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입력 2016-10-18 09:27 수정 2016-10-18 09:27
# 사람은 누구나 만남과 헤어짐을 거치며 성장한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련한 추억과 상처가 스며들며 시간이 걸린다.만약 타임머신이라는 기계를 타고 과거로 돌아가 시행착오를 미리 경험해 본다면 사람과의 관계는 훨씬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그렇게 변모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늘 아쉬움이 남는 법이다.예전 직장 동료를 만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였다.금요일 늦은 시각 대학가의 한 커피숍이었다.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툭 치길래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50대 중반의 왠 낯선 사내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아는 척 하며 반긴다.참으로 오랜만이었다.도대체 먹고 사는 것이 뭐길래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연락이 끊어진지 꽤 흘렀다.그는 회사내 알아주는 ‘마당발’이어서 퇴직한 동료들의 동정에 대해 줄줄 궤고 있었다.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설렘은 그렇게 오래 가질 못했다.

 

한국의 베이비 부머들이 대게 그렇듯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뿐이었다.슈퍼를 하다가 망한 동료 이야기를 비롯해 부인이 동네 작은 커피숍을 운영하고 정작 본인은 ‘자연인’으로 돌아간 사연과 유명 브랜드 아웃도어 점포를 엄청나게 손해보고 처분한뒤 노동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는 근황이며 지인들과 네트워크 사업을 하다가 힘들어진 얘기 등등 듣고 있노라니 결코 신통치가 않았다.그렇다고 화려했던 시절마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어쩌면 슬픈 대화를 나누면서 과거를 함께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한국경제가 IMF를 겪고 난뒤 수 년동안 침체가 계속됐다.연봉 3000만원을 받던 월급쟁이들이 바짝 움츠리고 있을 때 우리는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월말이면 ‘화려한 잔치’를 벌였다.

 

그 배경에는 ‘성과급’이라는 기가 막힌 보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당시에는 금융상품 ‘실적’이라는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 영혼없는 판매에 취해 있었다.그 댓가는 당초 예상했던 성과금액보다 훨씬 컸고 달콤했다.목적없는 현금유입으로 주머니를 채워 나갔지만 호시절은 잠깐이었다.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부동산과 주식 자산가격 거품이 꺼지고 말았다.모든 것이 허망했고 비참해졌다.특히 금융 세일즈맨들의 부작용이 매우 심각했다.신용 불량자로 전락하는 것도 모자라 부도와 파산,그리고 가정해체까지 이어졌다.결국 남부럽지 않았던 직장에서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이들이 많아졌고 끝내 뒤돌아 보질 못했다.그렇게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 최근에 미국의 부자 워렌버핏이 대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지분 10%를 보유한 웰스파고 은행 이사회를 열더니 최고 경영자의 권한을 축소하고 임원진을 대폭 물갈이 했다.결국 CEO는 사실상 종신직이던 권좌에서 물러났다.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을까.유령계좌를 개설한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이다.고객의 사전 허락없이 은행계좌와 신용카드 200만개를 몰래 개설했다.그런 탓에 한국 돈으로 무려 2100억원 상당의 벌금을 내야만 하는 처지에 몰렸다.웰스파고는 지난 2008년 서브 프라임 금융위기에서 벗어날 만큼 충성스런 고객층이 두터웠다. 시가총액 1위까지 오른 미국 3위 은행이었기 때문에 충격은 더더욱 컸다.

 

이렇게 곪아터진 배경에는 무리한 ‘실적’ 지상주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하루에 1인당 금융상품을 4건씩 판매실적이 할당됐다는 공격적인 목표가 문제였다.그렇다고 이 사태가 느닷없이 터진 것은 아니었다.그 전부터 수 차례 신호가 있었으나 직원들의 솔직한 의견을 묵살한 채 오히려 해고하고 말았다.한마디로 말하자면, 웰스파고의 유령계좌 쇼크 뒤에는 ‘성과주의’라는 독(毒)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었다.결국 그것이 화근이었다.

 

얼마 전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회식에서 과음한 다음날 숨진 은행원에게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A씨는 B은행에 입사한 후 높은 실적으로 동기들이나 나이에 비해 승진이 빨랐다.낮은 실적에 허덕이던 지점 금융센터장으로 발령받아 종합 업적평가에서 매달 1등으로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했다.하지만 연말 지점 최종평가에서 2등으로 밀려 나면서부터 A씨는 물론 소속 직원들 대부분이 승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결국 A씨는 회식자리에서 평소 주량 이상으로 과음했고 만취 상태로 집에 들어가 잠을 자던 A씨는 다음날 사망했다.

 

직접 원인은 급성 심근경색이었다.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의 빠른 승진 이면에는 지속적으로 업무 실적에 대한 심한 압박감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었다"며 "결국 원형 탈모증까지 생겼고 사망 무렵엔 업적평가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 심한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금융권 실적 압박과 관련한 사망소식이 비단 어디 이뿐이랴.

# 행동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성과급은 오히려 생산성을 하락 시킨다”고 말한다.그는 실험을 통해 “성과급을 준다고 해서 직원이 일을 더 잘하거나 또는 더 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여기에서 성과급은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결국 이런 전제는 직원들을 낮춰 본다는 것이다.따라서 성과급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일을 더 하면 돈을 더 준다는 성과급 시스템은 직원과 회사의 관계를 거래관계로 만들고 경쟁관계가 형성되는 부작용을 낫기도 한다.

 

그렇다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다른 사람의 가치를 존중해 주면 된다.동료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가치를 키우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을 공들여야만 한다.그리고 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지도 점검해 봐야 한다.당장 나보다 덜 누리며 사는 이웃을 비롯해 동료와 팀을 위해 도움을 주고 있는지도 살펴보자.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강점을 최대한 발휘해서 동료를 도와 보람을 느껴보는 일이다.인정과 칭찬 그리고 책임감, 동료애,주인의식,사명감 같은 그런 가치들이 소중하다.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이 아무리 바뻐도 시간을 내서 동료들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나서면 된다.그것만이 오늘날 성과주의에 빠진 동료들을 구출하고 나 역시 성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윤국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키움에셋플래너 경제교육 본부장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 대전참여연대 집행위원
•법무보호복지공단 사회성향상 교육위원
•대전시 시민행복위원회 위원
•ING life 부지점장 / Allianz Life 지점장 / TNV advisor 본부장
•대전대학교 경제전문가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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