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과장님께

입력 2006-08-14 18:04 수정 2006-08-16 17:00


  

  여자 과장님께

 

  과장님,그거 아세요. 가끔 자리 비우면 부하직원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과장님 빼고 맥주라도 한잔 하러 가면 과장님이 특급안주가 된다는 것도.아마 아시겠죠. 여자들은 원래 과제지향적인 남자들과 달리 관계지향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평에 신경을 많이 쓰니 충분히 짐작하실 겁니다. 

 

  "누구든 자리에 없으면 씹히는 거지" 생각해도 기분이 좋진 않을 겁니다. 그래서 되도록 회식 자리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시겠지요.또 먼저 집에 가고 나면 다음날 아침  "어제 저녁 무슨 얘기들을 했을까" 궁금해지고 따라서 아무도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속으로 영 기분이 찜찜하시겠죠. 그러다 보면 별 일 아닌 것같고도 다소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을 거구요. 과음한 듯 잔뜩 찌푸린 얼굴로 앉아있다가 속풀이라도 하러 가는 듯 어디론가 사라지면 더더욱 괘씸할 겁니다.

 

 과장님,그래도 내색하지 말고 모른척 하세요. 일단 "누구누구씨,속이 안좋은가 보네.급한 일만 해놓고 사우나라도 다녀오지" 하세요. 과장님! 여자들의 사회 진출이 급증한다고 해도 평균 재직기간은 4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게 현실입니다.그런 속에서 과장이 되느라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겠어요.저녁 회식이 아무리 늦게 끝나도 새벽같이 나왔을 테고 맡은 일을 기한내에 하느라 밥 먹듯 하는 야근도 마다하지 않으셨겠지요.

 

 그러니 늦게 출근하고 칼퇴근하려 들고 행여 징검다리 휴일이라도 있으면 붙여서 놀고 싶어하고 일은 얼렁뚱땅 하는 부하직원을 보면 얼마나 울화통이 터지겠어요. 옷차림은 멋대로고 일은 언제든 두번 세번 다시 봐야 할 만큼 대강 하면서 잘해보라고 충고하면 잔소리로 알아듣는 사람들을 데리고 일하자니 정말이지 답답하시겠죠.

 

  과장님! 그래도 자신과 부하직원을 비교하지 마세요. "나는 이랬는데 너는" 식은 아무에게도 공감을 얻어낼 수 없습니다.사람이란 다 다르고,누구도 상대방의 입장은 이해하지 못하는데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니까요.

 과장님, 주변을 둘러보세요. 똑같은 상황에서 남자들은 웬만하면 눈 감고 넘어갑니다. 그리곤 조용히 불러서 "짜샤,그러지 말고 잘해"라고 하는 거지요.

 

  과장님! 여자 간부들은 본디 남자들보다 최소한 두 배는 열심히 일하고,아랫사람 평가에 있어서도 한결 공정합니다.그러고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건 딱 하나, "말" 때문입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해 일하는 만큼 대강 넘어가지 못하고 잘못하거나 못마땅한 건 짚고 넘어가려 하는 게 잔소리로 비쳐 점수를 잃고 그 결과 자칫 하면 '통솔력 부족'이란 평을 듣는 거지요.

 

  과장님! 아랫사람일 때는 여자도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일만 잘하면 되지요. 어떤 면에선 여성이어서 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여자 후배들이 선배의 입장을 몰라주는 것도 그래서지요.남자들은 대놓고 뭐라고 하지 않는데 실은 그게 더 무섭다는 걸 모르고 여자 선배의 꼼꼼함을 탓하는 거지요. 

 

  그러나 남자도 그렇지만 여자는 특히 간부로 승진하면 문제가 달라집니다.간부가 되면 일도 잘해야 하지만 주위를 살피고 정치력과 외교력을 발휘해야 합니다.처세라는 건 직급과 회사 분위기에 따라 다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신입사원에겐 신입사원의 처세가 있고 과장에겐 과장의 처세가 있는 겁니다. 

 

  과장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마음만큼 좇아야 주지 않는 부하직원 때문에 속 끓이지 마세요. 결코 소리 내서 야단치지 말고 내버려 뒀다 정 마음에 안들거든 조용히 방출하세요.괜시리 사람 만들어보겠다며 애정을 갖고 야단도 치고 잔소리도 해봤자 소리만 나게 되고 결과는 "리더십 부족"이라는 평으로 돌아오기 딱 좋거든요. 

 

  과장님! 여기는 한국입니다. 무조건 열정을 갖고 나아가라는 식의 미국식 자기계발서대로 했다간 사면초가에 빠질 수 있습니다.열정껏 최선을 다해 일하는 건 기본이고,판단해야 할 때 용기를 내야 하는 것도 기본이지만 회사 안에서 승부를 걸려면 정치외교력의 중요성을 절대 무시하지 마세요.

 

  윗사람에게 잘하는 건 물론이요 아랫사람을 잘 다스리세요. 아랫사람을 다스리는 일의 기본은 적당히 못본체, 모르는체 말을 줄이고,정히 안되겠다 싶을 땐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벌 주는 거에요.아주 아주 조용히 말이에요. 리더십은 헌신과 전문성에서 생기지만, 상대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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