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소 지프에서 수입차와의 경쟁까지

입력 2012-11-17 00:12 수정 2012-11-19 09:11


자동차 전문 잡지인 <모터트렌드> 10월호에 실린 ‘한국 자동차 기업 브랜드가 시급하다‘라는 제목의 글의 원본입니다. 잡지에서는 지면 분량 관계로 몇몇 부분을 축약 혹은 삭제하였습니다.

----------------------------------------------



철공소 지프에서 수입차와의 경쟁까지

-기업브랜드 측면에서 본 한국 자동차의 역사 -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는 이어령 선생을 단지 논란을 일으킨 소장 문학 비평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평론가이자 문필가로 등극시킨 수필집이다. 1963년 8월 12일부터 50회에 걸쳐 경향신문에 연재되었고, 1964년에 단행본으로 나왔다. ‘80년대 초 고서가 많았던 친구 집에 갔다가, 그 초판본을 발견하고 빌려와 그 날 바로 다 읽었던 기억이 있다. 첫 번째 글에 자동차가 등장한다. 이어령 선생은 40여년이 지나 모신문에 실린 기고문에서 그 글을 회고했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맨 첫 장에 나오는 그 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고갯길의 의미를 알 것이다. 차를 비킬 줄 모르는 시골 노부부가 지프의 경적 소리에 놀라 오리들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모습, 위급한 상황에서도 서로 놓치지 않으려고 꼭 움켜잡은 손, 천 년을 그렇게 쫓기며 살아온 한국인의 뒷모습을 보았다고 한, 바로 그 고갯길이다.

 

윗부분이 실린 기고문의 중심 소재는 고난을 상징하는 ‘고갯길’이었다. 그리고 고난을 함께 이겨내는 서로 의지하고 힘을 모으는 ‘움켜잡은 손’이었다. 자칫 세게 페이지를 넘기면 종이가 부스러질 것만 같았던 친구 집에서 빌려온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초판본에서 본 내용은 달랐다. 지프차 바로 자동차로 상징되는 서구문명과, 문명의 산물을 몰라보고 피해 달아나는 당시 한국의 동양적 후진성의 대비가 강렬하게 와 닿았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자동차는 그렇게 저 먼 세계에 있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었다. 자동차를 보면 그게 며칠거리 자랑이 되는 시골 마을도 있었다. 울릉도에 살았던 한 친구는 중학교 3학년 때 차를 처음 타보았다고 한다. 당연히 자동차의 소유 여부만으로, 극소수의 있는 자와 대다수의 없는 자로 사람을 나누던 시절이었다.

 

‘메딘쩨’의 시절

 

1968년에 서울에서 인천, 서울에서 수원까지 고속도로가 1차 개통되었다. 이어 ‘69년에 경인, 경부고속도로로 서울에서 서해와 남해를 이으면서 완성이 되었다. 그 때까지 한국에는 지프를 개조한 승용차들이 많았다. 정비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길이나 시내를 저속으로 달리는 데는 지프가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새로 개통된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올린 채 몇 십분 달리면서 주요 인사들의 지프 개조 승용차 상당수가 ’퍼져버렸다‘고 한다. 그 지프들은 미군에서 흘러나온 것들을 두드려 맞춘 형태의 자동차였다. 특별하게 브랜드라 할 것이 없었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자동차공장이나 제작소의 이름으로 통했다.

고속도로 시대가 열리기 1~2년 전부터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외국자동차와 제휴를 통하여 그들의 브랜드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현대자동차가 포드자동차와 협력하며 코티나, 아시아자동차가 피아트, 신진자동차가 도요타와 손을 잡고 코로나를 내놓았다. 자동차는 기존의 자동차제작소에서 두드려 만든 차와, 한국의 자동차 기업과 외국 유수 자동차 회사와의 기술제휴로 만들어진 차로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새로운 자동차들은 개별 브랜드 네임이 있기는 했지만, 새 시대의 새로운 기술을 상징하는 당시까지의 용어로 하면 ‘메딘쩨’라는 통합된 브랜드로서 기능했다.

