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대립되는 이중성에서 나온다

입력 2013-03-02 07:36 수정 2013-03-02 07:36
교보문고의 '북모닝CEO'에 실은 박경철의 <문명의 배꼽, 그리스> 책에 대한 해설 겸 서평입니다. 실제 북모닝 CEO에 실리고, 배포된 부분은 약간 다릅니다. 그 원문입니다. 크게 고친 것은 없는데, 맨 앞 부분에 신문사 기자 얘기를 하는 게 꺼림칫할 수 있다 해서 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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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대립되는 이중성에서 나온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근래 처(妻)와 페이스북 친구가 된 일간지 문화부문을 담당하는 기자가 하나 있단다. 그 기자가 바로 이 책 <문명의 배꼽, 그리스>가 출간된 직후에 ‘한 번 여행 다녀온 것 가지고 쓰는 여행기’를 경멸한다며, 이 책도 역시 그런 부류라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단다. 처가 보기에는 기자가 책을 읽지도 않고, 자신의 선입견에 맞는 기사 하나 인용하며 폄하한 것 같아서 ‘친구 끊기’로 응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게 자신의 행동이 적절한 지 물었다.




기자가 쓴 대로 수준 이하의 여행기들이 넘쳐나고 있다. 뉴욕을 포함한 미국 동부여행기 비슷하게 쓴 한 친구는 우연한 기회에 만나서 직접 물어봤다. “솔직히 말해봐. 뉴욕 맨하탄에서 지하철 타본 적 없지? 할렘이라고 일컫는 곳을 자동차에 타고 지난 것 말고, 한 발짝이라도 걸어본 적 있어?” 예상했던 대로 그 친구는 출판사에서 뉴욕의 지하철과 할렘에 대한 부분이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다른 책보고 짜깁기해서 집어넣었다고 했다.




<그리스인 조르바> 작가인 카잔차키스의 역할




그런 종류의 책들과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저자는 이 책을 위하여 오랜 기간 준비를 했다. ‘이십대의 청년이 가슴에 새긴 꿈을 나이 오십을 앞두고 실현한 긴 여행의 기록’이란 저자의 말대로 30년을 두고 준비한 책이다. 그 시작은 저자가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던 의과대학생 시절의 단골 책방에서 만난 니코스 카잔차키스였다.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꼽히는 안소니 퀸이 춤추는 모습만이 새겨진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원작자로서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중국과 일본 여행기인 <천상의 두 나라>는 사실 니코스 카잔차키스보다는 1930년대라는 2차 세계대전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서양의 작가가 정치적 측면에서 국가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던 곳을 여행하였다는 사실 자체로 흥미가 일었다. 번역자인 소설가 정영문과의 개인적인 인연도 한몫했다. 그래서 내게는 소설가보다 여행기 작가로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먼저였다.




저자에 따르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크레타 섬에 있는 그의 기념관에 비치된 브로슈어 표지에서 그를 ‘위대한 여행자’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본인의 말과도 어울린다. 카잔차키스가 작가로서 한 여행의 시작은 바로 그리스였다. 터키령이었던 크레타 섬에서 태어난 그리스인으로서의 불안정한 정체성을 바로 잡는 여행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는 ‘크레타와 터키’라는 대립구조로 세상을 나눈다. 이 대립구조는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며 이어진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번역한 고(故) 이윤기 선생의 말대로 ‘카잔차키스의 삶은,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내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사색과 행동 등등의, 영원히 모순되는 반대 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창출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에게 삶과 죽음처럼 극명하게 대립되면서 갈리는 것이 있을까? 의사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개념에 당황하고, 그 순간을 일상적으로 보는 인생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런 삶과 죽음이 축적되어 이루어진 현재와 앞으로 만들어갈 미래를 아우르는 역사의 무게에 대한 고민까지 겹쳐졌던 ‘80년대에 의과대학생이었던 저자의 가슴에 카잔차키스가 지핀 불꽃이 땅속에서 30년 동안 마그마로 뜨겁게 형성되다가, 결국 이 책으로부터 지표로 분출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故) 박봉우 시인의 시 <휴전선>의 구절처럼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한 항시 어두움‘의 불안한 대립이 ’천동 같은 화산‘이 되어 일어날 ’꼭 한 번의 때가 된 것이다.




