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 기적 이룬 `거목`의 신화

입력 2011-06-07 09:00 수정 2011-06-07 09:00
이 땅에 태어나서 | 정주영| 솔 
 

모든 세대는 다 초조하다지만 40대는 특히 더하다. 윗세대가 보기엔 한창 좋을 때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가슴이 바짝바짝 탄다. 더 이상 젊지 않은데 이뤄놓은 건 없고 기회는 자꾸 줄어든다 싶은 탓이다. 20대가 알 길 없는 미래로 인해 안타깝고 불안하다면 40대는 너무 뻔해 보이는 내일 때문에 답답하고 서글프다.

고(故)정주영(1915~2001) 현대그룹 창업주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솔,1998)는 가진 거라곤 열정뿐인 젊은층과 나이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 모두에게 '뭐든 할 수 있다'는 힘과 용기를 심는다. '나의 살아온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책은 한국은 물론 세계 경제사에 길이 남을 거목의 개인사와 한국의 산업발전사를 함께 보여준다.

고인은 1915년 11월25일 강원도 통천에서 6남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3년 동안 서당에서 한문을 익히고 소학교에 들어갔다. 전교 2등으로 졸업했는데 붓글씨 쓰기와 창가를 못해 그렇지 학과 공부는 1학년에서 3학년으로 월반할 만큼 잘했다. 상급학교에 진학해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가난했던 집안 형편상 꿈은 한낱 꿈으로 끝났다.

아무리 해도 가난을 못 면할 것 같은 농사일에서 벗어나려 가출했다 잡혀오기를 세 번,열아홉 살 때 다시 떠났다. 막노동을 하다 복흥상회란 쌀가게에 취직했는데 자전거를 탈 줄 몰라 혼쭐이 났다. 자전거를 못탄다는 말을 못해 비 오는 날 자전거에 쌀가마니를 비끄러맨 채 끌고 나섰다 그만 길에서 나동그라진 것.

그날 밤 선배 배달꾼에게 자전거 쌀 배달의 기술과 요령을 배워 내리 사흘 동안 거의 밤잠을 안 자고 배달 연습을 했다는 그는 이후 평생을 그때 쌀 배달 연습하듯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 만큼 혹은 이 정도나 요 정도가 아니라 더 이상 더할 게 없는,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다하는 최선을 신조로 삼았다'는 고백이다.

그렇게 일한 결과 2년 만에 주인으로부터 가게를 물려받았으나 중 · 일전쟁 발발로 문을 닫았다. 40년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열었지만 잔금 치른 지 닷새 만에 불이 났다. 사람들이 말하듯 운이 좋기만 했던 건 아니란 얘기다. 그는 그러나 오뚝이처럼 일어나 1946년 봄 현대자동차공업사 간판을 걸었다.

허허벌판 백사장 사진과 거북선 그림이 든 500원짜리만으로 조선소 건립 차관과 유조선 주문을 따낸 게 55세,새벽에 현장을 돌다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하면서 현대조선을 완공한 게 59세였고,세계 최대인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항만 공사를 수주한 게 61세,서산만 방조제 연결을 끝낸 게 67세,소 몰고 이북으로 향한 게 73세 때였다. '인간의 정신력이란 계량할 수 없는 무한한 힘을 가진 것이며 모든 일의 성패,국가의 흥망은 그 집단을 이루는 사람들의 정신력에 의해 좌우된다. ' 현대조선 완공 뒤의 소감이다.

행복의 조건으로 건강과 담백하고 순수한 삶, 강하고 굳은 뜻 외에 향상을 위한 공부와 책읽기를 꼽은 그는 후기에 이렇게 적었다. '일꾼으로서 지금의 나는 아직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에는 늙음이 없다. 최상의 노동자에겐 새로운 일감과 순수한 정열이 있을 뿐이다. '그의 나이 만 82세 때였다.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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