‘60년대에 시장의 상인들이 손님들에게 "이게 메딘쩨에요, 메딘쩨!"하며 좋은 제품이라고 강조하곤 했단다. 나도 사실 직접 들어본 적은 없이,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메딘쩨'는 공산품에 원산지 표시를 하는 'Made in (나라명)'의 'Made in'을 붙여서 발음하고 거기에 '일본제', '미국제'할 때의 '제(製)'를 세게 발음하며 합성한 단어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Made in' 라벨이 붙은 제품을 뜻한다. 그러나 이 단어가 쓰일 때 우리 나라에서 만든 공산품이 거의 없던 시절인지라, 바로 '외국산 제품'을 지칭하는 것이 된다. 당연히 거기에는 물 건너 온 제품으로, 품질이 우수하고, 쉽게 보기 힘들고, 그래서 값이 비싼 제품이라는 의미를 담게 된다. 자동차에도 바로 ’60년대 후반에 ‘국산 대(對) 외국산’의 대결구도가 펼쳐졌다. 국산은 이름도 없는 ‘제너릭 브랜드’와 같았고 ‘외국산’은 고급 품질을 상징하며 ‘Branded(브랜드가 있는)' 제품이 되었다.

 

‘포니’ 브랜드 독주에서 계층구조로 진화

 

한국 고유 모델 1호 자동차는 1976년에 모습을 드러낸 현대자동차의 포니이다. 포니가 나오면서 한국 자동차 시장에 진정한 브랜드 시대가 열렸다. ‘무엇’, 곧 어떤 자동차를 소유하고 타는가가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기존 ‘국산 대 외국산’의 대결에서, 외국산 역시 진정한 ‘메딘쩨’가 아니고, 겉모양만 비슷하게 한국 공장에서 흉내 낸 것이라고 소비자들이 인식하게 되었다. 국산 브랜드인 ‘포니’를 띄우기 위하여, 앞 세대의 유사 메딘쩨들을 깎아내린 까닭도 있다.

초기 포니는 ‘브랜드가 있는’ 제품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단순히 아무 자동차나 갖는 것이 아니라 포니를 소유하고 운전한다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수출 100억불을 넘기는 시점에서 탄탄한 중산층, 세련된 서구적 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도구였다. ‘80년대 들어 한국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포니를 잇는 브랜드 제품들이 몰려 나왔다. 자동차 브랜드에 계층(Hierarchy)이 생겼다. 포니는 브랜드 대부분을 상징하는 유아독존격 브랜드에서, 브랜드 계층구조의 제일 하부를 떠받치는 존재가 되었다. 유사 외국산 시대를 떨치고 한국 자동차만의 독자 생태계를 만드는 출발점이자 기반을 제공했다. 포니 자동차를 자신의 첫 자동차로 구입하기 시작하여, 나이가 들면서 쏘나타, 그랜져, 에쿠스까지 올라가는 한국인의 자동차 브랜드 구조가 20년을 두고 완성되었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한국의 자동차 기업들은 유사 외국산이 빠진 자리로 진짜 외국산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지노선과 같은 철통 방어선을 정부와 함께 구축하였다.

‘80년대에 중반 이후에 한국인들의 관심은 어떤 ’등급‘의 자동차를 사고, 타느냐로 옮겨졌다. 자동차 계층구조가 형성되면서 당연한 흐름으로 예측된 현상이었다. 자동차 기업들이 안내하는 대로, 더 크고 비싼 차를 구입하면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오른 것을 만끽했다. 모든 자동차들이 현대자동차가 만들어놓은 계층구조에 따라 자신들의 자동차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일반인들은 현실적으로 수입차를 살 수 없었다. 다른 국가에 비하여 가깝고, 치밀하게 얽힌 인간관계의 얽힘을 따라 자동차 판매도 이루어졌다. ’현대-대우-기아‘의 모태가 된 그룹의 브랜드에 연유한 기업브랜드로서의 특성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기존의 역사와 생산 규모, 영업사원의 숫자에 기준한 영업력에 상당 부분 구매 브랜드 결정이 이루어졌다. 신분상승과 타자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자극하여 어떤 등급의 제품 브랜드를 사느냐가 큰 이슈가 되었다. 무리를 하더라도 기존의 상식보다는 높은 등급의 제품을 사려고 했고, 그렇게 유혹했다. 등급을 확실하게 올리지 못할 경우 ’준(準)‘이라는 틈새형 제품을 만들기까지 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지각변동과 도약

 

모기업 브랜드의 막강한 후광을 등에 업고 ‘90년대 중반에 삼성이 자동차 시장에 진출했다. 제품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삼성‘이라는 브랜드 하나로 예약판매의 신기원을 만들었다. 한국 자동차 시장의 경쟁과 브랜드가 작동하는 방식에 한 바탕 회오리바람과 같은 변화가 예측되었다. 그 변화는 엉뚱한 방향에서, 더 큰 쓰나미로 몰려 왔다.

