비로 활용하겠다는 계산이다.심지어 자식 뿐만 아니라 사위나 며느리에게도 효도를 조건으로 재산을 주는 경우도 많다.이 방법은 절세차원에서 흔히 사용되곤 한다.즉, 증여를 받는 사람이 증가할수록 증여세를 줄일 수 있는 확률이 커지기 때문이다.자식에게 증여한 경우 증여후 10년이 경과할 때까지는 생존해 있어야 상속세를 줄일 수 있다.특히 사위나 며느리에게 증여한 경우에는 증여후 5년만 지나도 세금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좀전에도 말했지만 효도하는데 계약서까지 작성해야 하는 따가운 눈총 역시 눈에 거슬리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이왕 쓸 ‘효도 계약서’라면 조항을 꼼꼼히 적어 가족간의 재산 분쟁을 사전에 방지하는데 이만한 것도 없다.만약에 ‘효도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부모가 효도의 조건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왠지 불편할 것 같다.오히려 자식이 먼저 제안해 서로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계약서가 훨씬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오죽했으면 ‘효도 계약서’에 담긴 부모의 가장 큰 소원이 자녀의 방문이라고 했을까.늙은 부모에게 불효하는 몹쓸 자식도 어린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라고 본다.옛말에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고들 하는데 과연 나는 어떨까 생각해 본다.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부모가 잘난 우리 자식 얼굴 보여주면 덤으로 재산을 주겠다는 오늘의 현실이 왠지 서글프고 씁쓸할 뿐이다.불효자 이종원이 뒤늦게 부모 산소 앞에서 목청 높여 제아무리 울어봤자 이미 흘러간 시간들은 돌이킬 수 없는데 이를 어찌하란 말인가.

 
윤국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키움에셋플래너 경제교육 본부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 대전참여연대 집행위원
•법무보호복지공단 사회성향상 교육위원
•대전시 시민행복위원회 위원
•ING life 부지점장 / Allianz Life 지점장 / TNV advisor 본부장
•대전대학교 경제전문가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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