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 역사상 최고의 감동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입력 2016-10-21 10:00 수정 2016-10-24 09:27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미국 시민들에게 요구했던 ‘대담하게 뛰어들기’의 순간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2010년 6월 TEDx휴스턴이라는 행사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길 원하느냐고 묻는 나에게 TEDx 기획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선생님의 연구가 좋습니다. 그러니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주특기를 보여주시면 됩니다. 선생님과 행사를 함께하게 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나에게 주특기를 보여달라고 요청할 생각을 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그 강연 전까지만 해도 내게 주특기가 있다는 생각조차 못해봤다. 나는 그 행사의 자유로움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내 마음 속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불편에 뛰어들어 적응할 것인가, 아니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 속으로 도피해서 예측과 통제가 가능한 생활을 추구할 것인가? 결국 한번 해보기로 나는 마음먹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뭘 하려는 건지 나도 잘 몰랐다. 스스로 좋은 학자라는 자부심은 있었다. 내가 통계에서 이끌어낸 결론이 유효하고 타당하다는 믿음도 있었다. 취약성은 내가 원하는 곳 또는 가야 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줄 것 같았다. 나는 나 자신을 설득했다.

‘별일 아냐. 장소가 휴스턴이잖아. 고향 사람들이 모이는 거야. 최악의 경우 500명쯤 되는 청중이랑 생중계로 시청하는 몇몇 사람이 나를 보면서 어리석다고 비웃겠지, 뭐.’

강연을 하고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생 경험한 것 중 가장 고약한 숙취 같은 취약성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나를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할 텐데, 아, 정말 싫다!’

나는 강연을 하면서 중요한 사항 두 가지를 빼먹었다. 게다가 ‘신경쇠약’이라는 단어를 슬라이드로 보여주면서 절대로 남에게 하지 말았어야 할 이야기까지 늘어놓았다.

‘헉. 아무래도 이 동네를 떠나야겠다.’

하지만 도망갈 곳은 없었다. 그 강연을 하고 나서 6개월이 지났을 때 TEDx휴스턴의 기획자가 내 강연이 TED 홈페이지의 첫 화면에 올라갈 예정이라면서 축하한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좋은 일이었다. 사실 그건 내가 바라던 영광이었다.

그런데도 겁이 덜컥 났다. 첫째, 나는 ‘기껏해야’ 500명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 거라고 예상했다. 둘째, 뭐든지 비판하고 조롱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나는 전면에 나서본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레이더 바로 밑에서 조용히 날아가며 안전함을 느끼던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참 역설적인 일이다. 취약성을 끌어안고 자신을 당당하게 내보이라는 내용으로 강연을 했는데, 막상 그 강연이 동영상으로 공개되자 나 자신이 취약해진 상태로 사람들에게 노출된 기분이 들어서 마음이 불편하다니.

그날의 강연은 현재 TED의 메인 홈페이지 TED.com에서 52개 언어로 시청이 가능하며 조회수 2500만을 넘어섰다. 나는 그 영상을 다시 본 적이 없다. 그런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면 기쁘지만 아직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도서 '마음가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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