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 마음을 달래는 문장들

입력 2011-05-31 09:00 수정 2011-05-31 09:00
축복 | 장영희 지음 | 비채
 

책은 힘이 세다. 책엔 실로 다양한 기능이 있다.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하면 흥미를 유발하고 재미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 어디 그뿐이랴.공감과 감동으로 남루한 삶에 지쳐 쓰러지려는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시커멓게 된 가슴속 상처도 치유한다.

《축복》(비채,2006)은 여러 요소를 지녔으되 후자 쪽 비중이 다소 큰 책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영문학자 장영희씨(1952~2009)가 암 투병 중 일간지에 '영미시 산책'이란 제목으로 연재했던 것을 모아 펴낸 시선집(詩選集)으로 어디를 펼쳐도 사랑과 희망,위안의 메시지가 그득하다.

저자가 골라낸 50편의 시는 물론 간단하게 곁들인 해설 역시 읽을 때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기운을 북돋운다. 기대했던 일 비껴간 통에 스스로가 마냥 초라해질 때,'여기가 끝인가 더 이상 길은 없는 건가' 싶을 때 저자의 글들은 '그래,살아봐야지'라는 용기와 의욕을 불어넣는다. 이 책이 지닌 힘은 저자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영문학자 장왕록 선생(1924~94)의 1남5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한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렸다. 부모님의 보살핌은 극진했지만 세상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가 유일하게 잘할 수 있던 공부의 기회마저 원천봉쇄하려 들 만큼 냉혹했다.

'중학교에 가야 하는데 내 신체 장애를 이유로 어디서도 입학시험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 학교 저 학교 찾아다니며 제발 입학시험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애원하셨다. 결국 체력장을 면제해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서울사대 부속중학교에서 입시를 치를 수 있었다. '(《공부의 즐거움》,위즈덤하우스)

상황은 이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는 울며 주저앉는 대신 세상과 싸워 이기는 쪽을 택했다. 지독히 공부한 결과 그는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서강대) 교수가 됐다. 오랜 노력에 대해 보상받은 듯하던 것도 잠시,다시 병마가 덮쳤다.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할 법도 하건만 그는 병을 통해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배운다며 글쓰기와 강의를 멈추지 않았다.

폭넓은 지식과 섬세한 필치의 저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2005)로 '문학 전도사'란 별칭을 얻었던 그가 펴낸 것인 만큼 작품은 물론 해설도 난해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50편 모두 그저 살아 있음의 소중함과 기쁨을 느끼고 기운을 내라,무엇보다 희망을 잃지 말라고 역설한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금이라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은 아니다/헤매는 자 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과 롱펠로의 '인생찬가'(무덤이 삶의 목적지는 아니지 않은가/행동하라)가 처진 어깨를 펴게 한다면 도로시 파커의 '다시 시작하라'(면도칼은 아프고/강물은 축축하다/산은 얼룩을 남기고 약은 경련을 일으킨다/차라리 사는 게 낫다)는 슬그머니 웃게 만든다.

원통해서 참기 힘들 땐 키플링의'만약에'(누군가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의 시간을/60초 만큼의 장거리 달리기로 채울 수 있다면/이 세상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게 다 네 것이다)를 읽으면 된다. 용서야말로 최고의 복수라는 걸 일깨우니까.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259명 36%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455명 64%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