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사업을 벌일 때의 주의점과 교훈

입력 2014-07-29 22:21 수정 2014-10-06 13:09
1927년은 찰스 린드버그가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해이다. 1923년에 레이먼드 오티그란 프랑스 출신으로 뉴욕에서 호텔로 성공한 사업가가 뉴욕에서 파리까지 혹은 그 반대로 논스톱 비행에 성공하는 이에게 25,000$의 상금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제안한 지 4년이 지나서야 찰스 린드버그가 그 주인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 시절에 대서양 횡단 운항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도전했던 찰스 러바인이란 사업가가 있었다. 그가 미국과 유럽 사이에 사람들을 수송하는 항공 운항 사업을 시작하겠다며 자기 돈 200만$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어떻게든 횡단하는 것에도 거액의 상금이 걸리던 시절이었다. 찰스 러바인은 구체적인 방법은 없이 발표만 덜컥 한 것이었다. 그런데 다르게 당시로서는 실질적으로 접근한 인물이 있었다.

 

캐나다 출신의 엔지니어인 에드워드 R. 암스트롱이란 이는 일련의 수상비행장을 중간기착지로 건설하여 대서양을 건너는 아이디어를 냈다. 560킬로미터 간격으로 총 8개의 비행장을 건설하자고 했단다. 강철 케이블로 해저에 고정시킨 수상비행장에는 식당, 선물가게, 라운지, 전망대와 호텔 등을 세운다고 했다. 수상비행장 하나당 건설 비용은 6백만$ 정도로 추산되었다. 뉴욕에서 런던까지 30시간에 갈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단다. 암스트롱은 1927년에 암스트롱 시드롬 개발회사를 설립하여 투자자를 모집했고, 마침내 1929년 10월 22일에 60일 이내에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 시가가 묘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 대공황이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그의 계획서는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몇년간 암스트롱은 더 노력을 했단다. 비행기 성능이 향상됨에 따라 수상비행장을 5개로 마지막에는 3개로 줄였단다. 비행기 기술의 발전은 암스트롱의 계획 변경을 앞질러 결국은 수상비행장 자체가 필요없게되었다.  그런데 암스트롱의 수상비행장 아이디어는 완전히 헛되지는 않아 현대의 해상 석유 굴착용 플랫폼의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암스트롱의 수상비행장을 이용한 대서양 항공운항 아이디어를 읽으며 든 몇 가지 의미.

시기, 곧 타이밍이 중요하다. 대공황의 시작을 알리는 증권시장 붕괴가 계획 발표시점과 맞으리라고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나 이도 단순히 불운으로만 돌리기 보다 그만큼 큰 눈으로 시대를 읽고 있어야 한다. 항공산업과만 관련있다고 거기만 봐서는 안 된다. 금융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연관된 산업과 시대의 트렌드를 읽어야 한다.

미래, 특히 신산업의 경우에는 기술이 어떻게 그리고 얼만큼 빠르게 진화할 것인지 보아야 한다. 비행기가 그렇게 빠르게 대형화하고 장거리 운송이 가능하게 발전할 것이라고는 암스트롱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기술 예측을 발못하여 신규 사업을 일으켜서 낭패를 보는 경우 많다. 시티폰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실패한 사업이라도 다른 쪽으로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수상비행장이 해상 플랜트로 진화할 수 있듯이 말이다. 쓰리엠의 포스트잇 같은 상품이 바로 실패한 데서 나온 성공작 아닌가? 페니실린도 어찌 보면 그런 사례의 일종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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