“나는 조국을 믿고 성실하게 일하며 연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조국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내게 이런 조국을 선택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내 삶을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저자가 아테네에 도착한 날 아테네 민주주의 심장인 신타그마 광장에서 정부의 연금 삭감에 항의하여 자살한 약사 출신 노인의 유서 일부분이다. ‘개인과 국가’, ‘권리와 의무’라는 대립구조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여행의 출발지로 ‘재앙과 영광의 충격을 동시에 견디어왔다’는 펠로폰네소스로 저자를 인도하는 카잔차키스의 가이드가 자연스럽다. 이후 그리스의 속살로 들어갈수록 대립각을 세우는 조합들이 연달아 나타난다.




이 책은 어찌 보면 그 대립항의 조합들이 그리스 땅에서 생성된 연유를 되짚어보고, 현재에 주는 의미를 추출해나가는 과정이다. 저자가 그리스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며 쌓은 지식과, 이번을 포함한 그간 몇 차례의 여행에서의 생생한 경험들이 우선 저자가 발을 내딛는 공간을 소재 겸 무대로 하여 펼쳐진다. 이어 자애로운 해설자, 연기력 뛰어난 재연배우, 철학적 화두의 제시자로서 카잔차키스의 다양한 역할이 이어진다. 그 대립들을 정반합(正反合)의 과정으로 풀든, 제로섬으로 인식하든 현재의 의미를 새기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책에 나타난 그 대립적인 조합들, 이중적인 모습들을 몇 가지 보자.




‘금기-욕망’, ‘신-인간’, ‘격정-굴종’, ‘친절-야만’, ‘천상-세속’... 끝없는 대립조합




. ‘금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과 결국 신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나약한 인간의 실제’




        그리스 전설을 모티브로 한 영화 <페드라>에서 계모와의 비극적 사랑에 빠진 주인공이 떨어져 죽던 절벽을 낀 길을 지나며, 저자는 이 두 가지를 서로 동시에 존재하며 작용하여, 효과를 상쇄시키는 길항작용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이 대립조합의 길항작용은 이후의 여정에서 꾸준히 반복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 그리스는 지중해의 태양 같은 뜨거운 격정과 말라비틀어진 마른 풀 같은 무기력이 공존하고, 처음 만난 여행자를 집으로 들여 재워주는 인류애적인 친절과 백주대낮에 불법체류자를 둘러싸고 돌을 던지는 야만이 공존한다.




        ‘하나의 그리스인 안에는 물과 불처럼 서로 다른 극성을 지닌 이질적 특성들이 격렬하게 투쟁’하고 있다는 뜻의 ‘안티시쥐지antisyzygy'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런 이중성이 과연 그리스인들만의 전유물일까? 우리에게도 사대주의적 성향과 공격적 국수주의가 함께 하고 있지는 않은가? 과거를 돌이켜봐도 항쟁과 굴종의 역사가 엇갈리고 있지는 않았던가?




. ‘우라니아(Urania, 천상)’과 ‘판데모스(Pandemos, 세속)




        아프로디테는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교합의 결과가 아닌 바다의 포말로부터 나온 ‘천상’의 존재라고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보티첼로의 유명한 그림은 바로 이를 소재로 했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아프로디테가 제우스와 디오네의 사랑의 결과로 태어난, 곧 인간적 욕망에 의해 자궁에서 태어난 ‘세속’의 존재라고 한다. ‘성(聖)’과 ‘속(俗)’의 구분과 포용과 인간에 미치는 영향과 상호작용은 카잔차키스가 일생을 두고 천착한 문제이다. ‘이성도 육체도 같은 젖을 빨면서 쌍둥이처럼 우애롭게 하나로 단결’되었던 시기를 꿈꾼다. 산채로 장작더미에 올라가 스스로 육신을 불태우며 신의 반열에 오른 헤라클레스에게서 영혼과 육체의 화해로 묘사한 것은 마치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에 나온 것과 같은 ‘소신공양(燒身供養)’을 연상시킨다.

