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면서 마음에 울림이 되고 진한 감동이 되는 이야기는 사람 이야기이다. 우리는 그것을 스토리라 한다. 사연이 있는 스토리는 듣거나 보거나 읽으면 눈시울을 붉히게 하고 “아, 참 좋구나” 하고 마음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게 한다. 그런 이야기 중 하나는 우정, 친구이야기이다. 좋은 친구 하나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인간은 불행하지를 않을 것이다. 우리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 줄만한 친구 하나를 두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본다.

갤럽이 전국 15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당신은 어려울 때 의존할 가족이나 친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그런데 27.6%는 없다 고 답했다. 즉,10명중 3명은 어려울 때 고립상태에 있다 는 것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최하위라는 최근 신문보도가 나왔다.

선비들의 글을 읽다가 좋은 친구, 우정을 나눈 이야기를 읽었다. 연암 박지원의 친구이야기이다. 박지원의 호는 연암이다. 연암이란 박지원이 연암협(황해도 금천에 위치)으로 들어가 살았을 때 지은 호이다. 박지원은 42세인 1778년 친구 사경 유언호의 충고를 따라, 당시 정계 실력자로 국정을 좌우하던 홍국영의 화를 피하여, 찾아간 곳이다. 연암협은 개성에서 30리 떨어진 곳이었다. 연암협에는 이웃집이라곤 가난한 숯쟁이의 집 서넛이 있는 궁색한 곳이었다. 그는 그 곳에서 9년간 자갈밭 몇 이랑과 초가삼간을 일구어 살았다.

 

그럴 때 친구 사경 유언호는 개성유수로 자청 부임해 와서, 먹고 살아가기가 궁색한 박지원을 ,개성 읍내로 나오게 해서, 금학동에다가 살만한 거처를 장만해 주었다.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해 주었다. 유언호가 연암에게 보낸 편지에“바야흐로 우리가 서로 마음이 합하였음에 가슴 떨리듯 통하였다가 스르르 격이 사라졌으니, 나는 알지 못하겠다. 누가 나(유언호)인지? 누가 미중(박지원)인지? 어디가 닭과 돼지가 뛰노는 연암 마을인지? 어디가 창이 늘어선 관사인지? 저 유수와 객이 거문고에 기댄 채 아무 말 없으니 어찌 신교가 아니겠는가?”『 나 홀로 즐기는 삶 』인용.

 

이렇게 사경 유언호는 개성유수로 있을 때 연암 박지원을 잘 돌보아 주었다. 그러다가 유언호는 개성유수를 그만두게 되자 연암 박지원을 연암협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였다. 이때 연암이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칙수전을 빌려 주기도 하였다. 후에 연암은 갚았다. 유언호의 친구 사랑은 한결 같았다.이뿐 아니라 유언호는 50세 연암을 천거해 첫 벼슬길(안의현감)에 오르게 한 사람이기도 하다. 유언호는 연암보다 먼저 죽었는데, 병중에 친한 벗 연암 박지원을 기다리다가 “벗을 만나보지 못하고 사별하니 한스럽구나”라고 애통 했다.

 

사경 유언호의 인간됨을 알게 하는 자료가 있다.“사경 유언호가 자기 집으로 나를 불렀다. 그는 당시 정승이 된지 이미 오래였건만 방안에는 바람을 막는 병풍 하나 없더구나. 흩 이불이라고 있는 건 해어졌고, 자리 곁에는 몇 권의 책이 있을 뿐이었다. 옛날 안성에서 포의로 지낼 때와 똑같더구나, 자주 술을 데워오게 했지만 다른 안주라곤 없고 손과 주인 앞에는 이가 빠지고 투박한 큰 사발에 가득 담은 만두 100여 개뿐이었다.날이 샐 무렵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백성을 이롭게 하고 나라의 폐단을 없애는 방안이었다”『나의 아버지 박지원』 인용.

부모와 친척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다. 그러나 친구는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외롭고 힘든 세상살이를 하는데, 연암 박지원에게 사경 유언호 같은 친구 하나 만들 수 있다면 아마 잘 산 인생일 것이다. “당신은 어려울 때 의지 할 친구가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있다 라고 말할수 있는 자가 많아야 건강한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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