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만큼’의 돈만 번다면

입력 2016-10-25 09:48 수정 2016-10-25 09:48
▷ 오늘은 소꼽친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스마트 폰으로 통화할 때면 만나서 소주 한잔 하자는 소리를 달고 다녔던 그 녀석에게 일이 생겼다.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두려웠을까.아니면 연말이 다가오자 밀린 숙제를 풀어볼 셈인양 전화벨이 울렸다.참으로 오랜만이었다.비록 작은 체구지만 맵집 하나는 끝내주는 동네축구 스타였다.오랜만에 등장한 겉모습은 상당히 초췌했고 그날만큼은 무척 겸손했다.연거푸 소줏잔을 기울다보니 그동안의 뼈아픈 시간들이 술술 터져 나왔다.알고 보니 거래처에서 무려 10억원 상당의 부도를 맞아 휘청거렸다고 한다.한동안 절망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수습하느라 정신 없었다고 털어 놓는다.사실 부도액도 컸지만 문제는 그 거래처가 전체 매출에서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에 친구 사업이 순식간에 위협을 받을 지경이었다.예전 같으면 술병을 부여잡고 비틀거렸지만 이번만은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며 단호히 말할땐 비장함까지 느껴졌다.간신히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까 연락이 늦어져서 미안하단다.어릴적 친구로써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미안감에 밤늦게까지 술잔을 비워야만 했다.

 

눈에 보이는 사물들이 흐물흐물 흔들리고 실내 밤 공기가 제법 따뜻해질 무렵 자신없는 목소리로 나즈막히 건넨다.“친구야,10억이면 수년간 사업해서 겨우 모아 놓은 돈으론 턱없이 부족한데 앞으로가 걱정이네.그렇다고 사업를 안할 수도 없고.나름대로 확인을 했는데도 이 모양이니 참으로 힘들구나.갈수록 경쟁업체의 저가 수주가 심한 탓에 적정마진이 줄어들고 있는데.쯔즛...” 어지간한 주량으론 흔들리는 친구가 아닌데 이날만큼은 심하게 비틀거렸다.안타깝게도 최근에 작은 공장 부지를 매입해 놓고 잔금만 남은 시점에서 부도까지 맞아 결국 눈물을 머금고 그 땅을 처분해야만 했다.한줄기 좋은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얼마 전에 전세를 전전하다 이사 다니기가 너무 힘들어 아예 그 돈으로 작은 평수 아파트를 계약했는데 기적이 일어나고 말았다.갑자기 메이저 유통업체의 입점이 확정됐다는 소식에 수 천만원 이상 가격이 껑충 뛴 것은 물론이고 팔려고 내놨던 인근 물건들 마저 감취를 감췄다.이 대목에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표현이 과연 적절한지 모르겠다.

 

▷ 나와 부도난 친구도 안면이 있는 A사무장이 있다.그는 워낙 성실하지만 돈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세무법인에서 일하는 사무장이다.길거리에 외제 차량이 워낙 흔한 시대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4차 혁명이 일어나는 이 첨단시대에 왠 낡은 자전거로 출퇴근한다고 하면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그렇다고 집과 직장이 가까운 거리도 아니다.남들의 화려한 말들을 그저 경청할 뿐 본인 삶의 방식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다.요즘도 매일 아침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해 사무실서 해결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습관이다.담배는 아예 입에 대지 않고 회식때 술잔만 들었다 놨다 시늉만 한다.부인도 작은 회사에서 회계업무를 보며 사는 평범한 맞벌이 부부다.주변에선 왜 저렇게 심심하게 인생을 살까 손가락질 당하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럭저럭 재미없이 직장과 집만을 알고 지내던 그에게 일대사건이 터진 것은 수 년전 쯤이다.도시 외곽에서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땅에서 과수원 농사를 졌던 늙은 부모에게서 호출이 왔던 모양이다.사연을 알고 보니까 당초 생각보다 많은 땅이 택지개발 지구에 수용됐다는 사실이었다.그러니까 그때가 50억대 자산가로 변모하는 화려한 순간이었다.평소 생각이 먹거리 끊기지 않으면서 자녀들을 공업계 고등학교까지 공부시킨뒤 비바람 막을 내 집만 마련할 수 있다면 세상 부러울 것 없다는 그런 소신의 사무장이었다.그런데 하룻밤 자고나니 엄청난 부자가 되고 말았다.직장을 비롯한 주변에서도 부러움 반 걱정 반이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얼마 못가서 알게 되었다.지금도 변색된 노란 도시락통이 점심시간엔 여지없이 펼쳐졌고 낡은 자전거 역시 지하 주차장 구석에 예전처럼 변함없이 세워져 있다.그는 말한다.“돈이요? 어떻게 하라구요.내 돈도 아니지만 이 엄청난 돈으로 무슨 사업하면 좋을까요? 추천해 주면 생각해 보죠.사실 나는 상고를 졸업한뒤 회계 일 말고는 아는 것이 없어요.어떻게 운좋게 좋은 부모 만나서 돈이 생겼지만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데 오히려 주변에선 걱정을 많이 하네요.내가 번 돈도 아니고 부모 역시 조상님한테 물려 받은 것인데요 뭐.그래서 시간을 많이 갖고 천천히 생각해 볼려구요.조만간 좋은 계획이 생기겠죠.그때까지 놀 수는 없으니까 아무래도 제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그의 평범하기 짝이 없는 솔직한 대답이 나의 뒤통수를 때렸다.만약에 나의 경우라면 A사무장처럼 이토록 초연한 말을 건넬 수 있었을까.

