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보는 관점: 객관과 주관 사이 그리고 상호주관성

입력 2013-08-29 22:00 수정 2013-08-29 15:18

  작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그 어느 시대에서보다 세대간, 집단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사회이지 않나 한다. 아마도 이것은 2000년대 이후, 정확히 말하면 2002년 월드컵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었던 경험 이후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현상인 것 같다. 그리고 자신과 대립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나 집단을 이제 적대시할 정도의 수준으로 온 것 같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라며 언어 전환을 통한 인식 변화의 모색은 이제 식상하게 들린지 오래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SNS의 확대, 빈부격차의 심화, 지식과 정보의 분권화 등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겠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인식론적 관점에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로 유명한 합리적 인식론의 아버지, 데카르트에 기반한 합리주의적 사고는 두가지 전제를 한다. 인간은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것, 그리고 모든 행위의 결과는 선형적인 인과관계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인식에 있어서 이러한 합리주의적 관점은 지식의 습득과 해석에 있어서 행동주의와 인지주의 모델을 낳았다. 즉, 우리가 안다는 사실(지식)은 개인 외부에 존재할 수 있는 객체이고, 사람들이 영양분으로서 음식을 전달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추구하는 지식은 객관적인 것이라고 절대적인 것이라는 관점을 유도한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는 옳고 그른 것, 맞고 틀린 것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 또는 지식이라는 것이 그렇게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지식은 벽돌처럼 '물리적으로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객체가 아닌 것일 수 있다. 지식은 존 듀이의 얘기처럼, 하나의 파이를 물리적으로 조각내서 나누어 공유하는 것처럼 나누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공동의 목표를 갖고 협동적 노력을 통하거나 변증법적으로 상호간 대화작용에서 서로 반대되는 관점에 의해 사회적으로 구축되는 것일 수 있다. 즉, 주관이 객관으로 전환되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 절대적으로 틀린 것이 있다고 전제하지 않는다.

  요즘 시대의 많은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집단이 추구하는 것은 객관적인 지식 또는 진실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나 집단의 생각은 주관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트위터를 중심으로 SNS에 의해 빠르게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여기서 집단 간 갈등은 심화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상식적인 수준에서 객관과 주관의 차이는 무엇일까? 학생들한테 물어보면 객관은 4지선다, 주관은 서술형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사실 시험에서 객관식 문제와 주관식 문제는 선다형 문제와 서술형 문제를 말하는 것인데, 즉, 답을 정확히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객관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주관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 또한 앞에서 얘기한 데카르트적 사고방식에 근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객관적 지식이나 진실이라는 것은 누구나가 옳다고 인정하는 지식이라는 얘기인데 그것은 진정으로 맞는 것일까? 어찌보면 지식은 맥락에 크게 의존적인 것일 수 있다. 여기서는 맞다고 인정되고,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다른 맥락에서는 맞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양자역학의 개념이 들어오면서 뉴턴의 역학은 미시세계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객관과 주관을 정확하게 구분하거나, 옳은 것과 그른 것을 의도적으로 구분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상황이나 사물들을 상대주의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의 채택이다.

  객관적 지식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는 공유된 지식만이 존재하는 것이고, 이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라는 용어로 표현된다. 즉, 상황에 대한 공유된 이해가 상호주관성이라는 것을 만드는 것이고, 이러한 상호주관성에 입각한 행위는 사적이고 개별적인 생각과 이해를 초월하여,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개인들은 어떤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 및 일차적 해석을 한다. 그리고 언어 등의 상징체계를 통한 협의 과정을 통해 상호주관성의 상태를 얻는다.  현상학적 철학자인 후설은 하나의 주관을 초월하여 다수의 주관에 공통적인 것을 나타내는 것을 상호주관성으로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상호주관성의 개념에 대한 해석이 약간씩은 다를 수 있지만 분명히 이러한 관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본다. 

  현재의 시대가 첨예한 갈등으로 대립된 사회가 된 것은 객관적인 지식, 절대적인 옳고 그름이 존재한다는 가정과 관점에서 촉발된 것일 수 있다. 즉, 조직 내에서 누가 옳다 그르다는 객관적인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서로 간의 상황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대화가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인식론적 관점은 상호주관성이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대화의 과정은 서로의 의견 차이만을 재확인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HRD담당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학습조직이든, CoP(community of practice,실천공동체)든 액션러닝 등의 활동들은 어떠한 완벽하고 절대적인 지식을 찾으려는 노력이 아니라 이러한 상호주관성을 확대하려는 노력으로 접근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재 HRD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며, 대학에서 심리학, 대학원에서 HRD를 전공하였으며, 쌍용그룹 중앙연수원, 쌍용정보통신㈜잠실교육센터장, 삼성SNS㈜ 인력개발파트장 등을 거쳐 현재는 HRD 전문컨설팅기관인 ㈜하나기업컨설팅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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