IMF에 의한 경제 지배를 가져온 ‘90년대 말의 경제위기는 자동차산업을 포함한 한국 경제계 전반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자동차 업계는 그 중에서도 심했다. 삼성자동차가 르노에게 넘어갔다. ’세계경영‘을 부르짖으며, 그 성과를 한국에도 무서운 기세로 심어 거둘 듯하던 대우는 분해되었다. 자전거로부터 시작한 전통의 기아는 현대차와 합병되었다. 기아차를 합병하며 현대차는 한국 자동차업계의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존재감에 걸맞는 성과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해외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였다. ‘품질경영’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품질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되었다. ‘10-10’으로 짧게 부르는 ‘10만 마일, 10년 보장’ 프로그램은, 그것이 실행된 미국 시장을 넘어서 전 세계에 현대차의 개선된 품질을 알리는 징표역할을 했다. 디자인 부문에서도 나름의 철학을 지닌 독특함이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기아차를 포함한 현대차그룹은 세계 5대 자동차그룹의 확고한 멤버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절대적인 지위가 아직은 심각한 상태는 아니지만 조금씩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수입 자동차들이 한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면서, 거침없는 약진만을 해오던 국내 자동차 기업, 특히 현대차그룹, 그 중에서도 현대차의 기업브랜드를 다시금 보게 한다. 어느 특정 국가의 국내 시장에서의 존재감 측면에서 과연 현대차그룹과 같은 위치를 점했던 기업의 사례를 찾아보았다. 주요 자동차 선진국들을 보았을 때, 어느 한 기업이 국가 자동차 시장을 50% 이상 점유한 경우는 미국의 GM밖에 없다.

 

GM의 화려했던 시절과 이후의 고달픈 여정

 

1953년 국방장관 지명을 받은 당시 GM의 사장이었던 찰스 어윈 윌슨(Charles Erwin Wilson)이 GM을 비롯한 기업의 이익에 배치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겠냐는 질문에 대한 유명한 답변이 바로 ‘70년대까지 계속된 GM의 위상을 보여준다.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 좋고,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다.” 미국인들에게 GM은 그런 회사였다. 포드가 있고 크라이슬러가 있었지만, 미국이라는 국가와 동일시될 정도로 GM은 막강했다. 미국인들의 꿈은 GM 제품 브랜드의 계층구조 안에서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이었다. 흡사 ’80년대의 한국인들이 현대차 안에서 신분상승의 꿈을 꾸었듯이.

그런 GM에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듯, 랠프 네이더(Ralph Nader)라는 새파란 청년 하나가 대들었다. GM 쉐보레 라인의 대표 제품인 코르베어(Corvair)의 안전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책을 냈다. 기나긴 법정공방이 오갔다. 결국 서로 법정 밖에서 타협을 했지만, 미국과 동일시되는 완벽한 기업으로서 GM의 신뢰도와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특히 랠프 네이더는 GM과의 소송을 통하여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스타로 떠올랐다. 그가 언론에 노출되면 GM이 함께 연상되었다. 철옹성 GM에 결정적인 상처를 입힌 건 ‘70년대의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와, 연비 좋고 고장이 별로 없다는 장점을 내세우며 GM과는 반대편에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구축하며 미국 시장을 공략해 들어온 일본 기업들이었다. GM은 시대의 요구에 역행하며 귀를 막는 완고한 노인의 이미지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그에 대한 GM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전개되었다.