        믿음을 앞세운 ‘종교, 영혼, 이상’과 실리를 추구한 세속 정치권력과 금력, 육체적 욕망이 갈등, 야합, 배척하는 과정에서 숱한 인간의 삶과 죽음이 차곡차곡 쌓여 현재에 이른 게 인간의 역사이다. 성과 속의 개념과 정의가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의 정의는 어떠한가? 어떻게 그들 간의 화해를 이루어낼 수 있겠는가?




. 무심한 바다는 어떤 흔적도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젊음을 유지할지 모르나 저 방파제에 남은 흔적들은 깊게 패인 역사의 주름이다.




        바다는 자연 그대로의 흐름에 맡긴다. 파도에 휩쓸려 들어온 것들은 들어 온대로, 밀려 나가면 나간대로 놓아둔다. 담아 두려 하지 않는다. 방파제는 인간이 자연에 저항하여 축조한 것이다. 역사의 주름들이 패이고 또 패이면 결국 부서져 버릴 운명이다. 우리는 남기겠다고 하는 기록들을 결국 없애버리기 위하여 그리 애를 쓰는 것은 아닐까?




.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양립하고 수용할 수 없는 것을 수용하며,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그리스 혹은 그리스인의 특질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아니, ‘인간보다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반인간적인 모델’이었다. 비현실적인 신의 세계에 인간의 현실을 대입했고, 인간으로서는 신이 정해준 운명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것을 그리스인들은 ‘탁월함’이라고 불렀다. 탁월함을 위한, 신의 운명에 저항하는 그런 도전이 바로 그리스 문명을 만들었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 시대에서 발휘하고 지향해야 할 ‘탁월함’이란 무엇일까?




‘와서 빼앗아 보라’-지금도 들리는 스파르타의 외침




이 책에서 저자의 여행은 스파르타에서 끝난다. 스파르타의 해양 관문 역할을 한 헬레네와 파리스의 전설이 남아 있는 기티오 항구가 마지막 기착지이지만, 이는 다음 권을 위한 예고편의 의미가 더 크다. 스파르타의 이중성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탁월함의 현신이자 펠로폰네소스의 패자였던 스파르타.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조차 잊혀져가는 퇴락한 시골도시’.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쇠퇴의 엇갈림 속에 저자를 비롯한 사람들을 조용히 그러나 영원히 끄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았다.




영화 <300>에서도 나온 스파르타 전사(戰士)의 구호는 ‘Molon Labe(모론 라베)!’로 ‘와서 빼앗아 보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스파르타 전사의 외침이 책을 읽으며 다시 들리는 듯하다. 스파르타를 퇴락한 시골도시라 하고, 과거의 영광은 모두 사라졌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듯하다. 그대들이 빼앗은 것이 아니다. 우리들에게 빼앗기지 않은 것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유산과 정신이 있다. ‘와서 빼앗아 보라!’ 그런 외침이 저자를 카잔차키스의 인도를 받으며 스파르타까지 오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




여행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항상 눈을 부릅뜨고 찾던 것에 눈을 감을 수 있게 해준다. 스테레오타입으로 재단해버린 사람이나 지방, 국가에 대해 이면을 보며 다양하게 정의하고 나누며 결국 포용하게도 만든다. 공간을 이동하며 시간의 날줄과 씨줄을 카잔차키스란 능숙한 어부의 도움 손길을 받으며 엮는 저자의 독특한 여행기 방식만으로도 이 책은 매력이 있다. 거기에 그 어부와의 우정, 어부의 고향인 그리스에 대한 공부, 다양한 인생 경험이 30년 가까이 어울려 버무려졌으니 그 맛이야 보장할 수 있다. 초고를 마쳤다는 펠로폰네소스 2권에 이어, 아티카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여정을 다룬 속편들이 기대된다. 여행기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을 지니신 기자님도 이 책을 읽으시고 다음 편을 기다리는 대열에 함께 동참하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역시 기대한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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