 

▷ 대한민국에서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과연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과거엔 열정과 패기,자신감 같은 그런 무형의 가치만 있다면 왠만한 걸림돌은 문제가 되질 않았다.아니,문제가 제아무리 어렵다 한들 도전해서 해결하면 된다는 정신만큼은 제대로 박혀 있었다.그런데 차츰 시간이 갈수록 이런 도전정신이 희박해지고 왠지 걱정만 앞선다.왜 그렇게 부정적인 시각만 쌓여갈까.툭하면 터지는 노조파업에다 되풀이되는 대기업 대형 비리는 물론이고 하청업체 죽이기 횡포는 날로 심각해진다.거기에다 잘못된 기형적인 교육으로 인해 계층간의 사다리는 점점 끊어져 소득 격차가 커져만 가고 있다.그뿐인가.부모의 자산(資産)이전에 이어 요즘엔 전문직 같은 직업의 대물림까지 이어져 비빌 언덕마저 사라진 황량한 세상이다.

 

신통치 않는 수출소식에 이젠 만성이 됐다.저출산 때문에 돈버는 인구가 갈수록 줄어든 내수 상황도 역시 비상사태다.몇년 전에 일어난 세월호 사태를 비롯해 메르쓰 사태까지 대한민국의 자영업 시장은 실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최근엔 김영란법 시행탓에 또 한차례 내수시장이 꽁꽁 얼어 붙었다.영세 규모의 작은 식당 사장들의 실력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어떻게든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가 되는 그런 세상이 됐다.그렇다면 오늘날 가계사정은 어떤가.1%대 이자와 쥐꼬리만한 봉급인상에 자산을 불릴려고 각종 세미나에 참석해 보지만 이 역시 유쾌하지 않다.자신의 분수에서 벗어나 돈에 눈멀어 그나마 가지고 있는 원금마저 잃는다면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계속되는 저성장 시대에는 작은 자산이라도 기대 수익률을 낮추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A사무장처럼 아예 눈높이를 낮추고 자신의 본업에 충실하다 보면 쨍하고 해뜰 날도 올 수도 있는 법이다.물론 자신에게 돈 복이 있다면 말이다.

 

▷ 그래도 돈이 있어야 청빈함을 실천할 수 있다.비싼 외제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을 비롯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환자나 오토바이로 치킨을 배달하는 사람 모두 건강한 법이다.물론 돈을 쓰는 방법과 돈을 버는 방법에 원칙이 있지만 말이다.귀가 따갑게 듣는 말이라 거슬리겠지만,돈에 얽매이지 말고 돈을 지배하며 주인처럼 살아야 한다.빚을 무서워하고 삼시 세끼만 먹을 수 있다면 바로 저축통장을 만들어야 한다.신문 방송매체에서 퇴직후 필요한 은퇴 생활비로 10억이다 20억이다 떠들곤 하지만 더욱 허망하기만 할 뿐이다.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은 삶을 산다면 결국 돈에 지배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어차피 본인 의지대로 사업이 생각만큼 안될 거라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뻔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정직과 신용은 돈이 될 수도 있다.예전에 설렁탕 집의 고기에 좋지 않은 품질의 뼈가 사용된다는 방송보도가 있던 시점인 걸로 기억된다.그러자 ‘오늘은 재료가 나빠 장사를 못해 죄송하다’는 휴업 안내판을 붙였다는 음식점은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만약에 내게 부(富)를 가져다 준다면 감사하면서 부자로 살고 싶다.지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때 단란했던 많은 가정이 해체된 것도 사실 알고보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대부분 사람들이 돈,돈,돈에만 의존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결국 돈 말고 진정으로 가치 있고 의미있는 가치를 두눈 부릅뜨고 찾아야 한다.삶의 진정한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다.불나방 처럼 ‘필요한 이상’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는 법이다.누구나 필요한 만큼은 가질 수 있다고 본다.부자가 되기를 소망하고 사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나의 분수(分數)만 알 수 있다면 가난하게 사는 것보다 부유하게 사는 것이 훨씬 낫다.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호락호락 부자 되기가 쉽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윤국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키움에셋플래너 경제교육 본부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 대전참여연대 집행위원
•법무보호복지공단 사회성향상 교육위원
•대전시 시민행복위원회 위원
•ING life 부지점장 / Allianz Life 지점장 / TNV advisor 본부장
•대전대학교 경제전문가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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