첫째, 과거를 부정하며 변신한 모습을 강조했다. "Not your fathers' Oldsmobile"이란 슬로건으로 ‘당신 아버지가 타던 그런 구닥다리가 아니야’라고 강조한 올즈모빌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유명한 슬로건에서 사람들이 잊고 있는 부분은 실제 광고에서 강조하며 CF를 마무리하는 슬로건은 “The new generation of Old", ‘새로운 올즈모빌 세대’라는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부정적 표현이 확실히 사람들에게 강하게 각인되며, 올즈모빌 그리고 나아가 GM은 역시나 늙다리 아버지들을 위한 차라는 인식만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새턴(Saturn)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GM과는 완전히 분리하여 조직, 문화, 업무 방식을 달리하는 실험으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1991년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의 회사설명회에서 새턴의 홍보영상을 보고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딜러들이 속임수를 쓸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정가 판매, 소유자들의 커뮤니티 구성과 활발한 활동 등은 새턴이 GM 전체를 개혁하는 선봉이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기대가 높았던 만큼 결국 새턴이 기존 GM의 다른 브랜드와 같이 평범한 차들로 구색을 맞추고 매출 실적을 달성하는 데 급급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GM의 구태의연함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효과만 나타나게 되었다.

2000년대 초 새턴의 홍보영상처럼 가슴을 뛰게 하는 GM에서 나온 4분 정도 분량의 영상물을 보게 되었다. ‘여름은 마음에 달렸다(Summer is a state of mind)'란 부제가 달려, GM의 화려했던 과거를 보여주며 자부심을 일깨움과 동시에 현재의 상태를 질책하고 다시금 달려보자는 내용이었다. GM의 딜러들 모임, 내부 워크샵 등에서 틀 때마다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고 들었다. 새롭게 해보자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사건이 그 움직임을 덮어 버렸다. 바로 2001년 9월 11일의 사건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되며, GM은 성조기를 휘날리는 대열에 합류해 버렸다. 내부로부터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아닌, 애국주의 물결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시적으로 GM의 매출과 선호도는 올라갔으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지지도보다 더욱 빠르게 GM에 대한 선호도는 빠지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대 중반에 GM은 ‘Redemption'캠페인이란 걸 전개했다. 우리말로 ’속죄(贖罪)‘와 ’상환(償還)‘이란 서로 연계되어 있으면서도 중의적인 ’Redemption'이란 단어를 GM으로서는 모두 포용하여 적절하게 사용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소비자들은 ‘상환’에만 주목하고 반응을 보였다. 반성하는 모습은 전혀 소비자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 돈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마음을 사려는 식으로 보였다. 2008년의 경제위기 후 GM은 금융산업 이외의 모든 산업의 대표자로서 뭇매를 맞았다. 파산을 면하고 받은 구제금융이 매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졌을 정도이다.

 

강요하지 않는 긍정적인 기업브랜드

 

미국인들과 GM은 묘한 애증관계로 엮여 있다. GM을 넘어 ‘Big 3'로 일컬어지는 미국의 자동차 기업들 모두에게 약간은 모순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인공호흡으로 살려놓은 후 두드려 패는 식이다. 예전의 고문자들과 같은 가학적인 일면이 보이기도 한다. 한국 자동차 기업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도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이고, 경제를 이끈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면죄부를 주고, 열렬하게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애국(愛國)의 깃발로 사람들을 잡아놓는 시대는 지났다. 수입 자동차는 한국 자동차 기업에게는 경쟁자이지만,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더 많아진 선택 대안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이승복식으로 ‘나는 수입차가 싫어요’를 외치라고 강요할 수 없다. 수입차가 아닌 한국 자동차를 구입할 이유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의미로서의 브랜드라고 본다. 제품 하나의 특성에 앞서서, 기업 전체의 모습을 보는 틀로 작용하는 기업브랜드가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 도요타의 ‘안정’, ‘벤츠의 ’품격‘, ’BMW의 ‘쾌감’, 아우디의 ‘(독일)기술’과 같은 사용자와 연결될 수 있는 하나의 가치, 지향점이 명백해야 한다. 기아차의 ‘디자인’은 기업브랜드 측면에서 한국 자동차 기업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좋은 사례이다. 물론 그것이 수입차에 대해서도 확실한 경쟁우위요소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기업브랜드는 긍정의 산술 형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상대를 비난하거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방어하는 데 치중해서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사람들의 기호가 제각기인데 시장 전체를 잡을 수는 없다. 포기할 부분은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 21세기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힌트가 있을 것이다.  
2009년 10월부터 현대기아차그룹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본부장으로 재임하고 있음.
역사 및 사회의 제반 모습들을 브랜드적으로 해석하는 데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한 저서 두 권이 있다.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사회평론,2002)', '브랜드 마인드(사회평론,2004)'. 학부에서는 중국사를 전공했고, 삼성전자 홍보실을 거쳐,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228명 37%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392명 63%
광고